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심.

by Traum

유난히 전화가 너무 많이 오고, 한 번의 통화가 1시간 이상이었던 오늘 일요일 아침부터 오후까지 독일어로만 총 6시간의 통화. 전화하다가 이렇게 지쳐본 적도 오랜만이다.


오후에 큰아들이 운동 가는데, 다 같이 나가면서 오랜만에 내가 운전대를 잡았다. 아는 길이라 익숙해도, 운전석에 앉은 것과 조수석에 앉은 것은 나에겐 너무 다른 느낌이다 ^^. 블랙박스도 없고, 거리에 카메라도 없고, 뭔 일이 나면 모든 상황을 뒤집어쓸 아주 딱 좋은 조건; 아시아인, 여자, 독일어가 모국어 아님; 을 안성맞춤으로 갖고 있기에, 정말 웬만해서는 운전을 안 하려고 한다.


집에 다시 돌아오는 길,

나를 그냥 K.O. 를 시킨 어떤 여자가 있다.

집 다 와서 골목길. 양쪽으로 차가 주차가 되어있어서, 조심히 가야 하는 길에, 내리막 방향 왼쪽에 어떤 여자가 주차를 하고 문을 다 열고, 뒷좌석에서 뭘 하고 있다.

그 여자가 문을 닫아야 우리 차가 지나가는걸... 그 여자는 분명히 안다.

그 여자는 우리 차를 보았다. 그리고 마치 아무것도 안 본 듯이 자기가 하던 것을 계속한다. 그럼 그렇지, 비켜줄 독일인이 아니지, 어디까지 언제까지 하나 보려고 기다렸다. 정말 진심으로 궁금했다, 언제 비킬지.

차 안에서 운전하다가, 무언가나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은, 10초도 느린 것 같이 느껴진다.

우와.... 정말 대단한 여자이다. 정확히 라디오의 한 노래가 시작해서 끝날 때까지 약, 4분 30초 정도 동안 자기가 하던 것을 계속한다. 뒷자리 휴지를 꺼내는 것을 봤고, 창문을 닦는다. 우리 차를 의식한다, 그리고는 계속 자기 하던 일을 한다. 그리고 다 했는지, 문을 닫더니 아주 천천히 잠바를 입고, 목도리를 두르고, 차 뒤로 가서 트렁크 정리를 하더니, 다시 앞으로 와서 가방을 꺼내고, 집으로 들어가 버린다.


우리는 그냥 말을 잃었다. 마지막에 어떻게 비킬지, 비키는 상황까지 얼마나 걸릴지. 정말 궁금했고, 일부러 클랙슨을 누르지 않고 기다려봤던 것이다.

속에서 천불이 나지만, 언제나 매일 천불이 나는 게 일상이기에, 사실 그렇게 놀랄 일도 아니지만, 정말 가지가지한다는 생각에 또 한 번 K.O.


집으로 들어가는 여자에게 나는 클랙슨 "빵" 소리를 크게 내었다.


어이가 없어서 말을 잃었던 남편이 말을 이어간다,

"하... 언제까지 이렇게 집만 나왔다 하면 상식 밖의 상황을 언제나 마주해야 하는 걸까, 우리는 매번 상황과 다른 사람을 만날뿐, 매일 이런 사람들하고만 살아. 정말 이제는 보는 것만으로도 너무 지친다..."

아이들이 이야기한다.

"엄마아빠, 학교에서 독일어 선생님도 얘기해, 독일인은 가장 큰 특징은 너무 이기적인 거라고 "


독일 문화에 깊이 들어온 그 어느 순간부터 적어도 아직, 진정 마음에서 우러나와 남을 배려하는 사람들을 만난 적이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힌다는 것이... 현실임을 다시 깨닫는다.


점점 더 심해지는 것 같다. 요즘 학교에서도 이런 서로 간의 이기심으로 참 많은 다툼이 생긴다, 옆에서 보면 참 과간이다. 서로가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 자기만 옳다고 싸운다. 협상과 합의는 존재하지 않는다. 양보와 배려는 더욱더 보기 힘들다. 그러고 서로 묻는다, "너는 왜 너 생각만 해?" 옆에서 들으면, 정말 어이가 없다.


보고도 못 본 척,

듣고도 못 들은 척,

언제까지 가능할지는 모르겠다.

매일매일 매 순간 그렇게 연습을 한다.

그러나...

안 되는 날이 많아진다.

그 이유는, 이젠 진정 한계점을 넘어서서 지친 것이겠지....


이렇게 몸과 마음이 지치는 일이 있지만,

그 와중에 아들들의 아주 기분 좋은 소식들에 힘입어 내일부터 또 다른 일주일을 맞이해보려고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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