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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육의 비밀 2부-근육의 시간

by 신피질

나이가 든다는 건 근육이 조금씩 사라지는 시간을 견디는 일이다. 젊을 때는 아무렇지 않던 계단 오르기가 숨이 차고, 가벼운 물건을 드는 일조차 부담스럽게 느껴진다. 그러나 근육은 단순히 힘의 상징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 몸의 시간이며, 세포의 시계이자 생명 에너지의 중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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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육은 우리 몸 전체를 지키는 핵심 시스템이다. 우리가 먹은 영양소는 근육 속에서 에너지로 전환된다. 근육이 많을수록 기초대사량이 높아져서 살이 덜 찌고 혈당도 안정된다. 반면에 근육이 줄면 혈당이 쉽게 올라가 당뇨병이나 대사 증후군 위험이 커진다.

근육이 수축할 때마다 혈액을 짜내는 펌프역할을 해서 혈액 순환을 돕고, 혈압을 안정시키며, 심장의 부담을 줄여준다. 특히 하체 근육이 약하면 다리에 혈액이 고여서 부종이나 냉증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근육이 줄면 뼈와 관절이 직접 충격을 받기 때문에 쉽게 다친다. 노년기 낙상의 가장 큰 원인은 근력부족이다. 근육은 골밀도를 유지하는데 관여해, 뼈를 단단하게 만들어서 골다공증을 예방한다.


운동을 하면 근육에서 마이오카인 단백질이 분비되어 혈류를 타고 뇌로 올라가서 기억력과 집중력을 높이고, 우울증을 줄이는 효과를 낸다. 즉 근육은 단지 몸뿐만 아니라 정신을 맑게 유지시키는 기관이다.


40세 이후는 매년 1%씩 근육이 줄어드는 근감소증이 발생하는 데, 이렇게 되면 기초체력이 떨어지고, 면역력도 약해지고, 호르몬 균형까지 무너져 노화가 가속된다.

근육이 유지되면 노화 속도가 느려지고, 젊은 몸의 리듬을 오래 유지할 수 있다.


근육은 운동할 때 자라는 것이 아니다. 운동은 근육을 미세하게 손상시키는 과정이다. 근섬유가 찢어지고, 그 틈을 메우기 위해 위성세포가 활성화되며 새로운 단백질이 합성된다. 이 복구 과정이 바로 근육의 성장이다.


운동으로 생긴 상처가 복구되는 동안 근육은 이전보다 조금 더 두꺼워지고 강해진다. 그래서 근육은 부서지고 다시 세워지며, 시간을 통해 성장한다. 이때 필요한 것이 양질의 단백질과 충분한 휴식이다. 단백질은 벽돌이고, 운동은 설계도이며, 휴식은 건축의 시간이다.


운동이 설계도라는 말은 단순한 비유가 아니다. 운동은 근육세포에게 “이렇게 복구하라”는 명령을 내리는 신호이기 때문이다. 가벼운 자극은 유지의 설계도를, 강한 저항운동은 근비대의 설계도를, 지속적인 유산소 운동은 지구력의 설계도를 남긴다.


근육세포는 이 자극의 패턴을 해석해 어떤 단백질을 얼마나 합성할지를 결정한다. 즉, 운동은 근육의 건축 방향을 정하는 ‘디자인’이며, 단백질은 그 설계를 구현하는 실제 재료다. 하지만 재료를 공급하고도 충분히 건축할 시간을 주지 않으면 벽돌은 쌓이기도 전에 다시 무너진다. 그래서 휴식은 근육을 완성시키는 ‘건축의 시간’이다.


단백질 합성은 아미노산 중에서도 로이신(Leucine)에 의해 스위치가 켜진다. 달걀, 생선, 닭가슴살, 우유, 유청단백질에 풍부한 로이신은 근육세포의 합성 효소를 자극한다. 하지만 한 끼에 25~40그램 정도만 효율적으로 흡수되므로, 하루 세끼로 나누어 고르게 섭취해야 한다. 특히 운동 후 30분에서 1시간 이내는 근육세포가 손상 복구를 위해 단백질을 가장 잘 받아들이는 황금 시간이다.



