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 D+1) 208km/ 누적 거리: 333km
분명 저녁 4시에 낮잠을 잤는데 눈을 떠보니 5시였다.
저녁 5시가 아닌 새벽 5시.
전날의 무리로 인해 13시간을 잔 것 치고는 몸 상태는 그리 개운하지 않았다.
하지만 억지로 출발하는 것 밖에 방법이 없었다.
50일 동안 5200km를 달려야 하기에, 하루에 100km는 넘게 타야 했다.
찌뿌둥한 몸을 이끌고 길을 나섰다. 그런데 자전거의 느낌이 이상했다.
자전거가 어제보다 무겁게 느껴졌고, 타이어에서는 심상치 않은 소리가 났다.
'설마'하는 불안한 마음으로 바퀴를 확인해 보니 앞바퀴와 뒷바퀴의 바람이 힘없이 빠져있었다.
도전 중 높은 확률로 펑크가 날 것이라는 예감은 있었지만, 꽤나 당황스러웠다.
그게 첫날 일 줄이야.
유독 다리 통증이 심하고 몸이 피곤했던 것도 전날 펑크 난 자전거를 끌고 한참을 달려왔기 때문이었다
머릿속이 하얗게 변한 채로 캠핑장 주위를 어슬렁거렸다. 이른 아침이라 일어난 사람도 없었다.
만약 이곳이 한국이라면 지인들에게 전화라도 했겠지만, 내가 있는 곳은 낯선 나라 미국이었다.
한참을 걷다가 저 멀리 강아지와 놀고 있는 아저씨를 발견했다.
당장이라도 울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아저씨의 하루를 망치고 싶지 않아 최대한 밝게 웃으며 아침 인사를 건넸다.
그 인사를 시작으로 Bob 아저씨와의 대화가 시작됐다. 그는 나에게 어디서 왔냐고 물었고, 나는 자초지종 상황을 설명했다. 그는 내가 세계 기록을 세운 이야기를 듣고 흥미를 보였다. 영어 기사를 보여주자 그의 눈이 반짝였다.
그러던 중, 자전거에 바람이 빠져버렸다는 이야기를 꺼냈다.
정말 감사하게도 그는 본인이 근처 자전거 가게까지 태워주고 싶다며 아내 Penny의 허락을 맡겠다고 했다. (역시 보고 체계는 만국 공통인가 보다)
다행히 아내 Penny도 내 이야기를 듣고는 나를 돕고 싶어 했다.
결국 우리는 분주하게 근처 자전거 가게로 향했다.
선뜻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준 Bob과 Penny가 정말 고마워서 아침 식사를 대접했다.
두 사람이 아니었다면 아마 펑크 난 자전거로 위태롭게 사막을 달리고 있었을 것이다.
작별 인사를 나누는데 갑자기 눈물이 났다.
'어쩌면 처음 본 사람에게 이렇게 따뜻할 수 있을까?'
그동안의 내 모습을 돌아보게 되었다.
찾아간 자전거 가게는 꽤나 만족스러웠다.
정비공 John은 친절하고 전문적이었다. 그는 가시에 의해 펑크가 났다면서 가시를 보여주고, 펑크 난 튜브를 가지고 패치 붙이는 법도 알려주었다. 그의 추천으로 타이어 라이너를 넣기도 했다.
15만 원이 넘는 스펀지 라이너가 너무 비싸게 느껴졌지만, 사막에서 목숨을 잃는 것보다는 나았다.
계산을 할 때 너무 고맙다면서 John의 경력을 물었다. 그는 47년째 이 일을 하고 있다고 답했다. 원래는 경륜 선수였다고도 덧붙였다. 알고 보니 그는 미국 국내대회 3관왕에 스프린트 부분 세계 기록을 2개나 보유한 괴물이었다. 그의 경력을 들으며 감탄했다. 역시 세상은 넓고 고수는 많다.
새벽 5시에 일어났지만, 자전거를 고치고 나니 어느새 해가 중천에 떴다.
늦어진 만큼 서둘러 달렸다. 오늘은 66번 국도를 타고 동쪽으로 쭉 달리는 코스였는데, 같은 풍경이 반복되어 지루함이 느껴졌다. 설상가상으로 날씨도 매우 더웠다. 그래도 권태로운 풍경과 더운 날씨 덕분에 중간중간 나오는 편의점이 더욱 반가웠다.
달리다보니 오늘의 숙소에 도착했다. 캠핑장에 들어서자마자 Dale이 나에게 목이 마르지 않냐면서 물을 건넸다. 중국에서 온 Alen은 국수를 만들어주기도 했다. 연거푸 이어지는 호의에 당황했다..
오늘의 캠핑장은 시설이 꽤 좋았다. 덕분에 48시간 만에 샤워도 하고, 수영장에서 물장구도 쳤다.
내일부터는 더위로 악명 높은 애리조나에 들어선다. 수분과 에너지 보충에 더더욱 신경 써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