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의 하늘을 수놓는 나비를 보면, 누구나 같은 감정을 느낀다.
자유롭다, 평화롭다, 아름답다.
하지만 그건 인간의 시선이 만들어낸 감각의 환상일 뿐이다.
나비의 생은 우리가 상상하는 낭만과는 정반대다. 그들은 짧은 생애 동안 한순간도 멈추지 않고 살기 위해 싸우는 생명체다.
겉보기엔 가볍고 우아하지만, 그 날갯짓은 사실 치열한 생존의 수학과 화학, 물리학이 맞물려 돌아가는 정밀한 기계다. 자유롭게 나는 것 같지만, 그 자유는 언제나 에너지의 한계와 시간의 벽에 갇혀 있다.
나비가 몇 분간 나는 동안 소모하는 에너지는 자신의 몸무게 몇 배에 해당할 정도다. 그래서 나비에게 꽃의 꿀은 단순한 식사가 아니라 비행 연료 탱크를 채우는 행위다. 나비의 비행은 인간이 100미터를 전력질주할 때와 비슷한 수준의 에너지를 소비한다고 알려져 있다. 체중 대비로 보면, 나비의 비행근은 몸무게의 수십 배를 들어 올릴 만큼 강력한 출력을 낸다.
나비의 몸 안에는 날개를 직접 움직이는 비행근육이 있다. 특히 간접비행근육이 발달해 있는데, 날개를 직접 당기지 않고, 가슴 전체를 수축 팽창시킨다. 나비는 작은 몸에도 불구하고 초당 수십 번 가슴 전체를 수축 팽창 시켜야 하므로 에너지 소모가 매우 크다.
우리가 보기에는 평화롭게 날고 있고, 우아하게 앉아서 꿀을 팔고 있지만, 나비로서는 백 미터 달리기를 할 정도의 에너지를 소비하고, 고갈한 에너지를 주입하려고, 꽃 위에서 연료를 주입하고 있는 중이다.
나비는 태양 없이는 날지 못한다. 그들은 변온동물이다. 날개 근육의 온도를 30~40℃까지 올려야 하늘로 오를 수 있다. 그래서 햇살 아래에서 날개를 펴고 있는 모습은 명상도 휴식도 아니다. 그건 비행을 위한 예열, 살아남기 위한 준비다.
비행근이 수축할 때마다 아데노신 삼인산(ATP, Adenosine Triphosphate)이 폭발적으로 소모된다. ATP는 생명체의 에너지 화폐로, 세포가 일을 하기 위해 사용하는 연료다. ATP에서 인산 하나가 떨어질 때 방출되는 에너지가 나비의 근육을 움직이는 동력이다.
나비의 조상은 약 2억 년 전, 공룡이 지배하던 쥐라기의 숲 속에서 태어났다. 그들의 선조는 오늘날의 나방과 같은 존재로, 밤에 활동하며 단순한 입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백악기, 꽃식물이 지구를 뒤덮기 시작하면서 자연은 새로운 진화를 요구했다.
꽃은 곤충을 유혹하기 위해 향기와 색을 내뿜었고, 곤충은 그 유혹에 응답하기 위해 꿀을 빨 수 있는 긴 흡관을 만들어냈다. 그것이 바로 오늘날 나비의 입이다.
꽃과 나비는 그때부터 진화를 함께 시작했다. 꽃이 깊어지면 나비의 입은 더 길어지고, 꽃이 화려해지면 나비의 시각 체계는 더 정교해졌다. 이 둘의 관계는 낭만적인 사랑이 아니라, 생존의 거래였다. 서로를 이용하면서도 함께 진화한, 지구 생명의 가장 성공적인 공생관계였다.
나비의 날개에는 새처럼 뼈가 없다. 그 대신 얇은 키틴질 막이 두 겹으로 겹쳐져 있고, 그 위를 덮는 것이 수백만 개의 미세한 비늘이다. 이 비늘이 바로 색의 근원이다. 비늘은 단순히 색소가 아니라, 나노 단위의 미세 구조로 되어 있어서 빛이 들어오면 굴절·반사·간섭을 일으켜 각도에 따라 다른 색을 낸다.
