해맑음은 천성이 아니라 사랑으로 지켜지는 것 아닐까
어떤 사람의 해맑음이나 순수는 그렇게 본래대로 갖고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을 사랑하고 지켜주고 싶은 그 누군가가 그 사람이 사는 세계가 깨지거나 부서지지 않도록 온 힘을 다해 지키려 노력할 때. 그리고 온마음을 다한 부족함 없는 사랑을 줬을 때. 그 안의 천진난만한 자유를 누리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미혹에 흔들리지 않는 나이를 넘고도 여전히 꿈을 꾸고 비숑프리제 강아지처럼 곧잘 웃어서 웃는 게 여전히 천진난만하게 예쁜 어떤 내가 십 년째 아끼는 어떤 한 사람과.
여전히 동물과 드라마 속 주인공과 아이돌을 열심히 응원하며 눈물 많고 호기심 많은 내 여린 엄마와.
떼 한번 부리지 않고 이제 두 살에 맛있는 게 있으면 포도한알씩 가족들의 입에 넣아주면서 재롱을 떨 때마다 “박수”를 유도하는 구김살 없는 조카와.
한때 내가 장려상이라도 타면 동네잔치라도 벌일 기세였던 내 부모님과 이모 삼촌 할머니 사촌동생들을 보며 느낀다.
그러므로 사랑해야 한다. 아이가 되어서도 어른이 되어서도 어떠한 가정환경이든 배경이 든 간에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는 것 만이 허기진 영혼을 구하고 그 사람의 세계를 지지하니까.
아이 때 그러지 못했으면 지금 사랑하는 사람에게도
눈을 반쯤 가리고 이 세상의 좋은 것만 보여줄 수 있게. 그래서 해맑음이 지켜질 수 있게 해야 한다.
사랑은 한 사람의 세계와 다른 사람의 세계가 연결되는 그런 기적 같은 일이니까. 그 세계를 오롯이, 온전히 지켜주는 것.
새삼 이런 저를 해맑게 지켜주신 부모님과 가족 내 친구들에게 고마움이 느껴지는 어느 날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