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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올레길 7코스-칠십리공원, 외돌개, 강정마을

by 신피질
7코스 -올레길 안내 책자에서

서귀포 칠십리 공원을 지난다.

어제 폭우로 철쭉꽃 고개가 꺾였고 가로수 옆 작은 나팔꽃이 땅에 거꾸러졌는데 공원을 가로지르는 시냇물은 기관차처럼 요란하게 소리 내며 흐른다. 공원에 흐르는 개울물에는 개구리가 요란하게 노래한다.

내가 지나가니 조용해진다.

고인 물에는 노란 히아신스가 몇 송이 피어 있다.


칠십리 공원 분수 옆 매화마당에도 키 작은 매화나무가 또 반긴다. 서귀포 삼매봉 오르는 길은 다른 오름과 달리 돌을 정갈하게 깔아 놓아 차가 운행할 수 있는 길이다.

안개 낀 자욱한 길을 혼자서 이십여 분 힘겹게 정상에 올랐다.

정상에는 이층 팔각정이 있다. 팔각정에는 서귀포에만 볼 수 있는 남극노인성 카노푸스 별에 대한 설명이 있다. 주위는 안개로 사방이 뒤덮여 있어 바로 앞 소나무만 보일 뿐이다.


외돌개 해안가에 오니 안개가 사라지고 시야가 확 트인다. 마치 내 수호신이 절경을 감상할 수 있도록 하늘에 조화를 부린 듯하다. 올레길 여행자로 보이는 한 여성이 나에게 말을 건다. 엉또 폭포를 보았냐고? 어제 잘 봤다고 했다고 답변하자. 내가 운이 좋은 사람이라 한다.


제주도에 살아도 폭포수를 보기 쉽지 않다고. 평상시에는 메말라 있다가 하루 강우량이 이백미리 이상 되어야 폭포가 되는데 그게 자주 있는 것이 아니라고.

어제 강우량이 삼백미리가 넘어서 최고의 폭포수였을 거라고. 사진을 보여 달라고 한다.

어제 엉또 폭포가 뭔지도 모르고 갔는데 그것이 매우 보기 힘든 폭포였다니. 앞으로 행운이 있으려나?

주차장에 관광버스가 가득하고 중년 초로의 여인들이 몰려다닌다.


외돌개 가는 산책길은 커다란 해송이 많다. 해송이 높이 자라서 가지 끝을 보려면 고개를 끝까지 젖혀야 한다. 외돌개는 육지로 오목 들어온 바다 공간에 혼자 앉아 있는 물개 모습을 한 거대한 바위이다.

바위 꼭대기는 한 무리의 식물이 자라고 있어 마치 물개가 머리를 기른 듯하다.


외돌개



파도는 사방에서 절벽 바위에 연이어 부딪혀 스테레오 음악을 만든다. 파도는 바위 주변에서 절규하며 거품을 토한다.

외돌개 지난 산책길 중간 지점 노점상에서 제주 특산 과일인 용과를 먹었다.

붉은색 계통의 특이하게 생긴 과일로 속은 하얗고 속은 키위같이 검은 씨가 박혀 있다. 당도가 높지 않은 순한 맛이다.


수평선 전체에 밝은 구름이 나타나며 빛의 띠가 끝없이 바다 위로 이어진다. 파도는 잔잔히 일렁이고 대지에 푸른빛이 공기를 타고 내 눈에 박힌다.


이곳 바닷가 자갈길은 현무암이 아닌 딱딱한 보통 돌이다. 울퉁불퉁 자갈이 많아 물집 벗겨진 발바닥에 닿으면 바늘에 찔리듯 통증이 온다.

통증과 함께 검은 구름이 반격하고 차가운 공기가 가슴에 스친다.

강렬한 먹구름이 한 번에 쉽사리 물러나지 않을 듯 다시 하늘은 까매진다. 날씨가 변덕을 부린다. 물집 부위가 지속적으로 따끔거리고 고무 신발 뒤 발목 주위에 생채기가 생겨 아픔을 가중시킨다.