근육이 성장하려면 호르몬의 신호가 필요하다. 성장호르몬(GH)은 뇌하수체에서 분비되어 간을 자극해 인슐린유사성장인자(IGF-1)를 만든다. 성장호르몬 GH는 신호탄이고, 인슐린유사성장인자 IGF-1은 실행 부대다. 이 두 호르몬은 세포 내 단백질 합성을 촉진하고, 손상된 근섬유를 복구하며, 새로운 조직을 만든다. 하지만 40세 이후부터 성장호르몬은 매년 1~2퍼센트씩 줄고, 60대가 되면 20대의 3분의 1 수준으로 감소한다.

인슐린유사성장인자 IGF-1 역시 그 영향을 받아 단백질 합성보다 분해가 앞서게 된다.


여기에 테스토스테론과 에스트로겐의 감소가 겹친다. 남성은 30대 후반부터 테스토스테론이 해마다 1퍼센트씩 줄고, 여성은 폐경 이후 에스트로겐이 급격히 감소한다. 두 호르몬 모두 근육의 단백질 합성, 미토콘드리아 활성, 회복력에 관여하므로, 호르몬의 불균형은 근육의 구조적 쇠퇴를 촉진한다.

결국 근육감소는 단순한 체력의 문제가 아니라, 인체 내 호르몬 네트워크 전체가 느려지고 약해지는 결과다.


근육 감소에는 또 다른 요인이 있다. 미토콘드리아의 기능 저하와 만성 염증이다. 미토콘드리아는 세포의 에너지 공장으로, ATP를 만들어 근육 수축에 필요한 에너지를 공급한다. 그러나 나이가 들수록 이 공장은 녹슬고, 활성산소가 세포막과 단백질을 손상시킨다. 여기에 염증이 겹치면 근육 단백질이 분해되고 근섬유는 점점 위축된다. 이 미세한 염증의 불씨를 ‘inflammaging(염증성 노화)’이라 부른다. 피로감, 근육통, 회복 지연은 바로 이 염증성 노화의 신호다.


하지만 근육은 놀라운 회복력을 지닌 조직이다.

수축과 긴장을 반복하는 동안 근육세포는 마이오카인(Myokine)이라는 단백질 신호를 분비한다.

마이오카인은 근육이 내분비 기관처럼 작동하게 만드는 물질이다. 운동 중 분비된 마이오카인은 혈류를 타고 전신으로 퍼지며 간, 지방조직, 뇌, 면역세포에 영향을 준다.

마이오카인 단백질인 인터루킨 6(IL-6)은 염증을 조절하고, 이리신(Irisin)은 지방을 태워 에너지로 바꾸며, 뇌유래신경영향인자 단백질 BDNF는 뇌신경을 자극해 기억력과 기분을 개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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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근육을 움직인다는 것은 단지 몸을 쓰는 일이 아니라, 내 몸의 화학 공장을 가동하는 일이다. 그래서 꾸준히 걷고, 등산하고, 근력 저항운동을 하는 사람은 몸뿐 아니라 마음까지 맑아진다. 근육은 단지 힘이 아니라 정신의 맑음과 생명력의 빛을 만들어낸다.


근육은 인간의 시간을 비춘다. 젊을 때는 자극에 빠르게 반응하지만, 나이가 들면 회복이 느리고 피로가 길어진다. 그러나 근육은 배신하지 않는다. 꾸준한 자극과 영양, 그리고 휴식이 주어지면 언제든 다시 되살아난다.


근육은 나이와 싸우지 않는다. 시간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워가는 조직이다. 하루를 쌓듯 운동하고, 단백질을 섭취하고, 충분히 잠을 자면 몸은 조금씩 과거의 자신을 되찾는다. 그것은 단순히 힘의 회복이 아니라, 생명 리듬의 회복이다.


근육은 시간이다. 근육은 우리가 살아온 날들의 흔적을 세포 속에 기록한다. 부서지고 다시 세워지는 그 리듬 속에서 우리는 성장하고, 늙고, 또다시 살아난다. 근육의 시계는 멈추지 않는다. 그 시계의 속도를 조절하는 것은 결국 우리의 의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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