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세요?
그날의 전화 한 통으로 이 모든 것이 시작되었다.
배경은 일본 도쿄의 신주쿠. 4층 높이 아담한 건물의 1층.
20여 평의 작은 사무실. 오후 4시 30분경. 사무실 전화가 울린다.
잠시 후, 일본인 직원이 보육원(어린이집)이라며 전화를 나에게 넘긴다.
한국이었다면 휴대폰으로 전화하거나 흔히 사용하는 알림장 앱을 통해 곧장 부모에게 연락했을 것이다. 일본의 보육원이나 학교에서는 통상적인 근무 시간에 학부모와 통화를 해야 할 급한 일이 생기면 학부모가 다니는 회사 대표 번호로 전화를 건다. 이렇게나 번거롭게 연결할 일인가 싶지만, 일본의 비즈니스 문화에는 근무 시간에 사적인 일은 하지 않는다는 기준이 있다. 사적인 것에는 개인 휴대폰이 포함된다. 근무 중에 휴대폰 통화는 물론 자기 휴대폰을 책상에 꺼내 놓는 것도 삼간다.
“모시 모시?” 사실 일본인 직원이 전화를 연결해 줄 때부터 짐작은 했다. 뻔하다. 나를 찾는 긴급한 전화가 올 곳은 보육원밖에 없다. 아이가 고열이 나고 축 쳐저 있어 조기 귀가를 권고하는 연락이 오는 게 대부분이다. 네 살, 두 살인 아이 둘이 번갈아 가며, 우애 좋게 고열을 주거니 받거니 하는 바람에 일하다가 말고 불려 나가기를 여러 날. 아주 여러 번이었다. 회사로 전화가 오다 보니 같이 일하는 직원도, 관리자도 아니 작은 사무실 전체가 다 알았다. 오늘 아이의 열이 몇 도인지.
그런데 오늘은 아니다. 아침에 깨워도 잘 안 일어난다거나 밥을 시원찮게 먹는다거나 뭔가 전화가 올만한 조짐이 전혀 없었다. 조퇴를 할 것만 같은 아침에는 앉자마자 얼른 내 할 일도 하고 남의 일도 할 게 없나 두리번 거리며 찾게 된다. 점심을 먹자마자 사무실로 부리나케 들어와 앉는다. 조퇴와 결근을 많이 해 먹은 자의 자기반성이다. 그런데 오늘은 아니다. 정말 급작스럽다. 선생님은 아이가 아파서 전화한 것이 아니었다. 만 2세 아들이 같은 반 친구의 손을 깨물었다고 한다. 처음 있는 일이다. 웬만큼 심각한 상황이 아니라면 선생님께서 나의 공적인 시간을 비집고 들어올 리가 없으니 이야기를 다 듣기도 전에 마음이 내려앉았다. 가방에 달려 있던 상어 피규어를 친구가 만지작거리는 게 싫었던 아들은 자기 쪽으로 가방을 당겼다. 하지만 친구가 계속해서 만지자 참지 않고 그 손을 물어버린 것이다. 죄송한 마음에 어떻게 반응해야 하나 머릿속으로 열심히 일본어 번역기를 돌리고 있는데, 번역기에 빨간 불이 들어온다.
“너무 기쁜 소식 아닌가요?”
내가 방금 무얼 들은 건가. 속으로 반성을 한다. 뭐가 기쁘다는걸까. 나의 일본어가 모자라도 한참 모자라서 잘못 알아들었나보다.
이어서 들려온다. “이제 1시간 반 후면 퇴근하고 오실 테지만 이 기쁜 소식을 조금이라도 빨리 전해 드리고 싶어서 전화 드렸습니다.” 기쁘다는 게 맞는 거였다니. 옳게 들었으나 어떤 답을 해야 할지 몰라 다른 소리를 했다. “다친 아이 손은 괜찮나요?? 그 친구 어머니께 제가 따로 사과의 전화를 드려야겠죠?”
“어머니, 두 살 아이가 물면 얼마나 세게 물었겠어요. 자국은 있지만 괜찮을 겁니다. 따로 사과는 안 하셔도 됩니다. 만지지 말라고 했는데 계속한 것은 그 친구니까요. 그럼 어머님, 나중에 또 말씀드리겠습니다.”
수화기를 내려놓고, 내 책상 모니터에 숫자가 가득한 엑셀 화면을 보는데 마음에서 무언가 쑥 올라오더니 목이 미어진다. 숫자가 흐릿해진다. 조금 전 선생님의 그 말이 몇 주 전의 일과 연결되며 이내 전화의 의미를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선생님의 벅차고 들뜬 목소리만큼이나 나도 너무 기쁘면서 동시에 너무 슬펐다.
몇 주 전의 일은 이렇다. 긴히 할 말이 있다며 보육원에서 면담을 요청했다. 아이를 주로 돌보는 담임과 부담임이 먼저 아이의 발달에 관해 의심을 가졌고, 원장 선생님이 한동안 교실로 와서 아이를 유심히 지켜 본 결과 모두가 동의하게 되었다고. 만 2세의 경우, 다른 친구가 와서 자신의 장난감을 빼앗아 가면 도로 빼앗아 찾아오든가, 다른 장난감을 찾던가, 그 자리에서 울던가 하는 반응이 있는데 아이는 아무 반응이 없었다. 세 분 선생님의 조심스럽고, 신중한 단어 표현과 진지한 태도에도 불구하고 당시에는 전혀 납득할 수가 없었다. ‘이렇게 잘 먹고 잘 자고 잘 크는 순둥이한테 발달의 문제라니. 아무도 없는 외국에서 오히려 나를 도와준 효자를 몰라보고 말이지.’ 그저 순한 남자아이에게 높은 기준의 자를 들이댄다 싶었다. 원장 선생님이 설명을 마치고, 내 생각을 물으셔서 이중 언어 환경이라 아이의 언어가 부족하다 보니 반응도 느리지 않겠는가 반박했다. 나의 말에 세 분은 한발 물러나 그렇다면 이중 언어 환경을 고려해 조금 더 지켜보자며 이야기를 마무리했다.
오늘의 전화는 몇 주 전 선생님들이 문제 제기했던 바로 그 근거를 뒤집는 일이었다. 누가 어떤 행동을 하더라도 별 반응 없이 허공만 보던 아이가 친구를 향해 내 물건을 만지는 것이 싫다고 행동으로 말한 것이다. 그것은 아이가 보육원을 다니기 시작한 후 최초의 ‘자기 의사 표현’이었다. 아이가 두 손을 놓고, 발을 떼며 처음 걸음마를 하는 그 순간처럼, 처음으로 의사 표현의 능력을 발견한 이 기쁜 순간을 선생님은 나에게 빨리 전해주고 싶으셨던 거다. 선생님들은 말로만이 아니라 정말로 지켜보고, 기다리고 있었다. 꼭 언어의 틀이 아니더라도 어떠한 몸짓이든 소리이든 아이의 의사 표현이 나오는 순간을 기다렸던 만큼 놓치지 않고 알아챘던 것이다. 감사하고 죄송했다. 아이가 기특했고, 엄마로서 미안했다. 엄마인 나는 무반응을 순둥이라 생각하였고 아이가 마침내 보인 첫 자기표현을 공격 행동으로 생각했다. 아이의 고유한 발달을 있는 그대로 보지도 못하고, 인정하지 못했던 것은 선생님들이 아니라 나였다. 그동안 내가 알고 있던 모든 상황과 말들이 전부 뒤집어졌다. 그날의 전화 한 통으로 그렇게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