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순 금모래 해변을 지나면 바로 해안을 벗어난다.
산방산을 두 시간 이상 바라보며 걸었다. 올레길은 산방산을 빙빙 돌아 산 둘레를 한 바퀴 돈다.
멀리 바라보는 산방산은 매우 거친 오르막일 거라 생각했지만, 예상과 달리 대부분은 산방산을 빙빙 돌아가는 평탄한 길이다.
산방산은 천의 얼굴을 지녔다. 멀리서 볼 때는 종처럼 보이다가, 가까이 다가서면 거대한 바위가 위용을 드러낸다.
제주섬을 만든 설문대 할망의 오백 명 아들 중 장남이 사냥에 실패하자 화가 나서 하늘을 향해 화살을 쐈고, 그 화살이 옥황상제의 옆구리를 스쳤다고 한다. 이에 노한 옥황상제가 한라산 꼭대기를 뽑아서 바닷가 쪽으로 던져 산방산이 되었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한라산 정상은 푹 파인 웅덩이 백록담이 생겼고, 여기에는 산봉우리 모양의 산방산이 생겼다고 한다.
진짜 한라산 정상에 오르려면, 산방산 꼭대기로 올라야 하나?
설문대 할망은 제주를 만든 거대한 여신으로, 신화 속에서는 걸음을 한번 옮기면 한라산에서 성산까지 넘어가고 억새를 엮어 만든 치마폭에 오름을 넣어 옮겼다고 한다. 제주인에게는 대지와 자연의 어머니 상징이다.
산 주위는 평지로 되어 있다. 산방산을 끼고 왼쪽으로 돌며 올레길을 걷다 보면 산방산의 신비한 기운 때문인지 고개가 자주 좌측으로 돌아간다.
한라산 쪽에서 보면 마치 산방산이 한라산을 바다로부터 방어하는 듯하고, 마을 쪽에서 바라보면 능선을 지닌 거대한 애벌레처럼 보인다. 해변 쪽에서 뒤돌아 보면 암벽 왕관 같은 위용을 자랑한다.
집 근처 구룡산보다 50미터 높은데 훨씬 더 높아 보인다.
수직에 가깝게 솟아올라 마치 절벽에서 떨어질 것처럼 느껴진다. 올레길은 평지 밭 사이를 지나가지만, 길옆에는 커다란 바위가 박혀 있다. 이는 산방산에서 떨어져 나온 바위라고 한다.
뭔가 기도하는 심정으로 고개를 왼쪽으로 자주 돌려 산방산을 쳐다보며 걷는다.
산방산 올레길은 추사 김정희가 귀양길에 걸었던 길이기도 하다. 빨리 귀향을 풀어달라고 산방산을 향하여 간절히 기원하지 않았을까?
추사는 1840년 헌종 6년에 신축옥사에 연루되어 제주도 대정읍에 귀양 보내졌고, 풍토가 맞지 않는 곳에서 고난과 역경을 거치며, 불후의 걸작인 세한도등을 남겼다. 세한도는 추운 겨울을 이기고 소나무와 잣나무만 푸르다는 공자의 문장을 소재로 삼아 만든 작품이다. 유배 중일 때, 책을 보내준 우정에 대한 감사 표시를 담았다.
산방산은 소원을 들어주고 장수를 준다는 전설이 있다.
산방산은 마주 보면 월출산 같고, 길게 보면 내장산 같지만 전체적인 모습은 그 어떤 산과도 닮지 않았다.
이렇게 애타게 산방산을 바라보았으니, 어쩌면 내 소원을 들어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내 소원은 무엇이었더라?
주변에는 항암 효과가 크다는 마늘밭이 많이 보인다.
좌측에는 형제섬, 우측에는 용머리 해안이 보이는 해변을 걷는다.
해안가 좌판에서 장사를 하는 할머니의 유혹에 못 이겨 회 한 접시와 올레 소주 네 잔을 마셨다.
“먹는 것도 추억이지요.”라는 할머니의 한마디가 인상 깊다.
백사장 모래 위에 파란 목초지가 펼쳐지고, 길은 그 위로 아름답게 이어진다.
마치 스코틀랜드 해안의 평원처럼, 작은 풀들과 모래가 어우러진 풍경이다.
해는 황혼을 앞두고 부드러워지고, 미풍은 낮게 자란 목초를 살랑인다.
파도는 조용히 모래 위로 밀려오고, 종달새는 높은 하늘에서 노래한다.
평화가 온몸에 스며든다.
모처럼 마신 술 때문일까? 아니면 저 뒤에서 웃고 있는 산방산의 선물일까?
저 멀리 한라산이 아련히 눈에 들어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