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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동현 Oct 22. 2023

웃어야 할 이유

(도전 D+3) 162km/ 누적 거리: 770km

시작부터 가파른 오르막길이 이어졌다.

‘곧 내리막이겠지’라는 생각으로 열심히 밟았지만, 3시간이 지나도록 내리막은 보이지 않았다.


욕이 나오는 상황이었지만 웃기로 했다.


예전에 미국 횡단을 하셨던 분이 힘든 일이 생겨도 일단 웃으라고 조언했었다.


웃을 일이 생겨서 웃는 게 아니라 웃다보면 웃을 일이 생긴다고.


돌이켜보니 참 맞는 말인 것 같다. 미국에 온 뒤로 매일이 고통의 연속이었지만 바보처럼 웃다 보니 다양한 방식으로 호의가 돌아왔다. 어떤 이는 히치하이킹을 해주기도 했고, 음식을 대접해주는 이도 있었다. 그렇게 억지로 웃으며 Kingman이라는 도시에 도착했다.


하지만 도심부에 들어오자마자 한 여성분이 창문을 열고 “get out of the road!!”라고 소리쳤다. 나는 분명 자전거 레인에 있었는데 갑자기 야단을 맞으니 당황스러웠다. 역시 미국 여행에서 아름다운 일만 있을 수는 없나보다.


마음 같아서는 내가 있는 곳은 자전거 도로라고 말해주고 싶었지만, 내 영어 실력이 부족한 탓에 차마 이야기하지 못했다. 씁쓸했지만 한번 봐준다는 생각으로 웃어 넘겼다.


배가 고파서 맥도날드에 들어갔는데 갑자기 한 할아버지가 말을 걸었다.

알고보니 Rory는 동네에서 자전거를 타던 중 나를 따라오게 되었다고 했다. 무거운 가방을 달고 급하게 가는 모습에 호기심이 생겼다고.


내 이야기를 말해드리니 흥미롭게 들으시면서 햄버거를 사주고 싶다고 하셨다.

예상과 달리 세트가 아닌 빅맥 단품을 사주셨지만 그래도 정말 감사했다.


식사를 하고 길을 나섰다. 잠깐 쉬는 동안 몸이 굳었는지 피로감이 더 잘 느껴졌다. 설상가상으로 몸 구석구석에서도 슬슬 신호를 보내기 시작했다. 3일차까진 전립선이 저릿했다면 4일차부터는 짜릿해지기 시작했고 불편한 클릿 슈즈 때문에 발볼의 통증도 심해졌다.


그래도 감사한 마음으로 달리다보니 꽤 금방 목적지에 도착했다.

도착한 캠핑장에서는 한 가족에게 직접 만든 햄버거를 대접 받기도 했다. 

자전거를 끌고 캠핑장에 들어가면 이목이 집중되는데 물이나 음식을 건네는 분도 많았다.


나에게 햄버거를 대접한 Chris는 본인의 가족들에게 미국 횡단 이야기를 해 달라고 부탁했다.

미국 횡단을 하면 특히 아이가 있는 가족들이 더욱 큰 관심을 보인다.

아마 아이들에게 다양한 방식의 삶이 있다는 걸 보여주기 위함일 것이다.

이런 귀한 대접을 받을 때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동안의 일들을 최대한 실감 들려주는 것 뿐이다.

 

그의 가족들에게도 내가 미국 횡단을 시작한 이유와 짧은 시간동안 있었던 일들을 최대한 실감나게 말해주었다. 한참을 웃고 떠들다보니 어느새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잘 준비를 하고 있는 나에게 갑자기 Chris가 다가왔다. 가족들에게 좋은 이야기를 공유해줘서 고맙다며 인사를 건넸다. 그리곤 갑자기 손바닥을 보여주었다.

그의 손에는 동전 한 잎이 쥐여있었다.


잠깐의 정적이 흐른 뒤, 그는 동전의 앞뒷면을 번갈아 가면서 보여주었다.

"미국에는 좋은 사람도 많지만, 반대편에는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어."

Chris는 나에게 조심할 것을 거듭 당부했다.


자려고 텐트에 누웠지만 좀처럼 잠이 오지 않았다.

방금 봤던 동전의 뒷면이 자꾸 생각났다.

하지만, 여전히 걱정보다는 설렘이 훨씬 앞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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