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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JOH Oct 21. 2024

제6세션

 여섯 번째 시간이었다. 이제 한 달 정도만 더 하면 김경열 박사의 미션이 성공이 성큼 다가온다. 그런데 다들 모인 자리에서 정현은 김박사에게 자신은 오늘까지만 나오겠다고 말했다. 갑작스러운 정현의 통보에 김경열 박사뿐만 아니라 이연자, 서수지까지 눈을 휘둥그레 떴다. 김박사는 너무 의아했다. 가장 충실하게 따라오고, 효과도 제일 큰 학생이었는데, 이 무슨 소리인가?     


안정현 씨, 제가 잘 이해가 안 되어서 그래요. 물론 본인의 자유의사를 저는 존중합니다. 그런데 무슨 계기가 있었을 것 아닌가요? 제가 붙잡으려고 하는 것이 아니고, 좀 본인의 상황을 이해하고 싶어서 그럽니다. 말해줄 수 있겠습니까?     


“박사님, 제가 그동안 이 프로그램을 통해서 얻은 게 참 많아요. 박사님 말씀을 듣고 제가 매일 썼던 미션북 – 제가 그냥 이름을 붙였습니다만 -에 쓴 대로 이루어지는 것을 보고 저는 정말 감격에 겨웠어요. 무언가 성공을 향한 비밀의 열쇠를 얻은 것 같았거든요….”

     

 그러나 정현은 과태료 사건에서 온 충격을 한동안 잊을 수 없었다. 한 과장은 선심 쓰듯이 오십만 원을 내었고 팀 사람들은 정현에게 정말 사람 좋은 사수를 만난 것을 보니 인복이 많다고 하였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열렸던 승진심사에서 정현은 보기 좋게 떨어지고 말았다. 팀장은 정현에게 아직 나이가 어려서라고 그런 것이라고 말해주었지만, 정현은 알고 있었다. 한 과장이 여기저기 술자리에서 안정현 대리가 일을 잘하는 줄 알았더니, 실제는 영 엉망이라고 하고 다녔다는 것을. 자신이 그런 사람을 좋아했었다니 정현은 자신을 용서할 수가 없었다. 한 과장은 자신과 얼굴이 마주치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농담을 하고, 친한 척을 했다. 

     

 정현은 어느 날 책상에 둔 자신의 미션북을 펼쳐 보았다. 한 자 한 자 써 내려갔던 그때의 심정이 다시 생각났다. 


 ‘나는 승진하고, 한 과장님과 데이트한다’이 문장을 쓰면서 자신은 얼마나 심호흡을 하고 간절히 바라고 상상의 나래를 펼쳤던가. 한 과장과 함께했던 대만의 야시장이 생각났다. 정현은 자신이 너무 한심하고 초라해져서 울컥 눈물이 났다. 아니, 이것은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일 리 없어! 아니, 정말 원했었는데, 아닌가? 


 정현은 자신이 꿈꾸는 미래, 자신이 기억하는 미래에 자신이 없어졌다. 김경열 박사 말대로 나는 간절함이 없는 것일까? 나는 또다시 수많은 실패에 또 하나의 실패를 더한 걸까? 그냥 다 피곤하고 관두고 싶었다. 동시에 이연자를 꾸짖고, 서수지를 혼내던 김박사의 모습에 이제는 자신이 혼나는 모습이 그려졌다. 그렇게 되기는 싫다. 내가 왜 돈과 시간을 들여가며 그러한 대접을 받아야 하는가. 내가 왜 누군가의 앞에서 죄인처럼 되어야 하는가. 정현은 그만두고 시간을 갖고 좀 찬찬히 돌이켜 보자고 생각했다. 


 정현의 말을 다 들은 김경열 박사는 아무런 표정도 없었고, 어떠한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에게서는 엄청난 실망감과 분노가 느껴졌다. 자신의 의도대로 되지 않는 정현에게, 셋 중 가장 자신의 말을 잘 이해하고 따라오는 정현이 먼저 자신을 내치는 것은 상상도 하지 못한 그였기에 가슴속에서 분노의 불길이 일었다. 


 역시 일반인을 상대로 변화를 이끌어 내는 시도는 애초부터 하지 말았어야 하나? 아니면 사 개월이라는 시간은 역시 너무 짧았을까. 이들에게 부족한 자각과 의지력을 어떻게 길러줘야 할까. 


