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제주올레길 맨발 걷다. 6코스

쇠소깍, 소라의 집, 서귀포 정방폭포 등

by 신피질

쇠소깍은 작은 협곡이다.

이곳은 화산활동으로 이루어진 검은색 현무암이 아닌 단단한 흰색 화강암 암반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주도에는 검은색 바위가 아닌 평범한 바위가 희귀하다.

바위 위를 초록 밀림이 병풍처럼 협곡을 둘러싸 있고 그 아래 밀물과 바닷물이 섞인 협곡의 물은 사파리 색이다. 물살은 잔잔하고 물고기는 흰 배를 뒤집으며 무리 지어 다닌다.


쇠소깍


찜질방은 여행자를 위한 그럭저럭 괜찮은 숙소이다.

용천수에 제주 감귤 효소를 섞은 사우나탕에 몸을 담그면 피곤이 사라진다.

찜질방에는 작은 황토 동굴이 있다.

그곳에 들어가면 독립된 공간과 어둠이 있어 잠자리로서 괜찮다.

정수기 물도 보충할 수 있다. 전기 콘센트가 있어 핸드폰 배터리 충전도 가능하며 와이파이도 있다.

아침에 사우나를 추가로 이용할 수 있어 산뜻한 아침을 시작할 수 있다.


이런 경우 사우나를 두 번 이용하는 것이니 요금을 추가로 내야 할 것 같은데 추가로 달라는 곳은 없다. 이 모든 서비스에도 불구하고 단돈 만원이니 대한민국 사우나 찜질방은 종종 가난한 여행자 숙소가 된다.


딱 한 가지 문제가 있다. 나같이 예민한 사람은 옆에 심각한 코골이를 만나게 된다.

옆 동굴에 탱크 코골이를 만나 밤새 잠을 뒤척였다.

모처럼 저녁을 많이 먹어 위가 부담되었고, 예민한 청각과 후끈한 온도를 감지한 피부가 밤새 쉬지 않고 열심히 일했다.

새벽 5시 30분에 더 이상 잠자는 시도를 포기한다.


그 이는 아직까지 줄기차게 탱크를 몬다. 밤새 탱크를 몰아 지금쯤 백두산에 기세 등등 도착했을 것 같다.

대단한 수면 복이다. 눈이 휑하다.

오늘은 수면 안대와 귀마개를 꼭 사야겠다.


찜질방에서 나와 편의점에 들러 에너지 바 세 개 샀다. 오전 식량이다.

서귀포 중앙로터리에서 630번을 타고 어제 종착점인 보목동에 도착했다.

제지기 오름에 올랐다.


하늘에 구름이 가득하다. 오후에는 비소식도 있다. 제지기 오름은 나무 계단을 오르면 된다.

돌로 만든 둥근 모형의 LED 등이 계단을 따라 죽 설치되어 있는 것을 보니 마을 사람이 밤에도 산책하는 오름인 듯하다.

제주는 따뜻해서 소나무가 귀할 것 같은데 이 오름도 훤칠한 크기의 소나무가 많고 정상의 빈 공간에도 큰 소나무가 둘러있다. 뜨거웠던 크로아티아의 해변을 따라 햇빛에 반짝반짝 빛나 가슴을 뭉클하게 했던 우거진 숲도 소나무가 아니었던가!


아침에 산에 오면 항상 새소리가 반긴다. “쯤츰 바리 쯤츰바리 우흐르 쯥쯥쩝 푸흐흐

삐삐파에 스르르 키에 카엑 프쓰프쓰 조의쯔”들리는 새소리를 그대로 적어봤다.

적고 보니 하나도 비슷하지 않다. 인간의 언어로 새소리를 담기는 역부족이다.


제지기 오름에서 보목 포구가 한눈에 보인다. 앞바다에 작은 섬도 보이고 마을과 흰색의 비닐하우스가 많이 보인다. 포구에서 출항하는 통통배 소리를 처음 들었다. 길고 긴 해안가를 다니는 동안 통통배 소리를 한 번도 못 들었다.


제주 이곳 해안은 양식 업자의 천지다. 배는 없고, 해변가에 공장 같은 양식장이 즐비하다.

오름에서 내려와 보목동 포구 해안가를 터덜터덜 걷는다.


하늘과 바다 색깔이 어제와는 확연히 다른 회색빛이고 빗방울이 하나 둘 떨어진다. 신발을 다시 신고 우산을 쓴다. 배낭을 씌우려고 배낭 덮개를 찾는데 아무리 뒤져도 안 나온다. 어디서 빠진 듯하다.

