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록 국토 종주는 실패했지만,
그 실패를 통해 미국을 자전거로 횡단하겠다는 열망은 오히려 더욱 불타올랐다.
이제는 도전을 구체적으로 계획할 때였다. 본격적으로 인터넷에서 정보를 모으기 시작했다.
이미 미국 횡단을 하셨던 분들이 남긴 후기를 읽고, 정확한 코스를 설계하기 위해 미국 지도를 자세히 살펴보았다.
하지만 정보를 찾을수록 점점 현실적인 벽에 부딪히기 시작했다.
당장 자전거도 사야 했고, 200만 원에 육박하는 비행기 티켓도 구해야 했다.
고민하는 사이에 티켓 가격은 야속하게도 점점 오르기만 했다.
현실의 벽 앞에 좌절하던 중, 우연히 한 공고가 눈에 들어왔다.
"도전 공모전..?"
[K2 어썸도어 도전 공모전]은 멋진 꿈은 있지만 현실적인 어려움으로 그 꿈을 실현하지 못하는 도전가들을 지원 해주는 프로그램이었다. 각자가 가진 도전으로 경쟁하여 최종 선발이 되면 최대 1,500만 원을 지원받을 수 있다고 했다. 게다가 아웃도어 제품까지 지원해 준다고 하니, 장비를 구해야 하는 나에게는 절호의 기회였다.
국토 종주가 첫 번째 용기를 주었다면, 이 공고는 나에게 두 번째 용기를 안겨주었다.
물론 좋은 조건이 제공되는 만큼, 치열한 경쟁률을 뚫어야 했다. 하지만 미대륙을 자전거로 횡단한다는 특별한 계획이라면 승산이 있었다.
자기소개서에는 나를 더욱 강하게 만들어준 그동안의 도전을 소상히 적었다.
그리고 글의 말미에는 최근에 겪었던 "실패"인 국토 종주 이야기도 솔직하게 담았다.
물론 심사위원들이 내 실패를 보며 ‘국토 종주도 실패했는데 어떻게 미국을 횡단할 수 있을까?’라는 의구심을 가질 수 있다는 점은 알고 있었다.
그러나 모두가 대단한 성취를 자랑할 때 내 이야기를 진솔하게 드러내는 것이 눈에 띄는 방법이라고 믿었다.
다행히도, 나의 전략은 성공적으로 작용했다.
1차 관문을 통과했다는 사실에 마음은 설렘과 긴장으로 차올랐다. 이제 남은 것은 면접이었다.
면접 때도 남들과 다른 모습을 보여주기로 했다.
남들은 모두 정장을 입고 왔지만, 나는 사막 마라톤 대회에 입었던 반팔, 반바지를 택했다.
면접실에 당당히 들어섰을 때, 6분의 심사위원들은 모두 놀란 표정을 숨기지 못하고 서로의 눈을 마주쳤다.
약 2주가 흐른 후, 메시지를 한 통을 받았다.
"K2 어썸도어 최종 합격자로 선발 되신 것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메지를 읽는 순간, 믿을 수가 없어 한참을 멍하니 서 있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라는 말이 떠올랐다. 간절한 마음으로 도전을 준비하던 노력이 드디어 결실을 맺은 것 같았다.
합격 메시지는 나에게 또 다른 무기를 선사해 주었다.
그것은 바로 "가장 나다운 모습"이었다.
만약 내가 다른 지원자들처럼 정갈한 옷을 입고, 오직 성공만을 이야기했다면 과연 최종 합격을 할 수 있었을까? 아마도 그럴 수 없었을 것이다.
실패를 이야기하는 것은 부끄럽고 자존심이 상할 수 있었지만, 솔직하게 내 모습을 드러내면서 오히려 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나의 "남다름"을 인정받은 것이다.
지원금을 받은 후, 본격적으로 준비물 구입에 나섰다. 비행기 티켓과 자전거, 오프라인 지도를 구했다.
비자와 같은 서류들도 수월하게 준비할 수 있었다.
정신없이 긴 여정을 준비하는 와중에도 체력 관리는 소홀히 하지 않았다.
하루도 빠짐없이 자전거를 타고, 짐이 실린 무거운 자전거를 끌어야 하기에 체중 조절에도 신경 썼다.
드디어 출국 당일이 밝았다.
사랑하는 친구들의 배웅을 받으며 인천공항으로 향하는 순간에도 실감이 나지 않았다.
내가 달려야 할 5,200km라는 거리도, 미국에 간다는 사실도 거짓말 같았다.
불안한 마음이 가시지 않았다. 수술했던 무릎이 아프거나, 사막에서 물이 떨어지는 상상을 하니 끔찍했다.
하지만 너무 많은 걱정은 하지 않기로 했다.
이미 페달링을 시작한 이상, 가장 "나다운 모습"으로 도전에 임하겠다고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