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 D+3) 162km/ 누적 거리: 770km
시작부터 가파른 오르막길이 이어졌다.
‘곧 내리막이겠지’라는 기대를 품고 열심히 페달을 밟았지만, 3시간이 지나도 내리막은 보이지 않았다.
욕이 나오는 상황이었지만, 그럴수록 웃기로 했다.
미국 횡단을 하셨던 분이 블로그에서 힘든 일이 생겨도 일단 웃으라고 조언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는 "웃을 일이 생겨서 웃는 게 아니라 웃다 보면 웃을 일이 생긴다"라고 하셨다.
그의 말이 맞았다.
미국에 온 뒤 하루하루가 고통의 연속이었지만, 바보처럼 웃다 보니 다양한 방식으로 호의가 돌아왔다.
누군가는 히치하이킹을 해주었고, 어떤 이는 음식을 대접해 주기도 했다.
억지웃음을 짓다 보니 킹맨이라는 도시에 도착했다.
그러나 도심에 들어서자마자 한 여성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귀에 꽂혔다.
그녀는 차량의 창문을 내리고 “Get out of the road!”라고 소리쳤다. 나는 분명 자전거 전용 도로에 있었는데 갑작스러운 호통에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역시 긴 여행에서 아름다운 일만 있을 수는 없나보다.
마음 같아서는 내가 달리고 있는 도로는 자전거 도로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영어 실력이 부족해 차마 입을 열지 못했다. 씁쓸했지만, 한 번 봐준다는 생각으로 웃어넘겼다.
배가 고파서 맥도날드에 들어갔는데 갑자기 할아버지가 말을 걸어왔다.
알고 보니 Rory는 동네에서 자전거를 타던 중 나를 따라오게 되었다고 했다. 무거운 가방을 달고 급하게 달리는 모습에 호기심이 생겼나 보다.
야심 찬 도전을 말해드리니 흥미롭게 들으시면서 내게 햄버거를 사주고 싶다고 하셨다.
예상과 달리 세트가 아닌 단품을 사주셨지만 그래도 정말 감사했다.
식사를 마치고 다시 길을 나섰다. 잠깐 쉬는 동안 몸이 굳어 피로감이 더해졌다. 설상가상으로 몸 구석구석에서도 슬슬 신호를 보내왔다. 이제까지는 전립선이 "저릿"했다면 4일 차부터는 "짜릿"해지기 시작했고, 불편한 클릿 슈즈는 발볼에 극심한 통증을 안겨주었다.
그래도 감사한 마음으로 페달을 밟아 목적지에 꽤 빠르게 도착했다.
도착한 캠핑장에서는 한 가족이 직접 만든 햄버거를 대접해 주시기도 했다.
자전거를 끌고 캠핑장에 들어가면 이목이 쏠리다 보니, 물이나 음식을 건네시는 분이 많았다.
나에게 햄버거를 대접한 Chris는 본인의 가족들에게 미국 횡단 이야기를 해 달라고 부탁했다.
자전거 여행을 하면 아이가 있는 가족들이 더욱 큰 관심을 보인다. 아마도 아이들에게 다양한 삶의 방식을 보여주고 싶어 하는 부모의 마음일 것이다. 이런 귀한 대접을 받을 때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동안의 일들을 최대한 실감 나게 들려주는 것뿐이었다.
그의 가족에게도 내가 미국 횡단을 시작한 이유와 짧은 시간 동안 있었던 일들을 최대한 실감 나게 말해주었다. 한참을 웃고 떠들다 보니 어느새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잘 준비를 하던 중, Chris가 다가와 가족에게 좋은 이야기를 공유해줘서 고맙다며 인사를 건넸다.
그리고 갑자기 손바닥을 보여주었다. 그의 손에는 동전 한 닢이 쥐여 있었다.
잠깐의 정적이 흐른 뒤, 그는 동전의 앞뒷면을 번갈아 보여주었다.
"미국에는 좋은 사람도 많지만, 반대편에는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어."
그는 나에게 조심하라고 거듭 당부했다.
텐트에 누워 잠을 청했지만, 좀처럼 잠이 오지 않았다.
방금 봤던 동전의 뒷면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하지만, 여전히 걱정보다는 설렘이 훨씬 앞섰다.
오늘도 미국 횡단 이야기의 한 페이지가 무사히 넘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