매일 하나씩 잊는다.

맨 처음은 현금 카드를 식당에다 두고 왔다가 1시간 만에 찾았고 두 번째는 민박집에 셔츠를 잊고 왔다가 이틀 후 찾으려고 두 시간을 허비했다.

세 번째는 더워서 안경을 벗어 돌담에 놓고 오름을 한 개 넘었다가 다시 되돌아가서 찾아왔다.

어제는 지팡이를 어딘가 놓고 왔고, 오늘은 배낭 커버가 없다.

배낭을 온통 뒤집어도 없다.


도보여행에서 물건을 잊으면 정말 낭패다. 왔던 길을 다시 걸어가야 한다.

마지막엔 나도 잊고 올 것 같다. 배낭 커버가 없어 배낭이 흠뻑 젖었다.


불교 성지 순례길 선정의 길은 소나무 가득한 산속 오솔길이다. 내가 좋아하는 춘양목 소나무가 즐비하다. 바닥에 솔잎이 가득해 비 오는데도 맨발로 걸었다.


시멘트와 아스팔트길 외에는 맨발로 걷다 보니 자주 운동화를 벗고 다시 신는다. 당초 맨발로만 완주하겠다고 사이즈 작은 운동화를 가져와서 새끼발가락 부분이 아프다.

운동화 밑바닥도 반쯤 떨어져 있다. 서귀포 도착하면 운동화를 버리고 샌들을 신어야겠다.

멕시코의 한 부족은 샌들을 신고 험준한 시에라네바다 산맥을 수십 킬로 달린다고 한다. 샌들은 벗고 신기에 간편하다.


제주 칼 호텔을 지나서 서귀포 올레 길은 잘 가꾼 정원과 같다. 몇 년 전 가족과 같이 머물렀다. 팔각 정자와 분재 나무, 연못, 넓은 잔디밭, 바다 전망이 있는 곳이다.


제주6-3.png

(소라의 집 )


다듬어진 야자수들이 즐비하고 관광객도 모두 우비와 우산을 쓰고 사진 찍기에 분주하다.

작가의 산책길 옆에 있는 소라의 집은 곡선의 기하가 잘 살려진 예술작품이다.


길 옆 철쭉 꽃잎에 빗방울이 맺힌다.

정방폭포에 오니 비가 더 거세졌다. 정방폭포를 이미 몇 차례 봤지만 비 오는 날 폭포수를 보고 싶어 동남아 관람객과 같이 계단을 내려와 폭포 앞에 있다.

폭포 물은 세차게 검은 바위로 떨어지고 물보라를 일으킨다.

우산을 내리니 얼굴에 떨어지는 것이 빗줄기인지 물보라인지 구분이 안 된다.


시원한 폭포를 한참 동안 바라보면 세찬 폭포가 정수리로 떨어진 후 몸을 통과해서 발끝으로 빠져나가는 듯하다. 멍하니 십여 분을 가만히 서서 그렇게 폭포를 맞았다.

제주6-4.png

( 빙도는 날 정방폭포 )


파도는 철썩거리고 강하게 바위에 낙하하는 폭포 물도 쉼 없이 떨어지면서 웅장한 소리를 낸다.

비는 대지를 적시고 식물의 뿌리는 그 수분을 흡수하며 잎으로 보낸다.

황량한 사막을 원하지 않고 푸른 녹음을 원하면 비 오는 날 불편함을 짜증 내지 말고 감사한 마음으로 기쁘게 걸어야 한다.


하지만 비 오고 흐린 날은 까닭 없이 우울하다.

보름달 옛 여인이 높이 솟은 달의 인력에 들뜨는 것과 반대로 하늘 낮게 내려오는 구름과 무거운 공기가 우리의 육체를 압박한다. 젖은 양말과 배낭도 힘들게 한다.


드디어 서귀포시내다. 이중섭이 살았다는 초가집을 거쳐 아담한 공방이 늘어선 예술의 도시를 지나고 전통시장도 거쳤다. 배가 고파 전통 시장에서 빵 하나를 먹었다. 따뜻한 빵 한 개는 우울한 기운을 걷고 새 기운을 준다.

서귀포 올레길 센터에 도착했다.

발바닥을 괴롭히던 운동화를 버리고 비 올 때도 신을 수 있는 고무 신 발을 만원 주고 샀다.

keyword
금요일 연재
이전 06화제주올레길 맨발 걷다. 5코스 큰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