 역시 통제다. 이 주에 한 번 보는 것만으로는 이들의 나약함을 이겨낼 수 없다. 이 나약한 사람들은 나와 같은 선각자, 선택받은 자가 보살피고 가르치고 통제해야 한다. 그래서 큰 주인님은 그렇게 따로 도량을 마련했던 것이구나. 김박사의 머릿속에 커다란 종이 울렸다.     


 좋습니다. 정현 씨, 아쉽군요. 그러나 이것만은 기억하십시오. 당신은 오늘 있었던 실패가 그냥 이 한 번으로 끝날 것 같은가요? 학, 습이란 말을 아십니까? 배울 학, 익힐 습이지요. 배우는 것은 누구나 다 할 수 있어요. 그러나 이 ‘습’은 말입니다, 정말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과정이에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학’은 해내도 ‘습’을 하지 못합니다. 세상에 그렇게나 많은 자기 계발서를 보세요! 그런데 왜 사람들은 계속 실패할까요? 바로, 당신 같이 행동하기 때문입니다!     


 정현은 매우 불쾌하였으나 그냥 참고 조용히 떠나자고 생각했다. 몇 번의 세션을 통해 김박사는 본인의 심기를 거스르면 이런 반응을 보일 것이라는 점은 충분히 예상했었다. 그러나 막상 비난의 당사자가 되니 씁쓸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죄송합니다…. 정현은 몇 번 고개를 조아리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정현이 갤러리아 포레를 나와 서울숲 역으로 향하고 있는데 누군가 뒤에서 자기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정현은 잘못 들었겠지 하면서 가던 길을 계속 가려 했다. 


 뒤에서 누군가 살짝 등을 치며 “오랜만이에요, 정현 씨!”하고 인사했다. 깜짝 놀라 뒤돌아보니 김용광이었다.      

“어머, 안녕하세요! 이게 얼마 만이에요? 아니, 그런데 무슨 일로? 여기서 또 뵙다니…”      


 용광은 벌써 세션이 다 끝났냐고 물었다. 정현은 그냥 자기도 오늘부로 그만두었다고 했다. 김용광은 그 특유의 날카로운 목소리로 웃었다. 혹시 그 양반, 엄청나게 독설 내뿜지 않던가요? 너란 인간은 앞으로 끝장날 것이다, 등등? 정현은 용광의 말에 자기도 모르게 웃어버렸다.      


“이러지 말고, 시간 되시면 잠깐 커피라도 마실래요? 제가 살게요” 


 용광의 제안을 정현은 흔쾌하게 수락했다. 안 그래도 누구라도 붙잡고 이야기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이런 말 여쭈어도 되나요? 갤러리아 포레에서 같이 살고 싶다던 여자친구분이 뭐라고 하지 않으셨나요? 그때 그만두셨을 때요….”      


“예, 안 그래도 엄청 뭐라고 했어요. 그런데 제가 놀란 것은요, 갤러리아 포레에 살고 싶은 노력을 그만두었다고 뭐라고 한 것이 아니었어요. 글쎄 제 여친은 왜 그런 것을 혼자서 결정하냐고 혼내더라고요! 누가 언제 거기 살고 싶다고 했냐, 나랑 같이 사는 미래는 나랑 함께 의논하고 결정해야지, 혼자 맘대로 결정하고 무슨 기억하는 미래니, 뭐니 밀어붙이냐고 얼마나 뭐라고 하던지…. 당신은 늘 그렇게 독단적이라고, 알고는 있었지만 역시 예상을 벗어나지 않는다고 하면서, 한 번만 더 그러면 용서 안 한다고 엄청 소리 들었습니다.”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용광은 얼굴에서 웃음이 떠나질 않았다. 제가 갤러리아 포레는 없어도 여자친구 복은 있다니까요…. 그러다 용광은 정현의 안부를 물었다. 그때 그 과장님? 누구랑 만나고 싶다고 하지 않으셨어요? 어떻게 되셨어요?     


 정현은 순간 부끄러움이 확 몰려왔다. 그래도 다 털어버리고 싶었다. 정현은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이 자기 계발 프로그램에 참가하고 나서 후회가 많이 된다고 하였다.     


