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훈은 아침부터 힘이 없었다. 차윤성의 감시를 받은 지 한 달이 되고 있었다. 달력에 매일매일 동그라미를 치던 것도 이제는 다 그만둔 상태였다. 차윤성이 오기 전에 박성훈은 허겁지겁 밥을 먹었다. 가끔 오후에 두 번 화장실을 가게 해 주면 박성훈은 차윤성에게 고맙다고 인사를 했다. 박성훈은 점점 어떠한 모멸감도 느끼지 않게 되었다. 아니 적어도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으려고 했다. 자신이 뭐라고 하면 차윤성은 그보다 몇 배로 독설을 내뿜었기 때문이다. 그저 하루하루 시간이 가기를 바랄 뿐이었다. 아니, 여기서 도망치고 싶었다.
박성훈은 오 킬로를 감량하였다. 몸이 가벼워졌으나 박성훈은 이제 아무 상관이 없었다. 쪄도 그만, 빠져도 그만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다른 날과 마찬가지로 차윤성이 오기 전에 허겁지겁 밥을 먹던 박성훈의 앞에 차윤성이 나타났다.
“돼지새끼”
“컥!”
박성훈은 급하게 먹던 새우튀김이 목에 걸렸다. 명치에 타는 듯한 통증이 느껴졌다. 하늘이 샛노래졌다. 박성훈은 쿵 하는 소리를 내고 쓰러지고 말았다. 주위에 있던 사람들이 급하게 다가오는 소리, 어떡해, 구급차 불러, 하는 소리 등 우왕좌왕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박성훈은 정신을 잃었다.
“내일이나 모레 정도면 퇴원해도 괜찮을 것 같아요.”
박성훈이 눈을 뜨니 병실이었다. 박성훈은 김경열 박사가 다가오는 것을 보자 얼른 다시 눈을 감았다. 이건 기회다! 성훈은 의사인 김박사가 자신의 상태를 알아차릴까 두려웠다. 쿵 쿵 울려대는 자신의 심장소리가 그에게 들리는 것 아닐까? 엄마, 도와주세요, 살려주세요!
김경열 박사는 박성훈을 흘깃 보더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내가 센터에 있었더라면 병원까지 올 필요도 없었을 텐데. 하필이면 강의로 자리를 비운 때에 쓰러지다니. 김박사는 앞으로 응급의료 지식이 있는 미라클러를 뽑아야겠다고 생각했다. 100일간 세상과 단절한다는 미라클센터의 원칙이 깨어진 것이 화가 났다. 그러나 이왕 이렇게 된 것, 차윤성을 붙여서 퇴원 처리하고 같이 들어오라고 해야지, 뭐. 나약한 것들은 답이 없다. 자기 관리도 못 하고 어떻게 이렇게까지 나약할 수가 있단 말인가. 김박사는 잠시 후 사람이 올 것이라 간호사에게 말하고 병원을 나섰다.
박성훈은 부들부들 떨었다. 침착해야 한다. 차윤성이 올 것이다. 박사가 떠나고 그가 올 때까지 시간이 나에게 주어진 기회다. 미라클 센터는 교통이 불편한 외딴곳에 있었다. 거기에 다시 들어가면 나올 방법이 없다.
오늘, 탈출해야 한다!
박성훈은 간호사와 김박사가 나가고 나서 백이 될 때까지 샜다. 보통 사람처럼 행동해야 한다. 박성훈은 백까지 세고 나서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몸이 후들거렸다. 심장이 떨렸다. 박성훈, 할 수 있어! 할 수 있어! 성훈은 자신에게 반복해서 말하며 병원 일 층으로 내려왔다. 외래진료라고 써진 곳에 다행히 공중전화가 있었다.
“여보세요, 겨, 겨, 경찰서죠?”
박성훈은 신고를 했다. 신고를 받은 경찰은 횡설수설하는 박성훈의 말을 귀담아듣는 것 같지 않았으나, 일단 신고접수를 하고 출동하겠다고 했다. 박성훈은 몸을 숨겨야겠다고 생각했다. 분명 곧 차윤성이 올 것이다. 도망쳐야 한다. 그때였다. 자신의 어깨 위에 누군가가 손을 올렸다.
“헉! 아, 아, 안돼!”
겁에 질린 박성훈을 단단히 붙잡는 손과 함께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들렸다. 차윤성이 아니었다.
“걱정하지 마세요. 저는 기자입니다.”
김용광은 SBC 사회부 기자라고 쓰인 자신의 사원카드를 박성훈에게 보였다. 김용광은 덜덜 떨고 있는 박성훈을 안심시켰다. 자신은 김경열 박사를 잘 알고 있으며 김박사의 행적을 계속하여 추적하여 왔다는 것이었다.
“여기 있으면 좀 위험하지 않아요? 제 차로 가시지요. 바로 저기 주차장에 있습니다.”
김용광이 박성훈을 부축하면서 자신의 차에 태운 것과 동시에 일 층 외래/수납이라고 쓰인 곳으로 들어서는 차윤성이 보였다. 박성훈은 겁에 질려 몸을 숨겼다.
“괜찮습니다, 박성훈 씨. 제가 차를 출발시키겠습니다. 나중에 다시 와서 성훈 씨 개인물품은 챙기도록 하지요.”
“아, 다 필요 없어요. 그냥, 제, 제, 제발 좀 저를 여기서 꺼내주세요! 어, 어서 빨리 출발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