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오후.
세탁실에서 이웃집 아주머니를 만났다.
(세탁실 : 집 안에 세탁기를 설치할 곳이 없고, 옛날 방식 그대로, 지금까지도 독일 집의 대부분은 (북쪽은 모르겠으나, 아마도 크게 다르진 않을 듯하다, 적어도 남부 독일의 근래에 막 지어진 집을 제외하고는) 지하에 세탁실이 따로 있다. 엘리베이터도 없다. 빨래를 하려면 4층에서 빨래를 갖고 내려가서 세탁기를 돌리고, 올라갔다가, 다시 가지러 내려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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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가를 다녀온 아주머니와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북쪽 도시 함부르크를 갔다가 Sylt라는 독일 최북단 섬에 가서 물멍을 한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사실 우리의 이번 여름휴가에 제일 먼저 계획한 곳이었다가 너무 날씨가 안 좋아서 포기했던 곳이기에, 아주 흥미진진하게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그 물멍을 하며 거센 파도를 보는 것이 올해 나의 간절한 소원이었는데....
어떤 이야기 끝에,
100% 독일 사람인 그분 조차도, 이 동네에서 태어나고 한 번도 떠나지 않고 58년째 살고 있음에도, 북쪽 독일에 갔다 오면, 고향에 대해 문화 충격을 받는다는 이야기를 해주셨다.
그러면서 이곳이 고향인 본인도 그런데, 너희들은 얼마나 힘들겠냐며... 독일인을 대표해서 사과한다고 하신다.
요즘은 말도 안 되게 난민들이 아시아인에 대한 인종차별까지 더해져서, 어쩜 점점 더 살기 어렵다는 말과 더불어, 그동안의 이 동네에서 두 번의 강제 이사의 과정에서 겪은 모욕, 부당한 차별과 정상적이지 못한 그들의 사고, 행동 등등에 대해 짧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 분은 눈물을 흘리시더니 나를 꼭 안아주신다.
지난 일이지만 크게 분노하셨고, 그걸 이제야 알게 된 것에 대해 미안하다고 하시고, 부끄러워서 어디 가서 독일인이라고 말도 못 하겠다 하셨다..
지금 다시 돌이켜봐도 전혀 말이 안 되는 상황들을,
이제 나는 몇 분 안에, 독일어로 줄거리 요약이 가능하게 되었음을 오늘에서야 알았다.
그 순간 알았다. 나는 이제 머리와 가슴에서 그 상처가 아물었다는 것을.
사실에 근거한 서술일 뿐, 더 이상 감정이 없어짐을 알게 되었다. 물론 아예 잊을 수는 없다. 아주 큰 고통과 시련이었기에, 잊을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무덤덤해졌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너무도 분노했고 억울했던, 비정상적인 현실에 대한 말도 안 되는 엉망진창의 감정들이었기에, 나는 사그라들 것이라고는 전혀 상상도 못 했었다.
그러나 내 안의 또 다른 내가, 나에게 말했던 것 같다.
" 도움이 안 되는 것은 과감히 버려, 그것이 무엇이건. 지금 너에게는 그런 과정이 필요해", 사실 그랬다. 그렇지 않고서는 혼자 버텨내는 것이 너무 힘들었으니까.
이웃 아주머니는 계속해서 나를 안아주셨고, 내 손을 잡고, 눈물을 흘려주셨고, 여기까지 온 것에 고맙다고 하셨다.
그렇게 빨래를 가지러 갔다가 2시간 동안의 대화로,
우리 작은 아들은 세 번이나 엄마를 찾으러 내려왔었지만, 엄마를 데리고 올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고 올라갔다고 한다. ^^
그렇게 집에 와서 남편에게 북해에 대해 들은 이야기를 전달하고 있는데, 초인종이 울린다.
아주머니가 Sylt에서 3D 카드를 사 오셨다고.
보면서 마음이 편안해지길 바라고, 우리의 훗날의 해피엔딩을 향해 앞으로의 날들은 좋은 일들로 가득 메꿔질 것이라며, 이렇게 따뜻한 선물을 주셨다.
오늘 오후, 마음 한편에 크게 뚫려 있던 빈자리가 깊은 한숨과 함께 서러움에서 감동으로 채워지고, 이어 감사함으로 이어지는 놀라운 순간을 마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