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 D-Day) 125km/ 누적 거리: 125km
드디어 도전이 시작되었다.
시차 적응이나 자전거 부품 누락 같은 크고 작은 문제들이 있었지만, 나를 도와준 고마운 친구 덕분에 기분 좋게 여행을 시작할 수 있었다.
첫날인 만큼, 최대한 일찍 일어나 길을 나서기로 결심했다.
새벽 4시쯤 일어나 식빵과 달걀을 먹었다. 긴장한 탓인지 음식이 잘 넘어가지 않았다.
"Keith, 그동안 정말 고마웠어. 부품을 구해준 것도, 나를 먹여준 것도. 다음에 또 봐!"
나를 배웅하기 위해 일찍 일어난 그에게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어젯밤 아쉬움과 고마움이 담긴 편지를 남겼지만, 섭섭한 마음이 좀처럼 가지지 않았다.
설레는 마음으로 페달을 밟았다.
대장정의 첫걸음을 축하하듯, 캘리포니아의 날씨는 맑고 푸르렀다.
캘리포니아는 자전거를 타기에 정말 좋은 환경이었다. 자전거 도로 표시가 잘 되어 있어서 안전했고, 사람들도 친절했다. 지나가는 운전자들은 경적을 울리며 응원을 보내줬고, 길을 걷던 사람들에게서는 박수를 받기도 했다. 다행히 뉴스에서 보던 마약 중독자들은 보이지 않았다.
무릎이 조금 아프고 아직 길들여지지 않은 클릿 슈즈가 신경 쓰였지만, 꿈꿔온 일을 실천하는 이 순간은 너무나도 행복했다.
2시간 정도 달렸을까. 캘리포니아 도심부를 벗어나자, 사람들이 하나둘 사라지기 시작했다. 사람들과 함께 건물도 덩달아 사라졌다. Keith가 조심하라고 당부했던 사막이 시작된 것이다.
뜨거운 햇살 아래, 갓길조차 없는 좁은 도로는 긴장감을 더했다. 차가 빠른 속도로 내 옆을 스쳐 갈 때마다 심장이 요동치고,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그렇게 아슬아슬한 운전은 계속되었다.
다행히 별다른 사고 없이 목표량을 채울 수 있었다. 중간중간 편의점에서 끼니를 때워가며 125km를 달렸다.
오후 3시경에 목표했던 캠핑장에 도착했다. 더 갈 수도 있었지만, 해가 지기 전에 자리를 잡고 충분한 휴식을 취하기로 했다.
미리 봐둔 캠핑장에 들어섰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철조망으로 둘러싸인 캠핑장은 입구가 없었다.
알고 보니, 사전에 예약을 하고 비밀번호를 받아야만 들어갈 수 있는 곳이었다.
뒤늦게 홈페이지에 들어가 봤지만, 이미 모든 자리가 매진되어서 예약할 수 없다고 했다.
주유소도 거의 없는 사막에서 숙소를 찾는 건 더욱 어려운 일이었다. 급하게 근처 숙소를 찾아봤지만, 다음 숙소는 족히 70km가 넘게 떨어져 있었다. 철조망을 바라보며 한참을 멍하니 서 있었다. 잘 곳이 없다고 생각하니 아픈 무릎이 더 쑤셔오는 듯했다.
그때, 캠핑장에 있던 Lisa 아주머니와 마주쳤다. 어머니와 아들, 손자를 데리고 캠핑을 온 그녀에게 혹시 자리의 일부를 내어줄 수 있는지 물어보았다. 1인용 텐트를 칠 수 있는 공간만 제공해 주면, 예약금의 절반을 주겠다고 제안하기도 했다. 혹시나 땀에 흠뻑 젖은 나를 이상한 사람으로 오해할까 봐 간단한 자기소개도 곁들였다.
예상과 달리 Lisa는 흔쾌히 제안을 수락했다.
오히려 당연하다는 듯이 돈도 받지 않고 본인 구역의 일부를 내어주었다.
그녀는 무료로 공간을 내어준 것도 모자라 음료수를 잔뜩 가져다주기도 했다.
세상에는 좋은 사람이 많다는 것을 다시금 실감했다.
미국에 오기 전, 이곳은 총과 약이 있는 위험한 곳이라고 생각했지만, 실상은 내 예상과 아주 달랐다.
도전가 오현호 님의 말이 떠올랐다.
“도전의 가장 큰 적은 해보지 않은 자들의 조언이다.”
이제껏 해왔던 걱정들이 기대로 바뀌어 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