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디작은 모기가 인간의 역사를 흔들었다는 말은 과장이 아니다.
여름밤 귓가의 윙 소리와 가려움 뒤에는 제국을 흔들고, 공사를 멈추게 하고, 위대한 인물들의 운명을 바꿔 온 보이지 않는 힘이 숨어 있다.
21세기인 지금도 말라리아는 해마다 약 60만 명의 생명을 앗아가고 환자는 2억 명이 넘는다. 뎅기열은 매년 1억에서 4억 명이 감염되고 수만 명이 목숨을 잃는다.
이 숫자만으로도 모기가 왜 “지구에서 가장 치명적인 동물”이라 불리는지 알 수 있다.
제국을 무너뜨린 보이지 않는 칼날
고대 로마는 지중해 전역을 지배했지만 수도 주변 늪지대는 말라리아모기의 천국이었다.
병든 군인과 시민은 전투력을 잃고 도시는 활력을 잃었다. 로마 쇠퇴의 여러 원인 중 하나가 바로 이 작은 곤충이었다. “모기가 로마를 무너뜨렸다”는 말은 단순한 비유가 아니다.
말라리아는 매년 반복적으로 재발하여, 어린이와 약한 사람부터 죽게 만들어 인구 감소를 유발했다.
특히 로마 군단이 늪지대나, 이집트, 북아프리카 원정에서 집단감염으로 큰 피해를 입었다는 기록도 있다.
아메리카 대륙의 정복사에도 모기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유럽인들은 총과 병기뿐 아니라 황열병과 말라리아를 함께 가져왔다. 면역이 없던 원주민은 무너졌고, 정복 전쟁의 결과는 일방적 학살로 이어졌다.
원주민들은 이 새로운 질병에 전혀 대비할 수 없었다. 총칼로 싸울 수는 있었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모기와 열병 앞에서는 무력했다.
하지만, 정복자들 역시 열대의 모기에 취약해 병사 수천 명이 죽어나갔다. 전쟁의 승패조차 모기가 좌지우지한 셈이다. 18~19세기 미국 독립전쟁과 카리브해 전쟁에서도 전투보다 말리라아가 더 많은 병사를 죽였다는 기록이 있다.
1791년 프랑스 식민지였던 아이티에서 흑인이 반란을 일으켰을 때. 프랑스 스페인 영국이 군대를 파견했지만, 말라리아와 황열병이 유럽군대를 쓸어버렸지만, 흑인 반군은 아프리카 내성 덕분에 피해가 적어 결국 흑인 최초의 공화국이 탄생되었다.
말라리아는 또 다른 방향에서 역사를 바꾸었다. 유럽인들은 어느 정도 병에 노출된 경험이 있었어도 여전히 치명적인 피해를 입었다. 반면, 아프리카인들 중 일부는 말라리아에 대한 유전적 내성을 가지고 있다. 이 때문에 아메리카 농장주들은 원주민보다 아프리카인이 열대환경에서 더 적합하다고 여겼다. 그 결과 말라리아는 아프리카 노예무역을 확대하는 결정적 배경이 되었다. 사탕수수와 목화 농장은 아프리카인의 피와 땀 위에 세워졌다.
위대한 인물들을 쓰러뜨린 작은 곤충
알렉산더 대왕은 바빌론에서 급사했다. 원인에 대한 논쟁은 많지만 말라리아 가능성이 크다는 학설이 제시되었다. 중세의 대문호 단테도 말라리아로 생을 마감했으며, 영국 혁명의 지도자 올리버 크롬웰 역시 말라리아를 앓다 숨졌다. 아프리카의 탐험가 데이비드 리빙스턴은 수십 차례 말라리아에 걸렸다. 끝내 1873년, 말라리아와 이질이 겹쳐 세상을 떠났다.
제국의 정복자도, 위대한 문호도, 혁명가도, 탐험가도 모두 모기의 칼날 앞에서는 속수무책이었다.
파나마 운하를 좌절시킨 모기
19세기말, 프랑스는 대서양과 태평양을 잇는 파나마 운하 공사에 도전했다.
하지만 2만 명 넘는 인부가 말라리아와 황열병으로 죽어나가며 공사는 좌초됐다. 모기가 병을 옮긴다는 사실조차 몰랐던 시대, 삽과 콘크리트는 무력했다.
20세기 초 미국이 공사를 이어받자 상황은 달라졌다. 군의관 윌리엄 고가스는 모기가 병의 원인임을 알고 방역에 돌입했다.
고인 물을 없애고, 살충제를 뿌리고, 모기장을 설치하자 사망률은 급격히 줄었다. 비로소 운하는 완공되었다.
모기는 문명의 거대한 공사를 좌절시키기도, 완성의 조건이 되기도 했다.
현대에도 계속되는 모기의 위협
오늘날에도 모기는 여전히 치명적이다.
말라리아는 여전히 매년 수십만 명의 생명을 빼앗고 있다. 뎅기열은 지구온난화로 인해 한국과 일본, 남유럽까지 확산되는 중이다.
2015년 브라질에서 유행한 지카 바이러스는 임산부 감염 시 신생아 소두증을 유발해 세계적 공포를 일으켰다.
1999년 미국 뉴욕에서 시작된 웨스트나일 바이러스는 지금도 북미 전역에서 환자를 발생시키고 있다.
모기는 단순히 흡혈자가 아니다. 침 속 타액을 통해 기생충과 바이러스를 혈류로 전달하는 완벽한 매개체다.
작은 곤충이지만 인류가 지금도 가장 두려워해야 할 살인자다.
인류의 도전과 배움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모기와 싸워왔다.
고대 이집트 문헌에는 기피제가 등장하고, 조선시대 기록에도 여름철 전염병으로 고통받았다는 흔적이 남아 있다.
그러나 결정적 전환은 모기가 병을 옮긴다는 사실이 밝혀진 19세기말이었다. 파나마 운하에서의 방역은 현대 공중보건의 상징적 사건이 되었다.
오늘날 우리는 살충제와 모기장, 백신, 심지어 유전자 변형 모기까지 동원한다.
월바키아 세균을 지닌 모기를 풀어 바이러스 전파력을 낮추는 실험도 진행된다.
모기를 없애려는 노력은 지금도 계속되지만, 모기는 여전히 끈질기게 인간 곁에 남아 있다.
진화의 거장, 인류의 그림자
모기는 단순한 해충이 아니다.
지금까지 밝혀진 모기 종만 해도 3천5백 종이 넘고, 실제 개체 수는 수조 마리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그 기원은 무려 1억 년 전, 공룡의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호박 속 화석에 고스란히 남은 모기의 모습은 그 오랜 생존 역사를 증명한다.
로마를 무너뜨리고, 대왕과 시인을 쓰러뜨리고, 거대한 운하 건설을 좌절시킨 이 작은 곤충은 여전히 우리와 함께 살아간다.
아이러니하게도 모기는 인류를 괴롭히는 동시에 의학과 방역, 도시 위생을 발전시킨 스승이기도 했다.
모기는 가장 작은 살인자이자 가장 위대한 생존자다.
공룡의 시대부터 오늘날까지, 이 작디작은 곤충은 우리와 함께 역사를 써 내려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