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저녁 강가에 앉아 있으면, 눈보라처럼 흩날리는 작은 곤충 떼를 본 적이 있을 것이다.
가로등 불빛을 향해 몰려들고, 다리 위를 뒤덮어 차가 미끄러질 정도로 쌓이는 날개 달린 곤충들.
사람들은 그것을 ‘하루살이’라부른다. 이름 그대로라면, 이들은 단 하루만 살고 사라지는 것일까?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않다. 하루살이의 삶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길고, 또 훨씬 의미심장하다.
하루살이의 학명은 에페메로프테라 Ephemeroptera다. 그리스어에 에페메로스 ephemeros, 즉 순간적이라는 뜻과 프트론pteron, 날개라는 단어가 합쳐져 만들어졌다. 순간의 날개라는 이름은 성충 하루살이가 하늘을 나는 시간이 극도로 짧다는 사실에서 비롯되었다.
하지만 그 짧음 때문에 이름을 얻은 이 곤충은, 사실 지구에서 가장 오래 살아남은 날개 곤충 중 하나다. 약 3억 년 전 석탄기부터 존재해 왔으니, 공룡보다 오래된 생존자다.
( 하루살이 성충 )
사람들이 하루살이를 떠올릴 때는 날개 달린 성충만 본다. 그러나 하루살이의 삶의 대부분은 물속 유충 시절에 있다. 하루살이 유충은 하천과 호수 바닥에서 조류와 유기물을 먹으며 수개월에서 길게는 3년까지 자란다.
입이 퇴화한 성충과 달리 유충은 활발히 먹고 성장한다. 결국 성충은 단지 번식을 위한 파이널 이벤트일 뿐이며, 본질적 삶은 물속에서 이어지는 유충 시절이다.
성충 하루살이는 입이 퇴화해 먹이를 먹지 못한다. 유충 시절에 비축한 에너지를 마지막 불꽃처럼 태우며 날개를 펴고 하늘로 오른다.
왜 이렇게 진화했을까? 답은 간단하다.
먹고사는 것보다 빨리 번식하는 것이 더 중요했기 때문이다.
동시에 수만 마리가 하늘로 솟아올라 압도적인 숫자로 번식하면, 천적에게 잡아먹히더라도 종족을 이어갈 수 있다. 덧없음을 선택했기에 하루살이는 수억 년을 살아남았다.
하루살이의 짝짓기는 해 질 녘 강 위 하늘에서 이루어진다. 수컷들이 먼저 군무를 형성하면, 수천 마리가 위아래로 춤추듯 오르락내리락한다. 암컷이 그 무리에 합류하면 공중에서 짧은 교미가 이루어진다.
수컷은 집게 같은 생식다리로 암컷을 붙잡고 몇 초 만에 교미를 끝낸다.
교미 후 암컷은 곧바로 강이나 호수에 수백에서 수천, 많게는 8천 개 이상의 알을 낳고 생을 마감한다. 알은 수면 위에 흩뿌려지거나 바위와 식물에 붙여지고, 어떤 종은 잠깐 잠수해 산란하기도 한다.
하루살이는 주로 늦봄과 여름, 특히 5월에서 7월에 가장 많이 발생한다. 영어 이름 메이플라이‘Mayfly’도 여기서 비롯되었다. 한국을 비롯한 온대 지역에서는 여름철 강가에서, 북미와 유럽의 큰 강에서는 황혼 무렵 하늘을 뒤덮는 엄청난 떼가 나타난다.
특히 미국 미시시피강과 오대호 주변에서는 여름 저녁마다 수십만 마리의 하루살이가 다리와 도로를 덮는다. 2014년에는 하루살이 떼가 레이더에 비행기로 탐지된 사례도 있었다. 독일 라인강 역시 여름마다 ‘하얀 눈보라’ 같은 하루살이 대발생으로 유명하다.
한국에서도 한강 지류에서 비슷한 현상이 보고된다. 대발생은 인간에게 불편을 주기도 한다. 도로와 다리가
하루살이 사체로 덮여 미끄럽고, 발전소 냉각수 흡입구가 막히며, 청소 비용이 늘어난다.
그러나 하루살이는 사람을 물지도 않고, 질병을 옮기지도 않는다. 불편할 뿐, 해롭지 않은 곤충이다.
하루살이는 지구 곳곳에 퍼져 살고 있다. 남극을 제외한 거의 모든 대륙, 북미와 유럽, 아시아와 아프리카, 남미와 호주의 강과 호수에서 발견된다. 현재까지 보고된 하루살이 종은 약 3,000여 종이며, 학자들은 아직 기록되지 않은 미발견 종까지 합치면 4,000종에 이를 것으로 추정한다. 한국에도 130여 종이 서식한다.
하루살이가 흥미로운 점은 모기와의 대조다. 모기가 탁한 물, 심지어 썩은 물에서도 알을 낳고 유충을 키우는 반면, 하루살이는 정반대다.
하루살이는 산소가 풍부하고 맑은 물에서만 유충이 살 수 있다.
그래서 하루살이가 산다는 건 곧 그 하천이 살아 있고, 물이 깨끗하다는 증거다. 어느 여름날 강가에서 하루살이 떼가 일제히 날아오르는 장면은 단순한 곤충의 군무뿐만 아니라, 그 지역 생태계가 건강하다는 징표이기도 하다.
덧없는 곤충처럼 보이지만 하루살이는 생태계의 중요한 기둥이다. 유충은 물속 유기물을 먹어 하천을 정화한다. 유충은 물고기의 먹이가 되고, 성충은 새와 잠자리, 박쥐의 먹이가 된다. 성충이 집단으로 죽으면 강에 영양분이 폭발적으로 공급된다.
하루살이가 많다는 것은 곧 물이 깨끗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하루살이 한 종의 대발생은 강 전체를 살찌우는
자연 축제다.
철학자와 시인들은 하루살이를 늘 덧없음의 상징으로 삼았다. 고대 그리스에서도 짧은 생명을 사는 곤충은 인간의 운명과 겹쳐 보였고, 현대에 이르러서도 하루살이는 삶의 무상함을 비유하는 대표적 이미지다.
영국 시인 로버트 사우디는 하루살이를 두고 “짧은 생애지만, 자연이 부여한 임무를 다하기에 충분하다”라고 썼다. 한국에서도 ‘하루살이 목숨’,‘하루살이 같은 인생’이라는 속담은 짧고 덧없는 삶을 가리킨다. 옛 문헌에서는 하루살이를 ‘일일충’이라 불렀으며, 이는 인간 존재의 무상함을 강조하는 비유로 자주 쓰였다.
그러나 하루살이를 깊이 들여다보면 단순한 덧없음이 아니라 오히려 삶의 본질이 드러난다. 삶의 대부분은 준비다. 하루살이는 수년간 물속에서 준비해 단 하루의 절정을 맞는다. 덧없음 속에서도 의미가 있다.
성충은 짧지만 그 한순간에 종족을 이어가는 위대한 임무를 완수한다.
겉보다 속이 중요하다. 인간이 보는 것은 성충의 짧은 날갯짓뿐이지만, 진짜 하루살이의 삶은 물속 유충 시절에 있다.
하루살이는 하루만 사는 곤충이 아니다. 유충으로는 몇 달에서 수년을 살고, 성충으로는 단 하루만 하늘을 난다. 그 덧없는 날갯짓은 짧지만, 그 뒤에는 강과 생태계를 지탱한 긴 삶이 숨어 있다.
그들의 생은 짧음 속에 길고, 덧없음 속에 깊다.
어쩌면 우리 인간의 삶도 다르지 않을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