바람은 더 거세어지고 공기는 차갑다. 이런 날은 까닭 없이 슬퍼진다.

구름 끼고 바람 불면 슬픔의 호르몬이 쉽게 분비되나 보다. 7코스의 해안 길은 바위산을 오르듯 거칠다가 다시 거친 자갈길이 이어진다.

이름 모를 야생 꽃과 잡풀 사이를 지나가기도 한다.


켄싱턴 리조트 근처 강정천 계곡물은 어제 내린 비로 급류를 만들며 바다로 향한다. 잠시 곱게 자란 리조트 잔디 위 의자에서 휴식을 취했다.

의자에 새겨진 제주 방언이 눈에 띈다. ‘산이영 바다이영 몬딱 좋은게 마씸’ ㅡ 산이며 바다며 모두 좋습니다. ‘호꼼 아장 쉬엄 갑썽’ ㅡ 잠시 앉아서 쉬어 가세요. ‘나이녕 소랑 햄수다’ ㅡ 제가 당신을 무척 사랑합니다.’


켄싱턴 리조트를 지나 해군기지 사이로 강정천 개울이 암반위로 흐른다. 그 옆 호젓한 나무 길로 접어들었다. 암반 위의 맑은 계곡물소리와 소나무향은 기분을 다시 호전시킨다. 바닥도 솔잎과 부드러운 흙으로 되어있어 발바닥이 기뻐서 소리치는 소리가 들린다.

‘바로 이 느낌이야! 길은 이래야 돼!’


강정마을과 미군 해군기지 사이에는 농성의 흔적이 곳곳에 있다. 마을 주민이 전부 반대를 했어도 미군기지는 그곳에 들어섰고 기지에는 군함도 서너 척 보였다. 저항한 몇 사람이 구속 및 벌금형을 받았다. 어선으로 핵잠수함에 대항하는 격이다.


강정천에 은어가 서식한다. 강물과 바다가 만나는 지역의 강 상류에서 산다. 서로 꼬리를 물면서 헤엄을 치는 속성이 있어서 은어를 낚시할 때는 산 은어 뒤에 낚시 바늘을 단다. 친구를 미끼 삼아 잡는 것이다. 친구 삼으려고 뒤를 물었다가 덜컥 낚시에 걸리는 것이다.

강정천 빠른 물살에 한 사내가 낚시를 하고 있다.


강정천


4.3 사건은 미군정 기간에 발생했기 때문에 1차 책임자는 미군정청장 하지이고, 2차 책임자는 당시 미대통령 트루먼이다.

그리고 직접적 행동대는 이승만대통령과 군경이다.

비 전시상황이고 무장도 하지 않은 민간인을 그냥 집단으로 총살한 것이다. 까불지 마라. 까불면 너희도 제주도처럼 몰살당한다고. 남한 전역에 일어나는 반군정과 반 이승만에 대한 경고였다.


미군은 일본군이 떠난 빈자리에 태평양에서 배를 타고 인천으로 들어왔다. 미군은 점령 통치를 위하여 일본이 떠난 뒤 숨어 있던 일제 때 관료와 일본에 협력한 자산가 중심으로 통치를 했다. 당시 해방된 조선 사람은 자주독립을 원했지만, 미군정은 신탁통치를 했다.

미군정 및 이승만 정권이 폭정을 하자 불만이 터졌다. 기대가 크면 실망이 더 크다. 그런데 그 진압 방식이 참혹했다. 사지에서 살아난 맹견인 군경이 자신을 살려준 주인에게 충성심을 보여주기 위해 하마터면 자신을 심판했을 독립을 원하는 세력을 가차 없이 응징했다.

두 세력의 싸움이 아직까지 한국의 진영대립을 만들고 있는 듯하다.

미해군기지 반대 현수막


저지대의 농토를 만났다. 물이 고여 있는 비닐하우스에서 미나리를 재배한다. 빗물이 농로를 넘쳐 발목까지 물이 찬다.

월평 포구 근처 바위에는 강태공 십여 명이 낚시를 하고 포구에는 작은 배들이 묶여 있다.

7코스 끝나자 비가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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