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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동현 Oct 22. 2023

사라진 부품, 출발할 수 있을까?

(도전 D-1) 0km/ 누적 거리: 0km

가장 저렴한 티켓을 구매한 탓에 약 35시간을 날아 미국에 도착했다.

일본에서 22시간 경유를 해야 했는데, 심지어 공항을 이동해야 해서 휴식을 취할 겨를도 없었다.


아직 자전거 여행을 시작조차 하지 않았는데, 수면 부족과 시차 적응 문제가 겹쳐서 컨디션은 최악이었다.

하지만 무사히 입국 심사를 통과하기 위해서는 정신을 차려야 했다.


미국은 입국 심사가 까다롭기로 유명하다. 워낙 불법 체류를 목적으로 넘어오는 사람이 많다 보니 조금만 의심쩍은 모습을 보이면 바로 2차 검문대(흔히 말하는 "세컨드")로 이동하게 된다.


2번째 검문대로 넘어가면 더욱 상세하게 검문을 받아야 하는데, 방문의 목적이 명확하지 않을 경우 가끔 입국 금지를 받기도 한다고 한다.


쏟아지는 졸음을 참아가며 억지웃음을 지었다.

웃음을 유지한 채 최대한 혀를 굴려가며 미국 여행 계획을 이야기했다.

(물론 자전거로 미국을 횡단한다는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약간의 정적이 흐른 뒤, 검문관이 입을 열었다.

"미국에 온 걸 환영해!"

다행히 내 억지 미소 공격이 통했는지, 여권에 입국 도장을 받아낼 수 있었다.


다행히 자전거도 잘 도착해 있었고, 핸드폰을 확인하니 때마침 캘리포니아에 사는 친구 Keith에게서 답장도 와있었다. 나를 재워주는 게 본인과 가족들의 기쁨이라면서 며칠 편하게 자고 출발할 것을 권했다. 어디서 머물러야 할지 고민 중이었는데 너무 고맙고 반가운 제안이었다. 심지어 나를 데리러 공항까지 와주기도 했다.


나를 만나자마자 Keith는 어떤 총을 챙겨 왔는지 물었다.

또, LA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사막이 나오는데 50도가 넘는다면서 물을 잘 챙겨가라고 했다.

(다소 차분하게 썼지만 물을 챙겨가지 않으면 도로에 있는 뼈다귀 중 하나가 될 수 있을 거라고 경고했다.)


집에 도착하니 Keith 아내 Lindy가 나를 맞아줬다. 앙칼진 목소리를 가진 Lindy는 딱 봐도 똑 부러져 보였다.나중에 알고 보니 그녀는 UCLA에서 영화를 전공한 엘리트였다.

필요한 게 있으면 언제든지 구해주겠다는 그녀의 말에 이제껏 느꼈던 피로가 사라지는 듯했다.


마지막 샤워를 한 지 24시간이 넘었다. 서둘러 기름진 머리를 감았다.

그리고 곧바로 마당에서 자전거를 조립하기 시작했다. 

마음 같아서는 캘리포니아에서 조금 더 머물고 싶었지만, 55일 뒤에 뉴욕에서 한국으로 가는 비행기를 결제해 놓은 것이 자꾸 마음에 걸렸다. 어쩔 수 없이 서둘러 출발해야 했다.


자전거 조립은 생각만큼 수월하지 않았다. 

분명 자전거샵 메카닉은 쉽게 자전거를 분해하고 조립했는데, 직접 해보니 눈으로 보는 것과는 정말 달랐다.


결국 3시간이 넘도록 자전거를 조립했다. 조립을 시작할 때까지만 해도 해가 쨍쨍했는데, 어느새 밤이 되었다. 기본적인 조립도 못하는 스스로의 모습에 걱정이 됐다. 도로에서 비상 상황이 생기면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에 아찔했다.


그래도 시간은 오래 걸렸지만, 결국 스스로의 힘으로 자전거 조립을 마쳤다.

그런데 조립을 마무리하고 보니 뭔가 허전했다. 프레임과 뒷바퀴를 연결해 주는 핀이 없었다.


한국을 떠나기 전, 동네 자전거 샵에서 자전거 포장을 부탁 드렸던 것이 생각났다.

사장님께 급하게 연락을 드렸더니 사장님께서 실수로 그 부품을 빠뜨리셨다고 했다.


지구 반대편 캘리포니아까지 왔는데 고작 핀 하나 때문에 출발할 수 없다니.

마음이 급해졌지만,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핀을 가져오지 않은 덕분에 유튜브 각도 생기고, 핀을 구할 때까지 LA를 더 둘러볼 수 있게 됐다.

그리고 몸 상태가 좋지 않았는데 휴식 시간이 생긴 것도 행운이었다.


다행히 Keith와 Lindy의 도움으로 수소문 끝에 꼭 맞는 부품을 찾았다.

바이크샵 사장님 Steve는 나의 미친 도전을 응원한다면서 에너지 젤과 모자, 자전거 물통까지 선물해 주셨고, 자전거 정비를 무료로 해주시기도 했다.


대가를 바라지 않는 친구들의 호의를 받으니 많은 생각이 들었다.

 나의 위기를 기회로 만들어준 그들을 보며 내 좌우명인 ”힘겨운 싸움을 하는 모든 이들에게 친절하라 “는 말이 떠올랐다.  나도 기꺼이 호의를 베풀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다짐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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