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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동현 Oct 22. 2023

섭씨 43도, 모하비 사막에서 쓰러지다

(도전 D+2) 275km/ 누적 거리: 608km

미국의 더위는 대한민국과는 차원이 달랐다.

특히 내가 건너고 있는 모하비 사막의 기온은 섭씨 40도가 훌쩍 넘었다.


쪄 죽기 싫어서 아침 일찍 길을 나섰다.

원래는 충분한 수면을 취하고 천천히 일어나려고 했지만,

그나마 시원한 새벽부터 자전거를 타고 일찍 라이딩을 마무리하는 것이 나을 것 같았다.


페달을 밟자마자 무릎과 허벅지를 타고 심한 근육통이 올라왔다.

하지만, 몸도 적응을 했는지 잠깐 달리다 보니 감각은 이내 무뎌졌다.

오늘도 어제와 같은 풍경의 연속,

길게 이어진 66번 국도에는 길을 따라 선인장과 이름 모를 풀들이 자라 있었고, 중간중간 죽어있는 동물들도 보였다.


자전거에 오른 지 2시간이 지나도록 차가 한 대도 보이지 않았다. 그동안 못했던 생각 정리를 하기도 하고, 애창곡을 부르기도 했다. 처음 느껴보는 자유로움이었다. 자유를 만끽하며 신나게 내달렸다. 내리막에서는 시속 60을 찍기도 했다.


아침을 간단하게 해결하기 위해 휴게소에 들렀다. 달걀 부리또와 이온 음료를 결제하는데, 주인아주머니가 행운을 빈다면서 웃어주셨다. 옆에 있던 직원은 본인이 케이팝을 좋아한다면서 더 큰 응원을 해주었다. 평소 같으면 대수롭지 않은 대화였겠지만, 고독한 싸움을 하다 보니 이런 작은 친절이 큰 감동으로 다가온다. 역시 미국은 다정하다.


힘을 얻어 다시 길을 나섰다.

오전 10시가 되니 기온은 36도에 육박했고 서서히 체력은 떨어져 갔다.

90km 정도 달렸을 때 작은 음식점 하나가 나타났다.


더위를 피하기 위해 들른 휴게소에서 Antuanet와 Harold를 만났다. 벨기에에서 온 이 선남선녀 커플은 한 달 동안 휴가를 내고 캠핑카를 빌려 미국 서부를 여행 중이라고 했다. 

사랑스러운 두 사람을 보면서 나도 취미를 공유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10여 분간 이야기를 나눈 뒤, 혹시 가는 길이 같으면 나를 잠깐 태워줄 수 있는지 물었다. 지도를 확인하니 10km 정도 가는 길이 같았고, 그들은 흔쾌히 탑승을 허락해 주었다.


중간에 길이 엉켜 약 30분 정도를 낭비했지만, 이들은 미안해하지 말라면서 나를 위로했다.

“이것도 여행의 일부분이야”라고 말했던 게 기억에 남는다. 참 마음까지 예쁜 커플이다.


벨기에 커플 보내고 다시 혼자만의 싸움을 시작했다.

내가 내린 곳은 차량 통제가 된 길이었는데, 차들이 다니지 않는다는 게 좋지 만은 않았다.

물론 차량이 다니지 않으면 사고의 위험은 없지만, 내가 쓰러진다면 나를 발견하거나 구해줄 사람이 없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했다.


어느덧 태양은 중천에 떴고, 기온은 40도를 훌쩍 넘었다. 서서히 목젖이 따가워지며 탈수 증세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길에 그늘도 한점 없어서 멈춰 쉴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목을 타고 건조함이 올라왔지만 애써 외면하며 페달을 밟았다.

다시 돌아가기에는 이미 멀리 와버렸다.

이대로 멈춰 섰다가는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른다.


그 이후의 일은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등이 뜨거워서 바닥만 보며 달렸었고, 갑자기 나른해졌던 것만 어렴풋이 기억난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곧 차가 한대 지나갔다.

갑자기 들리는 엔진 소리에 손을 세차게 흔들었다.


나를 앞질러간 차는 속도를 줄이더니 이내 멈춰 섰다. 차에는 건장한 두 남성이 타있었는데, 평소 같으면 어렵지 않게 내 상황을 이야기했겠지만 말이 잘 나오지 않았다. 더위를 먹기도 했고, 이들을 놓친다면 나를 구해줄 사람이 더 이상 없을 것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참을성 있게 내 이야기를 들어준 John과 Junior는 마침 동쪽으로 가고 있다면서 흔쾌히 나를 태워주었다. 알고 보니 아저씨들은 이 도로의 공사 작업을 맡고 있었고, 휴일에 작업장을 둘러보러 왔다가 우연히 나를 발견했다고 했다. 그중 Junior 아저씨는 이미 자전거 횡단을 하는 사람을 여럿 구출한 적이 있다고도 했다.


이 아름다운 순간을 간직하기 위해 카메라를 켜고 왜 호의를 베푸셨는지 여쭤봤다. 아저씨들은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입을 열었다.


 ”사람이 죽는 걸 두고 볼 수는 없잖아. 너 거의 죽어가고 있었다니까? “

이 날씨에 사막을 건너는 건 무모한 짓이라고 덧붙였다.

(조금 더 아름다운 답변을 기대했는데, 감동 바사삭)


아저씨들은 햄버거를 대접해 주시면서 내 건강 상태를 살펴주셨다. 너무 감사하게도 주니어 아저씨는 본인 집에서의 하룻밤을 자는 것도 허락해 주셨다. 여분의 침실이 있다면서 최대한 편하게 쉬고 가라고 하셨다.


알고 보니 미해병대에서 10년 넘게 근무한 주니어 아저씨. 덕분에 집에서 해병대 사진 구경도 하고 총도 만져봤다. 샤워를 한 뒤, 서부의 명물인 인 앤 아웃 버거까지 먹으니 컨디션이 돌아오는 듯했다.


용기와 객기를 구분해야겠다고 느낀 날.

앞으로는 코스와 날씨 공부를 더 꼼꼼하게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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