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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JOH Oct 21. 2024

1991년 4월

 허순여는 법당 마당을 쓸고 있었다. 이제 이곳을 지키는 사람은 허순여와 아들 경일이뿐이었다. 남편 김영욱은 그런 소동을 벌이고는 이곳을 다시는 찾지 않았다. 한동안 경찰이 이곳을 들쑤셨고, 사이비 단체니 뭐니 하면서 조사를 해 댔다. 허순여도 경찰 조사를 받았다. 미성년자 약취 유인이니 뭐니 해가면서 그들은 순여에게 죄를 똑바로 말하라고 소리 지르며 겁을 주었다. 그러나 허순여는 자기의 주인은 자기 자신이라는 가르침만 준 것이라고 할 수밖에 없었다. 순여 자신이 그렇게 배웠기 때문이다. 일 년 정도가 지난 후에는 그녀는 찾는 횟수도 줄어들고 사람들의 관심도 점점 사그라졌다. 오직 남편의 얼굴사진이 붙은 지명수배 전단만이 법당 벽에 붙어있을 뿐이었다.     


 순여는 제 아들이 큰 주인이 된다는 말을 굳게 믿고 있었다. 아쉽게도 경일은 이 난리 속에서도 공부의 끈을 놓지 않았으나 대학시험은 떨어지고 말았다. 하긴 그 난리통에 어떻게 제정신을 유지할 수 있었겠는가. 아들은 아침 일찍 나가서 늦게 돌아오는 일이 빈번했으나 허순여는 아들이 주인이 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허순여는 아들을 깎듯이 대했고 늘 큰 주인님이라며 존대하였다. 경일은 처음에는 그런 그녀를 몇 번 말렸으나 결국은 그냥 두었다.      


 경일은 담배를 꼬나물었다. 어린 중학생이 자신에게 밥그릇을 땅땅 치던 모습에 그 할아버지란 놈이 고개를 숙이던 모습이 잊히질 않았다. 이 버러지 같은 놈들. 내가 누군데! 경일은 큰 주인님께 말씀을 배우던 시간이 생각났다. 그분은 나를 특별하다고 해주었다. 경일아, 세상에는 어리석은 자들이 많다. 너와 나처럼 선택받은 자들, 깨어있는 자들은 그러한 어리석음을 없애주어야 한다. 미혹에 빠지지 않도록, 스스로의 주인이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경일은 어느 날 물어보았다. 


 내가 특별한 것은 어떻게 알아요? 그리고 큰 주인님은 누구나 자신이 자기 주인이라고 하셨잖아요? 그런데 왜 이 주인들도 차이가 있어요? 그러자 큰 주인은 크게 웃었다. 경일아, 너 태양이 왜 태양으로 정해졌는지 그 이유를 생각해 본 적 있느냐? 태양은 그렇게 태어났기 때문에 태양인 것이다. 그냥 그렇게 정해진 것이야. 너와 나도 마찬가지이다. 그렇게, 특별하게 선택받은 것이야. 왜 그러느니 따질 필요도 따질 수도 없다. 태양이 태양인 것처럼.      


 경일은 알 듯 모를 듯했으나 일단 기분은 좋았다. 그럼, 나는 태양과 같은 존재? 그래서 나만 늘 학교 갔다 오면 큰 주인님에게 가르침을 받은 것이로구나. 경일은 큰 주인이 죽고 나서 한참 방황을 많이 했다. 태양이 그렇게 어이없게 사라질 수도 있는 것인가. 그리고 그 태양을 없애버린 사람이 자신의 아버지라는 것도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었다. 경일은 그냥 자기의 인생을 포기하고 싶었다. 그런데 자신의 어머니는 늘 자신이 엄청난 존재인 것처럼 경외하는 것이었다. 불편하고 짜증이 났다. 


 그러나 오늘 그 할아버지를 통해 경일은 큰 주인이 주었던 깨달음을 되살릴 수 있었다. 


 나는 특별한 존재라는 것을 그동안 잊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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