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모기 1. 모기의 주식은 피가 아니다!

짧고 치열한 모기의 삶

by 신피질

여름밤, 귓가를 스치는 윙윙거림이 잠을 깨운다.

우리는 본능적으로 손을 휘젓고 “모기는 피를 먹고 산다”는 말을 떠올린다.


하지만 이는 오해다. 모기의 주된 에너지원은 꽃꿀과 과즙, 식물의 수액, 그리고 진딧물이 분비하는 감로 같은 식물성 당분이다.


모기1.png

( 식물 즙을 빠는 모기 )


특히 수컷은 결코 사람을 물지 않는다.

입 구조가 애초에 피부를 뚫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들의 짧은 삶은 꿀과 과즙을 빠는 일상으로 채워지고, 겨우 1~2주 만에 조용히 끝난다.


인간을 괴롭히는 존재는 오직 암컷뿐이다.

암컷 역시 평소에는 수컷과 똑같이 식물의 당분을 먹으며 살아간다.


하지만, 산란기가 오면 달라진다.

알 속 노른자를 채우기 위해서 반드시 단백질과 철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산란에 필요한 난황 단백질 전구체인 비텔로제닌이 만들어져야 하고, 철분은 배아가 발달하는 데 꼭 필요하다. 꿀만으로는 이 원료를 마련할 수 없기에, 암컷은 위험을 무릅쓰고 인간과 동물의 피를 찾는다.


암컷은 성충이 된 직후 단 한 번의 짝짓기 비행으로 교미를 마친다.

정자는 정낭이라는 작은 저장고에 보관되어, 평생 다시 교미할 필요가 없다.


이후의 삶은 단순하지만 치열하다. 며칠에 한 번씩 피를 찾아 흡혈하고, 이틀 뒤에는 백여 개의 알을 물 위에 낳는다.


한 번 흡혈을 마치면, 암컷은 이틀쯤 뒤 100~300개의 알을 물 위에 낳는다. 습지, 웅덩이, 화분 받침… 작은 물웅덩이라면 어디든 알자리가 된다. 그리고 며칠 후 또다시 피를 찾아 나선다.


모기알.png

( 모기 알 )


이 사이클은 암컷의 생애인 한 달 동안 여러 차례 반복된다. 보통 3~5회, 운이 좋으면 수천 개에 달하는 알을 남길 수도 있다. 피는 그저 생존을 위한 음식이 아니라, 후손을 이어가기 위한 치열한 투자다.



모기가 남긴 진화의 흔적


나비는 꽃가루와 꿀로도 알을 낳을 수 있다. 그런데 왜 모기만 피를 필요로 하게 되었을까?

그 이유는 유충 시절에 있다.

모기 유충은 물속에서 자라며 미세한 유기물과 세균을 먹는데, 단백질이 턱없이 부족하다.


혹독한 물속 환경에서도 살아남게 하려면, 애초에 알 속에 단백질과 철분을 듬뿍 채워 넣어야 했다.


그 결과 암컷 모기는 진화 과정에서 피를 산란 영양분으로 활용하는 길을 선택했다.

그리고 다시 흡혈과 산란을 반복한다.


그러나 피를 빠는 순간은 길지 않다. 방해받지 않으면 고작 2분 남짓. 하지만 그 짧은 시간이 암컷에게는 가장 위험한 순간이다. 언제든 손바닥에 맞아 생을 마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암컷은 반드시 이 위험을 감수한다. 피는 한 끼 식사가 아니라, 다음 세대를 위한 원료이기 때문이다.

모기 유충.png

( 물 웅덩이에 있는 모기 유충 )



우리가 듣는 윙윙거림은 대부분 암컷의 날개 소리다.

암컷은 피를 찾기 위해 사람 가까이 다가오고, 그 진동이 귀에 거슬리게 들린다.


수컷도 날개 소리를 내지만 주로 꽃 주변을 맴돌아 우리가 들을 기회는 거의 없다. 흥미롭게도 수컷은 더듬이에 있는 청각 기관으로 암컷의 날개 주파수를 감지하고, 서로 주파수를 맞추어 교미 신호를 주고받는다.


인간에게는 불청객의 소리가, 모기 세계에서는 사랑의 언어인 셈이다.


사람들은 흔히 “내 피가 달아서 모기가 잘 문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모기는 피의 맛을 고르지 않는다. 이산화탄소, 피부 온도, 젖산과 지방산 같은 체취, 피부에 사는 미생물의 냄새 조합이 모기의 선택을 결정한다.


운동 직후나 술을 마신 뒤, 임산부처럼 대사량이 높은 사람에게 모기가 몰리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혈액형에 따라 선호가 다르다는 연구도 있지만, 아직 뚜렷한 결론은 없다. 결국 모기가 선택하는 기준은 피 속의 맛이 아니라, 바깥으로 흘러나오는 신호다.


모기는 인류 역사에도 깊은 흔적을 남겼다. 말라리아와 황열, 뎅기열, 지카 바이러스… 이 작은 곤충이 전한 병으로 수억 명이 목숨을 잃었다. 짧은 생을 불살라 후손을 퍼뜨리는 전략은, 아이러니하게도 인류에게 가장 무서운 위협이 되었다.


짧은 삶 속에서 수컷은 한 번도 사람을 물지 않고 꿀을 빠는 것으로 생을 마친다. 암컷은 정낭 속 정자를 평생 간직하며, 며칠마다 목숨을 걸고 피를 빨아 알을 낳는다. 고작 2분의 흡혈, 그 반복 덕분에 수천의 후손이 세상에 퍼진다.


우리는 모기를 해충이라 부른다. 그러나 그 작은 날갯짓 뒤에는, 짧은 생애를 불태워 수천 개의 생명을 남기려는 전략이 숨어 있다.


모기의 주식은 피가 아니다. 피는 암컷 모기가 후손을 위해 목숨 걸고 찾아야 하는, 단 한 가지 특별한 영양제다.


그리고 그 치열함 덕분에, 인류는 여전히 모기와 함께 살아가고 있다.



keyword
목, 일 연재
이전 12화피와 림프, 그리고 물 한 잔의 여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