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순여는 법당 마당을 쓸고 있었다. 이제 이곳을 지키는 사람은 허순여와 아들 경일이뿐이었다. 남편 김영욱은 그런 소동을 벌이고는 이곳을 다시는 찾지 않았다. 한동안 경찰이 이곳을 들쑤셨고, 사이비 단체니 뭐니 하면서 조사를 해 댔다. 허순여도 경찰 조사를 받았다. 미성년자 약취 유인이니 뭐니 해가면서 그들은 순여에게 죄를 똑바로 말하라고 소리 지르며 겁을 주었다. 그러나 허순여는 자기의 주인은 자기 자신이라는 가르침만 준 것이라고 할 수밖에 없었다. 순여 자신이 그렇게 배웠기 때문이다. 일 년 정도가 지난 후에는 그녀는 찾는 횟수도 줄어들고 사람들의 관심도 점점 사그라졌다. 오직 남편의 얼굴사진이 붙은 지명수배 전단만이 법당 벽에 붙어있을 뿐이었다.
순여는 제 아들이 큰 주인이 된다는 말을 굳게 믿고 있었다. 아쉽게도 경일은 이 난리 속에서도 공부의 끈을 놓지 않았으나 대학시험은 떨어지고 말았다. 하긴 그 난리통에 어떻게 제정신을 유지할 수 있었겠는가. 아들은 아침 일찍 나가서 늦게 돌아오는 일이 빈번했으나 허순여는 아들이 주인이 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허순여는 아들을 깎듯이 대했고 늘 큰 주인님이라며 존대하였다. 경일은 처음에는 그런 그녀를 몇 번 말렸으나 결국은 그냥 두었다.
경일은 담배를 꼬나물었다. 어린 중학생이 자신에게 밥그릇을 땅땅 치던 모습에 그 할아버지란 놈이 고개를 숙이던 모습이 잊히질 않았다. 이 버러지 같은 놈들. 내가 누군데! 경일은 큰 주인님께 말씀을 배우던 시간이 생각났다. 그분은 나를 특별하다고 해주었다. 경일아, 세상에는 어리석은 자들이 많다. 너와 나처럼 선택받은 자들, 깨어있는 자들은 그러한 어리석음을 없애주어야 한다. 미혹에 빠지지 않도록, 스스로의 주인이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경일은 어느 날 물어보았다.
내가 특별한 것은 어떻게 알아요? 그리고 큰 주인님은 누구나 자신이 자기 주인이라고 하셨잖아요? 그런데 왜 이 주인들도 차이가 있어요? 그러자 큰 주인은 크게 웃었다. 경일아, 너 태양이 왜 태양으로 정해졌는지 그 이유를 생각해 본 적 있느냐? 태양은 그렇게 태어났기 때문에 태양인 것이다. 그냥 그렇게 정해진 것이야. 너와 나도 마찬가지이다. 그렇게, 특별하게 선택받은 것이야. 왜 그러느니 따질 필요도 따질 수도 없다. 태양이 태양인 것처럼.
경일은 알 듯 모를 듯했으나 일단 기분은 좋았다. 그럼, 나는 태양과 같은 존재? 그래서 나만 늘 학교 갔다 오면 큰 주인님에게 가르침을 받은 것이로구나. 경일은 큰 주인이 죽고 나서 한참 방황을 많이 했다. 태양이 그렇게 어이없게 사라질 수도 있는 것인가. 그리고 그 태양을 없애버린 사람이 자신의 아버지라는 것도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었다. 경일은 그냥 자기의 인생을 포기하고 싶었다. 그런데 자신의 어머니는 늘 자신이 엄청난 존재인 것처럼 경외하는 것이었다. 불편하고 짜증이 났다.
그러나 오늘 그 할아버지를 통해 경일은 큰 주인이 주었던 깨달음을 되살릴 수 있었다.
나는 특별한 존재라는 것을 그동안 잊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