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 D-1) 0km/ 누적 거리: 0km
가장 저렴한 티켓을 구매한 탓에 꼬박 35시간을 날아 미국에 도착했다.
일본에서 22시간 경유해야 했고, 심지어 그 사이 공항을 이동해야 해서 휴식을 취할 겨를조차 없었다.
아직 자전거 여행을 시작조차 하지 않았는데, 수면 부족과 시차 적응 문제로 컨디션은 최악이었다.
하지만 무사히 입국 심사를 통과하기 위해서는 정신을 차려야 했다.
미국은 입국 심사가 까다롭기로 유명하다. 불법 체류를 목적으로 넘어오는 사람이 많다 보니 조금만 의심스러운 모습을 보이면 바로 2차 검문대(흔히 "세컨드"라고 불리는 곳)로 이동하게 된다.
2번째 검문대로 넘어가면 더욱 상세하게 검문을 받게 되는데, 방문의 목적이 명확하지 않을 때는 입국 금지를 당할 수도 있다고 했다.
쏟아지는 졸음을 참아가며 억지웃음을 지었다. 최대한 웃음을 유지한 채로 미국 여행 계획을 이야기했다.
(물론 자전거로 미대륙을 횡단한다는 이야기는 굳이 하지 않았다)
약간의 정적이 흐른 뒤, 검문관이 입을 열었다.
"미국에 온 걸 환영해!"
다행히 내 억지 미소가 통했는지, 여권에 입국 도장을 받아낼 수 있었다.
자전거도 무사히 도착해 있었고, 핸드폰을 확인하니 캘리포니아에 사는 친구 Keith에게도 답장이 와 있었다. 그는 나를 재워주는 게 본인과 가족들의 기쁨이라고 하며, 며칠 편하게 자고 출발할 것을 권했다. 어디서 머물러야 할지 고민 중이었던 차에 정말 고맙고 반가운 제안이었다. 심지어 나를 데리러 공항까지 와주기도 했다.
그는 나를 만나자마자 어떤 총을 챙겨 왔는지 물어보았다.
또, LA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50도가 넘는 사막이 나온다면서 물을 잘 챙기라고 했다.
(차분하게 글로 옮겼지만, 물을 챙겨가지 않으면 도로에 있는 뼈다귀 중 하나가 될 거라고 경고했다)
집에 도착하니 Keith 아내 Lindy가 나를 맞아주었다. 앙칼진 목소리를 가진 Lindy는 똑 부러져 보였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녀는 UCLA에서 영화를 전공한 엘리트였다.
필요한 게 있으면 언제든지 구해주겠다는 그녀의 말에, 그동안 느꼈던 피로가 씻겨 나가는 듯했다.
생각해 보니 마지막 샤워를 한 지 24시간이 넘었다.
서둘러 기름진 머리를 감고, 마당으로 나가 자전거 조립을 시작했다.
마음 같아서는 캘리포니아의 따스한 햇살 아래에서 조금 더 머물고 싶었다.
하지만 55일 후에 뉴욕에서 한국으로 가는 비행기를 예약해 놓은 것이 마음의 짐처럼 느껴졌다.
자전거 조립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자전거 가게 사장님이 조립할 때는 그토록 간단해 보였던 작업이, 직접 해보니 생각과는 아주 달랐다.
결국 3시간이 넘도록 자전거를 조립했다. 분명 시작할 때까지만 해도 해가 쨍쨍했는데, 어느새 하늘은 어둡게 물들었다. 기본적인 조립도 못 하는 모습에 걱정이 됐다. 도로에서 비상 상황이 생겨도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아찔하게 스쳤다.
시간은 오래 걸렸지만, 결국 혼자의 힘으로 자전거 조립을 마쳤다.
그러나 조립을 마무리하고 보니 뭔가 허전했다. 본체와 뒷바퀴를 연결해 주는 핀이 없었다.
한국을 떠나기 전, 동네 자전거 가게에서 자전거 포장을 부탁드렸던 기억이 떠올랐다.
급히 사장님께 연락을 드렸더니, 실수로 핀을 빼먹었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캘리포니아까지 왔는데 고작 핀 하나 때문에 출발하지 못한다니 허탈했다.
하지만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핀을 구할 때까지 도시를 더 둘러볼 수 있게 됐다. 휴식 시간이 생긴 것도 행운이었다.
다행히 Keith와 Lindy의 도움으로 수소문 끝에 꼭 맞는 부품을 찾았다.
자전거 가게 사장님인 Steve는 나의 미친 도전을 응원한다면서 에너지 젤과 모자, 자전거 물통까지 선물해 주셨다. 심지어는 자전거 정비도 무료로 해주셨다.
그들의 따뜻한 호의는 나에게 큰 위안이 되었고, 덕분에 내 좌우명인 ”힘겨운 싸움을 하는 모든 이들에게 친절하라 “는 영화 속 구절을 되새길 수 있었다.
나도 언젠가 누군가에게 기꺼이 호의를 베풀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했다.
도전이 시작되면서 소중한 교훈도 함께 쌓여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