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JOH Oct 21. 2024

2021년 6월

 “오빠~, 화났어?”     


 서수지는 김박사의 팔에 팔짱을 꼈다. 아이, 오빠, 화내지 마. 내가 딱 보니 그 아줌마도 빨리 날려버리는 게 좋을 것 같더라구. 나, 잘했지? 그리고 어떻게 그렇게 버킨백을 빨리 구했어? 싸랑해~~ 대학원은 안 보내줘도 돼! 호호호!     


 김박사는 헛헛한 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넷 중에 남은 사람이 서수지뿐이라니. 처음에는 서수지의 이런 천진난만함에 김박사가 끌린 것이 사실이었지만, 이제는 가끔 좀 어른스러웠으면 하는 바람도 있었다.  

    

 서수지는 김박사가 백만 유투버와 함께 자기 계발 관련 강의를 찍고 나서 회포를 풀러 같이 간 호프집에서 만난 여자였다. 서수지는 지금보다는 짧은 생머리를 뒤로 묶고, 맥주며 소주며 안주를 싹싹하게 주문받고 있었다. 처음으로 백만이 넘는 구독자를 보유한 유투버와 함께 프로그램 녹화를 한 탓인지 김박사는 기분이 매우 고양되었고, 그래서 평소와 다르게 주문받으러 온 서수지에게 농지거리도 하면서 재미있는 시간을 보냈다. 나이도 어릴 텐데 서수지는 기분 나쁜 내색도 없이 오빠, 오빠 하면서 다 받아주었고 기분이 좋아진 김박사는 시간 나면 자신의 병원에 오라면서 번호를 알려주었다.      


 서수지는 정말 일주일 후에 자신의 병원에 나타났고, 피부에 좋은 연고와 크림을 주면서 조금씩 가까워진 것이 벌써 육 개월이 되었다. 물론 김박사는 자신의 나이와 서수지의 나이 차를 생각하면, 서수지도 반은 장난이고, 실제로는 자신이 사주는 옷이며, 가방, 그리고 맛집 가는 재미에 자신을 만난다고 하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김박사는 서수지의 탱탱한 젊음과 아름다움을 보는 즐거움에서 헤어 나오기 힘들었고, 때로는 수지도 사실은 나를 좋아하는 마음이 어느 정도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있었다.      


 그러나 오늘은 서수지의 아름다움도, 젊음도 김박사에게 그다지 힘이 되지 않았다. 자신이 큰마음을 먹고 처음으로 개설한 과정인데, 이렇게 다 마치지도 못하고 끝나다니. 이 과정 이후에 자신이 설계해 놓은 길이 얼마나 많은데, 이럴 수가 있나. 내가 내 의지로, 내 필요로 그만둔 것이 아니고 하찮은 사람들 때문에 그만둘 수밖에 없다니!     


 그래서 그런지 요새는 큰 주인님이 더욱 생각나는 것이었다. 그는 어떻게 그렇게 사람들을 이끌고 군림했을까? 나는 그 사람처럼 되고 싶지는 않았다. 김박사는 엄마인 허순여가 큰 주인에게 늘 쩔쩔매는 모습이 정말 지긋지긋했다. 그리고 그 앞에서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고 묵묵히 참던 자신의 아버지, 김영욱도 보기 싫었다. 


 그런데 가장 보기 싫은 것은 제 부모를 말로는 똑같은 자신만의 주인이라고 하면서 함부로 대하는 큰 주인이었다. 그는 세상의 중심이었고, 자기 부모, 아니 자기 가족의 중심이었다. 너무 뜨겁게 주위를 밝히는 바람에 가까이 가는 사람 모두가 다 타버리는 그런 태양이었다. 그러면서도 자신을 가장 가까이 여기고 예뻐해 주는 태양에 더 가까이 가고, 인정받고 싶어 하는 자기 모습에도 환멸을 느꼈다. 그래서 그는 이름도 바꾸었다. 과거의 자신과 영원히 이별하기 위해서.      


 김박사는, 누군가에게 군림하기보다는, 동행하는 그런 따뜻한 리더가 되고 싶었다. 큰 주인을 넘어서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자신의 성공 비결을 널리 알렸던 것도 그런 이유였다. 엄청난 진실, 진리를 깨달은 사람으로서, 이 진리의 기쁨을 나누어 주고 싶었는데…. 방송에서도 유튜브에서도 사람들은 그에게 끝없는 찬사와 부러움의 눈길을 보냈다. 그의 겸손함, 그의 강한 정신과 의지력, 그의 성공에 대해서.      


 그들의 반응을 보면서 김박사는 자신의 결정이 옳았음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다. 모두 자기를 보면서 웃었고, 감사해하고, 배우고 싶다고 했다. 연단에 서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면 여기가 자신이 정말 있어야 하는 곳이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는 말로는 누구나 다 이룰 수 있다고, 저는 정말 별것 아니라고 손사래를 쳤지만, 속으로는 자신이 특별한 사람임을 세상이 드디어 알아주는 것 같아 가슴이 벅차올랐다. 거만하던 큰 주인과는 너무나도 다른, 낮은 곳으로 스스로 임하는 자기 모습에 스스로 대견하고 뿌듯함을 느꼈다.     


 특별한 사람만이 느끼는 도의적 책임감으로, 사람들에게 자신만의 비법을 알려주고자 그런 기회를 마련해 준 것이었는데! 이 네 사람 – 옆에 있는 서수지도 마찬가지다 –은 도대체 이런 귀한 기회를 왜 놓치고 마는 것일까! 나는 너희들을 태워버리지 않고 오히려 따뜻하게 비추어 주려고 하는데!   

  

 김박사는 답답했다. 아니, 다시 미래를 기억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이번에는 철저하게 기준을 세워서 사람을 골라야지. 그리고 좀 동떨어진 곳에 자기 계발 센터를 세워야겠다. 내가 하나하나 규정을 만들고 매시간 체크하고 통제할 수 있는 곳으로. 엄격한 기준으로 성공의 싹을 틔울 수 있는 사람들을 뽑아야 한다. 이렇게 일차적으로 검증된 자들이더라도 지금까지 살면서 쌓인 안 좋은 습관을 뿌리 뽑으려면, 그래서 다시 태어나게 하려면 내가 도와주어야 한다. 


 김박사는 서수지와 함께 땅을 좀 보러 다녀야겠다고 생각했다.      

이전 13화 제6세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