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엄마되기 1.

by Traum

첫 아이를 임신했을 때,

집에 인터넷이 없었다. 독일 모든 가정집에 대부분이 인터넷이 보급이 안되었을 때다.

핸드폰은 잘 터지지 않는 전화만 겨우 되는 폰이었다.

한국에 전화하려면 해외전화카드를 사서 밖에서 공중전화를 찾아 줄을 서서 전화를 하던지, 아니면 전화방(?)이라는 아주 낯선 곳에 가서 전화를 해야했다.

나는 분명 이 정도까지의 불편함이 독일이라는 흔히 우리가 모두 얘기하는 선진국에서 있을거리고는 전혀 상상하지 못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래도 그때까지만 해도,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살아갔었다.


첫 산부인과 진료가 8주 때였다.

나는 분명 4주째부터 알았는데, 첫 진료 예약이 그랬는걸. 방법은 없다. 왜냐하면, 다른 곳은 알 길이 없었으나, 암튼 우리가 사는 곳은 그때만 해도 외국인을 받아주는 병원이 별로 없었다. 엽산이 뭔지도 몰랐고, 나는 첫 진료 이후부터 엽산을 복용하기 시작했으며, 12주에는 성별을 알았고.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 초음파 진료였다.

그리고 20주 때, 피검사를 하고, 초음파 진료도 없이, 불편함이 있냐 없냐의 질문을 마지막으로, 나는 결국 아기와 만날 때까지 병원을 가본 적이 없다. 산부인과가 긴 휴가에 들어갔기 때문... 급하면 다른 병원을 가라고 써붙여놓긴 했지만, 그곳에서는 다른 병원의 산모의 진료는 받지 않는다는..... 아주 간단하고도 당당한 메시지를 보고, 당황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아기는 잘 크고 있는지, 역아는 아닌지, 나는 괜찮은지 등등, 전혀... 알 수가 없었다.


독일은 산모가 진료를 시작한 산부인과에서 아기를 출산할 수 없다. 그리고 임신 중간에 병원을 바꾸기가 어렵다, 아니 사실 안된다. 출산 병원은 각 지역의 큰 병원 중 출산병원 몇 군데(우리 사는 곳 경우 3군데) 중 하나를 산모와 아빠가 직접 돌아다니며 보고 맘에 드는 곳을 선택하고, 출산예정일을 얘기해서 예약을 하는 제도이다.

초반에 설명을 들었었지만, 그때의 우리의 독일어가 0.01초 만에 궁금한걸 모국어처럼 딱딱 물을 수 있는 그런 수준도 아니었을뿐더러, 주변에서 들어본 적도 없고, 산부인과는 휴가에 들어갔고, 배는 점점 불러오는데, 참 막막했다. 우리는 처음부터 병원이 아닌 산파가 아기를 받는 가정출산센터를 생각을 했었다. 왜냐하면, 어차피 큰 병원에 가도 의사 없이 산파가 아기를 받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출산센터가 바로 집 옆 건물이었기 때문이다.


첫 아이에, 병원도 40주 동안 총 3번만 갔던 처음 엄마가 되는 과정에 있었던 나....


너무 몰랐기에 무섭지도 않았고, 너무 듣지도 보지도 못해 봤기에 원래 다 그런 줄 알았다.....


그렇게 나는 아기와 만날 시간이 다 되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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