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심이 확신이 될 때

(도전 D+4) 173km/ 누적 거리: 943km

오늘은 제법 평범한 하루였다.

차도의 갓길을 따라 끝없이 이어진 오르막을 올랐다.

풍경이 지겨워질때쯤 갑자기 핸드폰이 울렸다.

옷 가게 알바를 할 때 손님으로 오셨던 명석님이었다.

그는 친구들과 모임을 하시다가 내 생각이 나서 연락을 주셨다고 했다.

명석님은 내 에너지를 좋아하셨다.

처음 본 순간 느껴지는 에너지가 달랐다고 해주셨는데, 나 역시도 명석 님의 에너지가 좋았다.

그렇게 우리는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맥주 한 잔을 기울이는 친구 사이가 되었다.

"동현씨, 잘 지내죠? 그 넘치는 에너지라면 분명 잘 해낼 거예요! 화이팅입니다."

명석님의 얼굴에는 약간의 취기 있었지만, 그 말에는 진심이 가득했다.

친구들과의 술자리 중 내 생각을 해주신게 너무 감사했다.

평소 같으면 남성들의 응원이 썩 달갑지 않았겠지만, 외롭고 고독한 싸움을 하고 있는 이 순간에는 30대 중년 남성들의 응원도 엄청난 힘이 되었다.

짧은 통화에 힘을 얻고는 더 힘차게 페달을 밟았다.

오늘도 도로 중간중간 로드킬을 당한 동물들이 보였다. 1미터가 족히 넘는 버팔로부터 작은 토끼들까지. 그 종류는 다양했지만 하나같이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갑작스런 죽음을 맞닥뜨린 그들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짧은 기도 뿐이었다.

그렇게 한참을 달려 한 캠핑장에 들어왔다. 중간에 길을 헤매어 시간을 낭비했더니 해는 벌써 지고 있었다. 서둘러 텐트를 치는데 Scott 아저씨가 맥주를 건넸다. 아저씨는 곧 가족 식사를 할건데 내가 왔으면 좋겠다면서 나를 초대해주시기까지했다.

저녁을 먹으면서 연거푸 감사를 표했다. Elisa 아주머니께서는 “우리 여행의 일부가 되어줘서 고맙다”면서 오히려 더 고마워하셨다. Scott은 나 덕분에 식사자리가 더욱 풍요로워졌다면서 다시 한 번 고마움을 전했다.

"우리가 얼굴 앞에 있는 벽을 허물고 서로를 대하면 이렇게 아름다운 만남도 생기는 것 같아.

가족들에게 이 중요한 교훈을 보여줘서 고마워."

그의 따뜻한 한 마디에 눈시울이 붉어졌다.

짐을 정리하고 자려는데 이번엔 바로 옆구역에 계신 Hose 아저씨가 나를 불렀다.

캠프파이어에서 몸을 녹이라며 마시멜로우를 권하시기도 했다. 그의 가족들은 나의 손을 잡고 내가 안전하게 뉴욕에 도착하게 해달라는 기도를 해주셨다.

의심이 확신이 되는 순간들이 있다. 나에게는 오늘이 그 순간이었다. 아직 4500km가 넘는 거리가 남아있지만, 사람들의 따뜻한 손길을 느끼고나니 더더욱 잘 해낼 수 있을거라는 확신이 생겼다.

평범했던 하루를 특별하게 만들어준 고마운 사람들.

역시 여행의 완성은 사람인가보다.

오늘도 역시 제법 특별한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