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근육의 비밀1 — 세포 속의 우주

by 신피질

우리가 '몸'이라고 부르는 것은 사실 수천억 개의 세포가 협주하는 거대한 오케스트라다. 그중에서도 근육은 단순히 팔과 다리를 움직이는 기계가 아니다. 그것은 생명이 전기와 단백질로 만들어낸 리듬의 예술이며, 세포 속에 감춰진 작은 우주다.

'근육(muscle)'이라는 말은 라틴어 musculus에서 왔다. 뜻은 '작은 쥐(little mouse)'다. 고대 해부학자들은 팔과 다리의 살이 수축하고 움직이는 모습을 보고, 피부 아래에서 작은 쥐가 달리는 것 같다고 느꼈다. 그 작은 움직임이 바로 생명력의 징표였다. 오늘날 우리는 그 '작은 쥐'가 수많은 단백질과 이온, 전기 신호의 정교한 조화로 움직인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현미경으로 근육세포를 들여다보면, 그 안엔 근육섬유인 미오피브릴(myofibril)이라 불리는 실타래들이 가득하다. 이 실타래는 다시 작은 살이라는 뜻의 사코메어(sarcomere)라는 작은 단위로 나뉘어 있고, 그 안에서 두 단백질이 춤을 춘다. 액틴(actin)과 미오신(myosin).

미오신은 팔을 가진 기관차처럼 액틴이라는 선로 위를 걸어가며 근육을 수축시킨다. 이 미세한 움직임 하나하나가 모여 우리가 팔을 들고, 걷고, 미소 짓는 거대한 움직임을 만든다.

이 모든 움직임에는 에너지의 화폐, ATP(Adenosine Triphosphate)가 필요하다. ATP는 세포가 사용하는 전자화폐다. ATP가 분해되며 열어젖히는 에너지의 문, 그 힘이 미오신을 움직이게 하고, 근육을 수축시킨다. 운동을 오래 하면 숨이 차고, 피로가 몰려오는 이유도 ATP가 고갈되고 젖산이 쌓이기 때문이다. 근육은 늘 에너지를 소모하며 살아 있는 발전소로 작동한다.

근육은 스스로 움직이지 않는다. 대뇌의 전두엽에 있는 운동피질(motor cortex)에서 '움직여라!'는 명령이 내려오면, 그 신호가 척수를 타고 운동신경(motor neuron)을 통해 근육으로 전달된다. 근섬유는 그 명령을 전기 신호로 받아 순식간에 칼슘을 방출하고, 액틴과 미오신이 결합하며 수축이 일어난다.


전기 자극이 근섬유에 도착하면, 근육세포안의 근소포체, 즉 칼슘을 저장하는 창고의 문이 열리며, 칼슘이 방출된다. 칼슘이 방출되는 순간 근육이 케어난다. 칼슘이 방출되면서 근육세포의 트로포닌 단백질에 붙어서 구조를 바꾸고 평소 이완상태에 있는 단백질 트로포미오신이 밀려나면서 미오신이 액틴을 당기며 근육 수축이 일어난다. 칼슘이 바로 근육의 문을 여는 열쇠이다.


수축이 끝나면 근소포체는 다시 칼슘을 빨아들이고, 칼슘이 제거되면, 트로포닌이 원래 자리로 돌아가고, 액틴과 미오신이 분리되어 근육이 이완된다.


근육1.png


이때 운동단위(motor unit)가 움직임의 최소 단위가 된다. 하나의 신경이 수십, 수백 개의 근섬유를 동시에 제어한다. 정밀한 손끝의 움직임은 작은 운동단위가, 허벅지의 강력한 힘은 큰 운동단위가 맡는다. 즉, 근육은 뇌의 언어를 몸으로 번역하는 기관이다. 신경이 전선을 타고 흐르는 전류라면, 근육은 그 전류가 만들어내는 생명의 빛이다.

우리 몸의 근육은 세 가지로 나뉜다. 골격근(skeletal muscle)은 뼈에 붙어 의지로 움직이는 근육으로, 체중의 약 40%를 차지한다. 우리가 운동으로 단련할 수 있는 부분이다. 심장근(cardiac muscle)은 하루도 쉬지 않고 뛰는 생명의 엔진이며, 평활근(smooth muscle)은 위, 장, 혈관 등에서 자동으로 움직인다. 세 가지 근육이 서로 다른 방식으로 움직이지만, 모두 같은 원리로 생명을 연주한다. ATP, 칼슘, 단백질의 조화다.

우리가 흔히 '살이 찐다'고 말할 때의 살은 피부 아래 지방층과 근육층 전체를 포함한다. 그러나 근육은 그 '살' 중에서도 단 하나, 스스로 움직이는 조직이다. 피부가 몸을 감싸고, 지방이 에너지를 저장한다면, 근육은 그 에너지를 사용해 생명을 움직인다. 모든 근육은 수분으로 가득 차 있다. 근육의 70%는 물, 20%는 단백질이다. 그 안의 단백질들은 생명체가 고안한 가장 효율적인 에너지 변환기다.

근육의 구조는 남녀가 거의 동일하다. 하지만 테스토스테론(testosterone)이라는 호르몬이 근육 성장의 속도와 강도를 결정한다. 테스토스테론이 많을수록 단백질 합성이 활발해지고, 근섬유가 두꺼워진다. 남성이라도 이 호르몬이 부족하면 운동을 해도 근육이 쉽게 성장하지 않는다. 반대로 꾸준한 근력 운동과 충분한 수면, 적절한 영양은 테스토스테론을 되살리고, 근육을 되살린다. 근육은 결국 호르몬과 의지의 합작품이다.

하나의 근육세포는 수많은 핵과 미토콘드리아를 가지고 있다. 그 안에서 매초 ATP가 만들어지고, 분해되고, 다시 재생된다. 전기 신호가 흐르고, 단백질이 미세하게 움직이며, 칼슘이 문을 열고 닫는다. 그 모든 과정을 현미경으로 보면, 우주의 별이 폭발하고 회전하는 듯한 장관이 펼쳐진다. 정지해 있는 듯 보이는 우리의 몸 속에서도 끊임없이 작은 폭발과 재생의 리듬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근육은 힘의 상징이 아니라, 살아 있다는 증거다. 뇌의 신호가 신경을 타고 내려와, 세포 속에서 빛으로 변하고, 그 빛이 다시 움직임으로 이어질 때 생명은 '살아 있음'을 증명한다. 근육은 단백질이 아니라 리듬이다. 생각이 전류가 되어 흐르고, 전류가 움직임이 되어 피어난다. 그 작은 떨림 속에서 우리는 매 순간 새로 태어난다.

keyword
목, 일 연재
이전 17화나비는 자유롭고 평화로운 영혼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