“아, 그러셨구나…. 그냥 인연이 아니었다고 생각하세요. 그런 인간이랑 더 깊게 엮여봐요?! 나중에 더 애끓지 뭐. 그런데 저는 중간에 그렇게 나오고 나서 오히려 더 자기 계발서를 탐독하게 되었어요. 아, 제 말씀은, 이 김박사를 조곤조곤 깨주고 싶었거든요. 왜 당신이 틀린 지, 뭐가 잘못된 건지 다 까발리고 싶었어요.”     


“아 역시 기자님이라 그런가 보네요. 저는 더 이상 생각도 하기 싫은데. 그래서 무슨 결론을, 어떻게 내리셨나요?”     


 김용광은 자신이 생각하는 바를 조목조목 말하기 시작했다. 무조건 원한다고 되는 것은 아니다. 매일 로또 일등을 간절히 바란다고 그게 되겠는가? 자신의 할 수 있는 분야, 자신의 의지력이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분야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김용광은 말했다.      


“예를 들면 아침에 여섯 시에 일어나겠다, 이것도 한번 볼까요? 누구나 아 그건 의지의 영역이니까, 이거야말로 신념도 필요 없고, 하고자 한다면 다 할 수 있는 것 아니냐고 생각하겠죠. 


 그러나 딱 그것만 잘라볼 것이 아니고, 그 사람이 만약 지금 사정이 엔잡러를 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 봐요. 혹은 회사 일이 많아서 매일 새벽 한두 시까지 야근을 한다고 해 봅시다. 사람이 잠은 자야 하고, 이 자는 시간은 자기 마음대로 할 수는 있다고 하지만, 이 사람에게 오늘부터 성공한 사람들은 새벽형 인간이다, 그러니 너도 새벽에 일어나라고 하면 그게 되겠냐고요. 그리고 못 일어나면 의지박약이니, 성공을 꿈꾸지 못하니 이럴 수 있나요?”     


 김용광은 열띤 목소리로 계속 말하였다. 


 제가요, 좀 깨달은 것이 있어요. 이 자기 계발서 – 우리 김경열 박사도 그렇지만요 – 공통점이 있어요. 


 첫째 엄청나게 단순한 명령형 문장을 쓴다는 거예요. 뭐해라. 그러면 성공한다. 이런 식으로 말입니다. 


 두 번째는 몇몇 우연일 수도 있고, 자신의 운일 수도 있는 것을 다 자기의 노력으로 돌려요. 나는 이래서 성공했다, 저래서 성공했다. 그런데 누군가가 그와 똑같이 한다고 다 성공하는 것은 아니거든요? 운과 상황이라는 것이 있잖아요? 


 세 번째는, 이것은 첫 번째와 좀 연결되는데, 극단적인 순응을 요구한다는 것입니다. 그때 왜 몇 번째 세션이었지? 김박사가 막 몰아붙이듯이 매일매일 진심으로 썼냐고 한 적 있지 않나요, 그 아주머니인가 아가씨한테? 그런 식이예요. 뭐 하루만 빼먹어도, 그것 봐라, 너란 놈들은 의지박약이고, 그래서 안 되는 것이지 이렇게요.


 마지막은 뭐랄까, 제가 진짜 나쁘다고 생각하는데요, 뭐가 잘 안 되면 그게 사실은 너에게 무의미한 것이라고 치부해 버리는 거예요. 네가 그렇게 절실하지 않은 것을 보니, 그 목표는 너에게 큰 의미가 없는 것이다. 진정한 목표를 찾으라고 하지요. 그치만 이 ‘진정한’의 의미가 너무 모호하지 않아요?      


 정현은 김용광의 말을 들으면서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그러다가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정말 다 말씀하신 게 맞는 것 같아요. 여자친구분도 현명하시네요. 예를 들면 누구를 좋아한다고 혼자서 마음대로 결정하고, 혼자서 자기 사랑을 이루겠다고 굳게 믿고 행동하면 그게 요새 말하는 스토킹 아니에요? 정신병 같은? 


