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젠을 차고 장터 목 산장으로 내려오는 길은 그야말로 겨울 왕국이다.
사람을 날릴 듯한 거센 바람으로 중심 잡기 어렵고 아이젠을 착용해도 군데군데 미끄러운 얼음이 있어 조심스럽다.
그러다 얼음이 꽁꽁 언 가파른 내리막에서 미끄러졌다.
아이젠을 했는데도 미리 겁먹은 걸음이 중심을 무너뜨리고 밑으로 오 미터 정도 미끄러졌고, 배낭에 있던 물통이 떨어져 한참 더 굴렀다. 밑에서 기다리던 등산객들이 놀라며 걱정을 했고, 나는 아픈 것도 모르며 겸연쩍었다.
다행히 다친 곳은 없다. 얼음은 그리 사람을 박대하지 않나 보다.
바람으로 등산로 주변에 눈이 1미터 넘게 쌓인 곳이 있다.
눈을 밟으면 아무리 추워도 마음이 어린아이처럼 담백 해진다.
내려오는 시선을 따라 지리산의 겨울 풍광이 펼쳐진다. 살아 백 년 죽어 천 년이라는 고사목이 많이 보이고, 고사목의 사이사이로 천 년을 산다는 주목이 군락을 형성하며 굵고 곧은 줄기로 시선을 압도한다.
추위에는 내가 최고다라는 듯 주목은 지리산 정상에서 푸른 잎을 그대로 달고 거친 바람과 추위 및 눈보라를 거뜬하게 이긴다.
눈이 솜처럼 나무에 마구 뿌려서 크리스마스트리처럼 산 곳곳은 하늘의 축복이 넘친다. 나무는 눈 솜이불로 포근하게 덥혔고, 구상나무와 주목은 대조를 이루며 곡선과 직선의 조화를 만든다.
사람들이 높은 산에 잘 온다.
나는 온갖 각오로 죽을 둥 살 둥 올라오는 데 연약하게 생긴 중년의 여성이, 청춘의 두 남녀가, 나이가 들어 보이는 노년에 들어선 사람이 올라온다.
잘 갖춰 입고 올라온 사람도 있지만, 장갑도 없이 운동복을 입고 올라가는 사람도 있고, 정상에서 본 비구니는 머리카락 없는데 모자도 쓰지 않고 올라오기도 하며 심지어는 큰 배낭을 메고 그 어렵다는 공룡능선을 바람처럼 타는 70대 여성도 있다.
장터 목 산장에서 버너에 불을 붙여 남녀가 뜨거운 국물이 들어 있는 음식을 먹고 있는 틈바구니에서 김밥집에서 사 온 두줄의 차디찬 김밥으로 혼자 요기를 하고 눈 덮인 장터목을 내려 중산리 방향으로 한참을 내려왔다.
얼음과 눈들의 등산로를 곡예를 하듯 아슬아슬하게 내려와서 얼음이 사라진 지점에서 드디어 등산화를 벗어 가방에 맸다.
드디어 맨발이다.
맨발은 얼음과 빗물에 취약하다. 미끄러져 부상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얼지 않은 바닥은 춥지 않고 시원하다.
그 시원함이 내면의 자유를 준다. 자유롭게 춤추며 날아갈 듯 발걸음이 경쾌하다. 발가락이 자유로우니, 착지가 부드럽고 노래가 저절로 나온다. 느닷없이 50년대 작곡된 흥남부두 노래가 입속에서 저절로 나오고, 히트를 친 나훈아의 테스형 몇 구절도 뒤를 잇는다.
나는 숨을 자주 관찰한다. 가장 행복한 순간에 숨의 템포가 어떤 지 체크해 보나 사실 지금은
그것도 잘 안된다. 노래가 저절로 나와서 멈춰지지 않기 때문이다.
다시 계곡이 나타났다. 계곡의 물소리만 아니라 얼음과 얼음 사이사이 흐르는 시원한 물이 눈으로 빨리듯이 들어온다.
한참을 내려오다, 등산로를 벗어나서 계곡으로 직접 내려갔다.
계곡 물 사이 넓은 바위의 한 지점에 자리를 잡고 배낭과 겉 옷을 벗었다. 마음 같아서는 발가벗고 온통 몸을 담그고 싶지만, 팔과 바지만 걷어 올리고 돌바닥이 보이는 시원한 물속으로 몸을 담갔다.
차가운 느낌이 피로를 푼다. 특히 무릎이 계곡물에 들어가면, 강력한 마사지 효과를 준다. 최고의 힐링이다. 두 손으로 물을 가득 담아 얼굴과 머리에 얹으니 지리산을 온통 다 가진 듯 짜릿하다. 겨우내 찬물로만 샤워를 해서인지 물의 싸늘함에 내성이 생긴 듯하다.
지리산의 계곡은 깊다. 뱀사골 피아골 백무동 계곡, 오늘 이곳 유암폭포가 있는 중산리 계곡도 내 마음을 후벼 파듯 수량이 깊고 풍부하다.
서울의 북한산 계곡도 좋지만 지리산 계곡에 비하면 얇고 낮다.
얼음 아래로 흐르는 물은 마치 물고기가 줄을 지어 내려오듯 물결치며 내려온다.
물이 돌바닥에 비추면서 빛의 리듬이 무늬로 표현된다. 빛의 파도가 맑고 맑은 계곡물에 투영되며 최고의 추상화를 그리며 눈이 호강을 한다.
고통은 즉시 인간에게 행복을 주지는 않지만, 고통을 수행한 고단한 여정에는 항상 신이 준비한 행복의 순간이 있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