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 D+6,7) 304km/ 누적 거리: 1569km
(Day 6)
오늘은 시작부터 눈물이 났다.
잠자리와 음식을 제공해 준 Kyle의 여운이 아직 가시지 않았나 보다.
그동안 만났던 사람들의 모습이 차례대로 머릿속을 스쳐 갔다.
분명 앞으로도 좋은 사람들을 만날 테지만, 지금까지 만난 사람들이 벌써 그리웠다.
눈물을 참아보려 했지만, 보는 사람도 없어서 그냥 펑펑 울어버렸다.
그렇게 감정을 쏟아내는 사이, 여러 국립공원을 지났다.
오늘은 유독 다양한 동물을 볼 수 있었는데, 거대한 사슴 무리가 산을 뛰어오르는 모습은 장관이었다.
여유로운 동물 구경도 잠시, 갑자기 하늘이 흐려지며 빗방울이 떨어졌다.
우천에 대한 대비가 되어있지 않아 머릿속이 하얘졌다.
나에게 주어진 유일한 선택지는 전속력으로 달리는 것.
그렇게 구름과의 술래잡기가 시작되었다.
이미 120km 정도를 주행한 상태라 허벅지가 지쳐 있었지만, 필사적으로 도주했다.
다행히 10km 정도 달렸을 때 맥도날드로 피신할 수 있었다.
(오늘은 맥도날드에 안 갈 줄 알았는데)
직원들은 뉴욕으로 향하는 나를 신기하게 바라보았다.
“Esta loco”라는 극찬을 해주시기도 했는데, “너는 미쳤다.”라는 뜻이란다.
햄버거를 다 먹고 기상을 확인해 보니 또 비구름이 다가오고 있었다.
기다리자니 언제 비가 그칠지 장담할 수 없었다. 결국 바로 길을 나섰다.
다행히 2차전도 이겨냈다. 이번에는 구름의 이동 방향이 달랐는지 금방 날씨가 쨍쨍해졌다.
조금 더 달리니 목표지인 캠핑장에 도착했다.
하지만 캠핑장 관리실이 잠겨있었다. 그때 투숙객 Eric 아저씨가 본인 구역에 텐트를 치라며 흔쾌히 자리를 내어주셨다. 오늘도 어김없이 호의는 이어졌다.
어느새 벌써 미국에 온 지 일주일이 지났다.
말도 안 되는 도전이라고 생각했지만, 벌써 4분의 1을 끝냈다. 참 대견하다.
(Day 7)
시작하자마자 들개의 습격이 이어졌다.
어제도 목줄이 채워지지 않은 개들이 나를 공격했지만, 오늘은 제법 큰 놈이었다.
다행히 내리막이라서 화를 면할 수 있었지만 한동안 다리가 떨렸다.
미국 횡단을 간다고 했을 때, 사람을 위해서 총을, 개를 위해서 페퍼 스프레이를 준비하라는 조언을 들었다. 무방비 상태로 사나운 들개를 마주하고 나니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지루한 라이딩이 이어지는 동안, 이런저런 생각을 했다.
오늘 가장 많이 생각했던 주제는 "베푸는 사람이 더 잘살게 되는 이유"였다.
실제로 나에게 호의를 베풀어 준 사람은 모두 경제적으로 잘 사는 듯했다. [기브 앤 테이크]라는 책에서 애덤 그랜트는 소득 수준 최상위층에는 테이커가 아닌 기버가 있다고 이야기했다.
오랜 생각 끝에 내린 결론은 “사람이 베푸는 호의와 친절은 결국 어떤 형태로든 돌아오기 때문”이었다. 카르마라고도 불리는 이 효과를 명확하게 수식화할 수는 없지만, 내 경험상 선한 일을 할 때마다 더 커다란 좋은 일이 생겨왔다.
그래서인지 나에게 친절을 베풀었던 이들은 행복해 보였다. 마치 자신의 선행이 곧 돌아온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 듯했다. 물론 그들이 대가를 바라고 선한 일을 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내가 고마워하는 모습을 보며 그들은 나보다 더 고마워했다.
그래서 호의를 받으면 거절하지 않았다. 대신 최선을 다해서 감사를 표했다. 음식을 대접받았을 때는 찬사를 보내기도 하고, 마음이 따뜻해져 눈물이 흐를 때면 구태여 참지 않았다. 그들이 더 행복할 수 있도록 호의를 만끽했다.
고민에 대한 답이 어느 정도 정해졌을 무렵 캠핑장에 다다랐다. 음식을 구하기 위해 근처 마트를 찾았다. 입구 앞에 첼로를 켜는 친구가 있었는데, 마치 하루 종일 고생한 나를 위해 축하공연을 해주는 듯했다.
베풀면 돌아온다는 게 사실인지 확인해 보고 싶어졌다. 현금은 여의찮아 가장 좋아하는 단백질 음료와 바나나를 사서 건넸다. 돈을 못 줘서 미안하다는 말에 Sam은 이것만으로도 정말 고맙다면서 행복해했다. 그리고 내 미국 횡단 이야기를 흥미롭게 듣고는 행운을 빈다며 본인이 차고 있던 팔찌를 내 팔에 채워주었다. 역시 친절은 돌아오게 되어있다.
인사를 하고 길을 나서려는데, 한 여성이 샘의 노래를 듣고는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알고 보니 Blue는 오늘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다고 했다. Sam과 나는 차례대로 그녀를 안아줬다.
마음이 진정된 그녀는 춤을 추기 시작했다. 그리고 Sam은 그녀를 위해 첼로를 켰다.
나는 한동안 멍하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그들을 만나고 질문의 답을 완성했다.
베푸는 사람들이 잘 사는 건 단순히 경제적인 문제가 아니었다.
그들은 가진 것을 나누며 더 풍요롭게 인생을 “잘” 사는 법을 알고 있던 것이다.
잘 살다 보니 경제력은 자연스럽게 따라온 것일 뿐이었다.
캠핑장에서도 나눔을 이어갔다.
관리실에서 만난 Rudy에게 치킨을 권했다.
배가 너무 고팠지만, 오늘은 함께 먹고 싶은 날이었다.
Rudy 아저씨는 독일인답게 나에게 맥주로 답례했고, 우리는 최고의 치맥을 함께했다.
아저씨는 내일 아침 식사를 대접하겠다고 했다.
마침 가는 길도 같아서 감사히 수락했다.
이번에도 역시 나눔은 돌아왔다.
나눔도 결국 웃음과 같았다.
웃다 보면 웃을 일이 생긴다는 말처럼,
잘 살아서 나눌 수 있는 게 아니라 나눌 수 있어서 잘 사는 거였다.
작은 나눔을 실천하며 앞으로 잘살고, 잘 살게 될 거라는 확신이 강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