 그런데 저는 또 한편으로는 이 세션이 그렇게 나쁘지만은 않았어요. 김경열 박사님의 말씀을 듣다 보면 저는 막 힘이 솟았거든요. 아, 이렇게 하면 되겠구나. 누구나 다 인생의 목표한 바를 이루고자 살아가는데, 역경도 있고 어려움도 있겠지만, 박사님 말씀처럼 하면 내가 원하는 바를 정말 성취할 수 있겠다는 그런 마음이 들었어요. 왜, 막 힘없을 때 수액 맞으면 힘 나잖아요? 그런 수액 같았어요, 저에게는.”     


 김용광은 그렇게 볼 수도 있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서 둘은 남은 두 사람, 이연자와 서수지는 어떻게 하고 있을까로 화제를 돌렸다.     


 김박사는 허망한 눈빛으로 두 여자를 바라보았다. 왜 자신의 목표가 이루어지지 않았을까? 나는 분명 이 네 사람과의 여정이 성공적으로 끝나고 이 성공 스토리를 유튜브 소재로 삼고, 책까지 낼 계획이었는데. 나는 세상의 그 많은 자기 계발 전도사와는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는데. 이런 생각에 잠겨 있는데 이연자가 입을 열었다.     


“박사님, 힘내세요! 저는 누가 뭐래도 박사님 편이어요. 저는 박사님 말씀 듣고 정말 많이 깨달았어요. 박사님 말씀이 옳았어요. 서울대 가는 것? 그걸 제가 원하는 것이 아니었어요. 우리 두 아들이 행복해하는 것, 우리 아들들이랑 사이좋게 지내는 것, 즐겁게 사는 것 바로 그것이 진정 제가 바라는 것임을 박사님이 해주시는 이 세션들을 통해 알 수 있었어요.”     


 열심히 고개를 주억거리는 이연자의 모습에 김박사는 그래도 내가 한 명은 건졌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자기가 원하던 방향과는 좀 맞지 않았지만, 뭔가 깨달았다고 하지 않는가 말이다. 그때였다. 서수지가 샐쭉거리며 말하는 것이었다.     


“아줌마, 그건 좀 반칙 아니에요? 지금 뭐야, 이날 이때까지 서울대, 서울대 하더니 갑자기 무슨 행복? 즐거움? 아, 딱 보니 안 되는 거 알았구나? 그럼 그냥 ‘포기’라고 하시면 되지 뭘 깨닫긴 깨달아요! 아줌마, 그걸 바로 자.포.자.기.라고 하는 거랍니다!”     


 이연자는 붉으락푸르락 얼굴이 달아올랐다.      


“뭐라고? 이 젊은 년, 아, 박사님 죄송합니다. 감히 박사님 앞에서…. 아가씨, 새파랗게 젊은 사람이 좀 말이 심한 것 아니야?”     


“아아 그래요오? 아니 듣다 보니 웃겨서요. 이건 뭐, 공부 열심히 해서 서울대 가고 싶다는 사람한테 공부가 전부가 아니야,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야, 길가의 작은 풀꽃을 봐, 하늘을 봐, 모두 저마다 열심히, 아름답게 살고 있잖아, 공부를 못해도 괜찮아, 너는 너 자체로 소중한 존재야, 이런 말 하는 거랑 똑같잖아요. 


 아줌마는 사실 서울대 가는 공부 방법을 알고 싶었던 거 아니에요? 아니면 그 뭐랄까, 합격의 비밀, 열쇠, 이런 것? 그런데 그냥 아, 아니구나, 아줌마 아들들은 글렀구나 싶어서 지금 길 돌린 거잖아. 그냥 나처럼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하라구!”     


“허, 허, 아니, 그래 에르메스 백이 당신이 할 수 있는 거였어, 그래?”     


“어머 어머, 이 아줌마 좀 봐, 내가 제일 먼저 목표 달성했는데, 잊으셨어요?!”     


 두 여자의 계속되는 싸움에 김경열 박사는 소리를 버럭 질렀다. 성공하러 온 사람들이 이게 도대체 무슨 추태냐고, 다들 썩 나가라고 김박사는 일갈했다. 


 김박사는 텅 빈 방 안에서 자괴감이 몰려오는 것을 어찌할 수 없었다. 나의 성공 신화는 계속되어야 하는데. 역시 무작위로 사람들을 뽑는 것이 아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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