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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s Sep 28. 2024

2화 열정이 넘쳤던 입사 초기 시절

하지만 빠르게 식어버린 나의 열정

시스템 부서로 배치받고 얼마 되지 않았던 시절, 여러 법령과 시스템 사용법들을 익히던 나는 놀라울 정도로 열정적이었다.

새로 들어온 신입들을 그저 업무상으로 챙겨줄 뿐인 대리님한테 필요 이상으로 친한 척을 했었고,

교육을 해주는 분들한테 조금이라도 더 잘 보이고자, 그저 "똑똑해 보이는 척"하는 질문을 했었다.

정작 질문을 던졌을 때, 제대로 된 답변은 내가 아니라 내 동기가 해서 부끄러웠던 기억도 새삼 떠오른다.


전형적으로 의욕과 열정만 앞서는 신입사원의 모습으로 보였겠지만,

특유의 허세와 자신감으로 좀 더 재수 없는 신입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더 정확한 평가일 것이다.

그래도 그 허세와 열정, 약간의 허영심까지 섞였던 모습이 좀 먹히긴 했었나 보다.

나는 시스템 부서의 팀장님의 마음에 들어, 곧바로 어려운 업무를 맡게 되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팀장님은 정말 말도 안 되는 업무를 사회 초년생한테 맡긴 거였는데

그때는 내가 알지 못했다.

그 업무가 연구용역이나 컨설팅회사에 의뢰해야 할 정도의 업무라는 걸.

나는 그 업무 때문에 힘들었지만, 내가 한 업무의 결과물은 형편없었다.

그 형편없음을 알아채는 메타인지는 있었기에, 나는 일을 하면서 회의감이 들었다.

설상가상, 정부부처와 회의하면서 내가 했던 업무들이 아무 쓸데없는 일이 되면서 회의감은 더욱더 깊어졌다.


그저 첫 사회생활이라 뭐든지 잘하고 싶었고, 주위의 인정과 칭찬을 받고 싶었던 나는 몹시 부끄러웠다.

동기들이 쉬거나, 취미생활을 즐길 때 나는 혼자 집에서 노트북으로 회사의 엑셀 파일을 가져와서 계속해서 다듬었던 나는 도대체 무엇이었는가?

새로운 아이디어를 고안해 보고자 쓸데없이 한글파일을 켜놓고 머리를 쥐어짜던 그 고뇌의 시간은 아무 의미 없는 시간이었을까?


그래도, 나는 그 정도로 열정이 식는 사람은 아니었다.

내가 하던 업무가 뒤집어진 게 약 2개월 정도 되었을 때인데, 뭐 얼마나 대단한 업무를 했겠는가?

신입 혼자 신나게 공상에 가까운 아이디어를 궁리한 것이었을 뿐.

공공기관이라 실적에 연연한 곳도 아니었고, 월급도 꼬박꼬박 줬기에 훌훌 털 수 있었다.


하지만, 2개월이 지나면서 훌훌 털 수 없는 업무와 감정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바로, “민원”이었다.

공공기관 근무를 하면 피할 수 없는 업무 중 하나인 민원.

처음 입사할 때도 어느 정도 각오를 하고 왔었기에, 초반에 전화를 받았을 때는 의외로 괜찮았다.

법적 의무화가 되기 이전이었으니, 사람들은 그저 가볍게 시스템에 대한 질문을 하였고 답변은 어렵지 않았기 때문이다.


생각보다 별 거 없는데? 할만한데?라고 생각했을 무렵부터, 민원강도는 점점 세지기 시작했다.

단순한 짜증을 넘어서 쏘아붙이는 사람도 생겨났고, 내 동기는 쌍욕을 듣고 멘탈이 나가기도 했다.

한숨을 쉬는 민원인들도 많았는데, 전화를 끊고 나면 나도 한숨을 쉬게 되었다.

적게는 10통에서, 많게는 20통까지 전화를 받기 시작하면서 업무에 차질이 생기기도 했다.


전화를 받는 순수한 시간만 따진다면, 30분 ~ 1시간 밖에 되지 않았지만 이 시간들이 나머지 업무시간인 7시간에 영향을 주기 시작했고, 급기야는 퇴근 후의 내 개인시간에도 악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나는 민원 앞에서 점점 무너지기 시작했다.




카드사 콜센터, 다른 기업들의 CS팀에 비하면 내가 받은 민원들은 별 일이 아닐 것이다.

하루 종일 전화를 받고, 욕과 짜증은 기본으로 듣는 사람들에 비하면 내가 받은 민원은 솔직히 애들 장난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이 정도의 민원을 받을 줄은 생각도 못했다.


사이트의 법적 사용 의무화가 다가오면서, 업체 관계자들이 점점 더 많이 테스트를 시작했다.

그만큼, 더 많은 민원들이 시스템 부서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내가 봐도 엉망진창이었던 시스템 때문에, 외부인들의 심정과 입장은 이해는 갔다.

하지만, 그들의 공격적인 말과 불쾌한 감정까지 이해할 수는 없었다.

나는 점점 외부인들의 화풀이를 들어줘야 하는 감정노동자가 되어가는 기분이었다.