이걸 ‘구조색’이라 부른다.
그래서 청띠제비나비의 푸른빛은 색소가 아니라, 빛이 비늘 속에서 산란하며 만든 광학적 착시다. 이건 자연이 만든 나노 기술, 빛의 공학 예술이다. 하지만 이 아름다움은 평화를 위한 게 아니다. 포식자에게 자신을 숨기거나, 짝짓기 신호를 보내거나, 독성이 있다는 경고를 하는 생존의 언어다.
호랑나비의 날개를 보면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좌우가 완벽히 대칭이다. 이건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 혹스 Hox 유전자라는 진화의 설계도 프로그램이 좌우 패턴을 정밀하게 복제하기 때문이다. 이 대칭은 미학이 아니라 기능이다.
혹스 유전자는 모든 동물에 공통적으로 내재되어 있는 유전자로 베아시기에 신체 각 부위가 차례로 90분마다 생성되게 만들어 주는 유전자이다. 인간의 경우에는 머리, 다음에는 목 부위의 경추, 허리 부분의 요추등이 차례대로 생성되게 38개의 혹스 유전자가 관여하고 있다.
짝짓기 시 상대 나비는 무늬의 대칭과 색의 정확도로 같은 종임을 판별한다. 즉, 나비의 날개무늬는 단지 예쁜 그림이 아니라 생식과 종 보존을 위한 유전적 인증서인 셈이다.
우리가 보는 나비의 색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다. 그건 빛의 파장이 우리 뇌에서 해석된 결과다. 인간의 눈은 세 종류의 원추세포로 색을 구분하지만, 나비는 자외선까지 감지하는 5색 시각을 가진 종도 있다. 즉, 나비의 눈에는 우리가 보지 못하는 또 다른 세계의 색이 존재한다. 우리에게는 단순히 파란빛으로 보이는 무늬가, 나비에게는 이성에게 보내는 신호나 위장 패턴일 수도 있다.
이 세상은 하나의 현실이 아니라, 각 생물이 자신에게 필요한 파장만 해석한 결과물이다.
나비의 삶은 대부분 한 달 남짓이다. 그중 실제로 날개를 펴고 나는 시기, 즉 성충 기간은 2주 내외에 불과하다. 그러나 그 짧은 시간 동안 나비는 세상 모든 일을 다 한다. 먹고, 사랑하고, 알을 낳고, 사라진다.
나비는 꿀을 빨 때 흡관을 말아 넣었다가 꽃 위에 앉으면 스프링처럼 펴서 꿀샘에 꽂는다. 입 안쪽에 모세관 현상으로 꿀이 올라오면, 그걸 곧바로 소화계로 흡수한다.
교미를 마친 암컷은 알을 낳을 식물을 찾아낸다. 호랑나비라면 산초나 탱자잎, 배추흰나비라면 배춧잎에 알을 낳는다. 그곳에 알을 낳고, 그 알은 애벌레, 번데기, 나비로 이어지는 완전변태를 거친다.
그중 번데기 시기는 가장 잔혹하고 신비롭다. 몸 전체가 녹아내리고 세포가 재조합된다. 고요한 변화가 아니라 자기 해체의 고통을 통과해야만 날개를 얻는다.
자유는 그렇게 태어난다.
하지만, 나비는 자유롭지 않다.
그들은 유전자의 명령에 따라 움직이는 생명의 엔진일 뿐이다.
그 한정된 조건 속에서 빛을 다루고, 향기를 읽고, 바람을 타며 자기 역할을 완수한다.
나비의 날개 속에는 태양의 열, 공기의 물리학, 유전자의 논리, 그리고 생명의 의지가 깃들어 있다. 그 모든 것이 한순간의 비행으로 응축된다.
그래서 나비는 자유롭지 않지만, 그 불완전한 생 속에서 가장 완벽한 순간의 예술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