이렇다 할 개선은 이뤄지지 않은 채, 의무화 날짜는 점점 다가왔다.

의무 사용이 두 달도 채 남지 않았을 무렵, 우리 부서는 오프라인으로 설명회를 열기로 했다.

현재의 진행상황과 향후 계획을 외부 업체사람들에게 알려줘야 할 필요성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렇게, 100명이 넘는 인원이 참석하는 설명회가 시작되었고, 거기서 나는 해서는 안 될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나도 외부 업체 사람들과 똑같은 생각과 감정을 가지게 된 것이다.

내가 개선해 나가야 할 이 시스템에 대해, 나도 욕지거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의견을 낼 수는 있었지만, 그 의견은 잘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항상 최전선에서 민원만 받고 있었다.

그 최전선의 절정이 바로 오프라인 설명회였다.

나는 이 업무에 대해 깊은 회의감에 빠지게 되었다.




설명회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내가 그렇게 된 걸까?

뭐 사실, 그렇게까지 큰일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전화와 달리, 오프라인으로 만난 사람들은 대부분 점잖고 친절했다.

민원 전화를 할 때는 날카로운 사람들이, 면대면으로 얼굴을 맞대는 상황에서는 예의를 차리는 듯했다.


문제는, 말투나 어조만 그랬다는 거고 질문하는 내용은 날카롭고 부정적이었다는 것이다.

그 질문의 내용들에 대해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나는 정규직이 아니라 계약직이었다.

그렇기에, 무언가를 개선시키기 위해 용역을 맡기거나 기획하고 있는 사람도 아니었다.

의견을 낸다 한들, 다른 우선순위에 밀려나가기 일 수였다.

그저 윗사람들의 업무 지시를 따를 수밖에 없는 위치였는데, 그 윗사람들조차도 제대로 갈피를 못 잡고 있는 것이 내 눈엔 분명히 보였었다.

그 윗사람들 중 한 명은 이제 막 입사한 주임이었다는 걸 지금 생각해 보면 블랙코미디다.

쓴맛이 아주 진하게 나는 블랙커피처럼 말이다.


민원인들의 질문 속에서, 나는 다음과 같은 답변만 앵무새처럼 할 수밖에 없었다.

“말씀하신 사항, 다음 시스템 업데이트 때 꼭 반영하여 불편사항을 개선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하게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내 답변을 듣고 나서 더 이상의 추가 질문은 하지 않았다.

사실 알고 있었을 것이다.

누가 봐도 갓 사회에 입사한 것 같은 어리바리한 청년이 고개 숙이고 저렇게 답변하니깐, 그냥 ‘답 없는 상황이구나’하면서 체념한 게 분명하다.


그렇게 수십 번 앵무새처럼 의미 없는 말을 반복한 후, 설명회는 가까스로 마무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남아서 2차 회의를 시작해야 했다.

받았던 질문과 불편사항들을 한데 정리하고, 어떻게 개선시켜 나갈지 의견을 간단히 정리하는 회의였다.

각자 메모했던 내용을 들고 회의에 참석했는데, 내 메모지가 가장 빽빽했었다.


그 당시의 나는, 시스템 개선 업무에 최전선으로 있었던 병사였기에 질문을 가장 많이 받은 사람이었다.

다른 업무를 하던 시스템 직원은 불편사항이나 개선사항 관련 질문을 받을 때마다, 나를 찾았으니까.

그때는 스스로 좀 멋있다고 자뻑도 했었던 거 같은데, 다시 생각해 보면 그냥 총알을 가장 많이 맞은 부상병일 뿐이었다. 총알은 피해야 하는데 맞아서 뭐 하겠는가?


회의의 중심은 총알을 가장 많이 맞은 내가 위주였다.

다른 기관의 정규직 과장님과 우리 부서의 차장님도 계신 자리에서 내가 주도적으로 이끌어간 것은 좀 건방졌다. 그런데 뭐 어쩌겠는가? 가장 총알을 많이 받은 내가, 나의 부상을 속으로 눈물 흘리며 말하는데 들어주셔야지.


그렇게 나의 총탄들을 다 꺼내어 말씀드리고, 다른 분들의 총탄까지 꺼내고 정리하니 회의가 끝났다.

회의가 끝나고 나서 돌아가는 길에서 나는 쓴웃음이 났다.

이번 회의에서 말한 내용들은 얼마나 반영이 되고, 개선될 수 있을까?

10%라도 되려나? 

오프라인에서 친절했던 외부인들은 유선상으로는 또 얼마나 불친절해질까?

다음 날에 다시 출근하면, 나는 또 민원을 받으면서 하루하루 버텨나가야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더 나아지는 미래가 아닌, 그저 버텨나가야 하는 내일만이 가득한 이 상황이 암울했다.

이때부터, 내 마음은 점차 병들어갔다.

한창 더워지기 시작한 7월 무렵, 뜨거웠던 내 마음은 얼음이 다 녹은 아이스커피처럼 밍밍해졌다.


나는 밍밍해진 아이스커피를 버리고, 새로운 커피를 주문하기로 마음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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