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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동현 Oct 22. 2023

지옥 같은 하루

(도전 D+8) 262km/ 누적 거리: 1831km

오늘은 지옥이 따로 없었다.

Rudy와 함께 아침을 먹고 Santa Fe라는 마을을 여행한 것까진 좋았으나, 라이딩 난이도가 극악이었다.


코스를 달리는 내내 역풍이 불어서 평지에서는 시속 10정도를 웃돌았고, 내리막에서조차 20을 넘지 못했다. 마치 초대형 강풍기를 앞에 두고 고강도 트레이닝을 하는 느낌이었다.


너무 힘들어서 바람에게 모욕을 퍼부었다. 모하비 사막을 건널 때 생명을 구해준 바람에게 짜증을 부리다니. 역시 사람은 참 간사하다.


역풍에 이어 비구름도 나를 괴롭혔다. 오늘은 달리 피할 곳도 없어서 한동안 쫄딱 젖은 채로 달렸다. 가방에 물이 차면서 자전거가 무거워지는 게 느껴졌다.


설상가상으로 100km를 넘겼을 때는 탈수 증세가 시작됐다. 오늘은 내리막이 많다는 이유로 편의점에 들르지 않았던 게 화근이었다. 물은 모두 떨어졌지만 목표지까지는 아직 50km나 남아있었다.


정신력으로 40km를 달렸다. 평소 같으면 무난하게 달렸겠지만, 에너지와 수분이 고갈된 상태에서는 이야기가 달랐다. 몸은 끊임없이 이상 신호를 보냈고 그럴 때마다 멈춰서는 수 밖에 없었다.


한계에 다다랐다. 이제 더 이상은 정말 갈 수 없겠다 싶었다. 입술에서 느껴지던 메마름은 어느덧 목구멍까지 옮겨갔다. 정신을 차리기 위해 고속도로 갓길에 멈춰서서 한동안 머리를 세차게 흔들었다.


주저앉으려고 할때 였다. 갑자기 하늘에서 천둥이 치며 비가 내렸다. 아까는 성가시던 비였지만 지금은 성수 그 자체였다. 혓바닥을 내밀고 빗물을 받아마셨다. 그제야 몸의 감각이 돌아오는 게 느껴졌다. 조금만 늦었어도 정말 위험했다.


강한 비바람을 뚫고 위태롭게 나아갔다. 대형 화물차들이 내 옆을 빠르게 지나칠 때마다 자전거가 연약하게 흔들렸다.


고개를 땅에 박고 달리길 30분째, 하늘을 보니 어느새 무지개가 떠 있었다.

오늘 넘어왔던 수많은 고비들이 떠올라서 눈물이 흘렀다.


어느덧 해가 지고 있었다. 결국 목표했던 캠핑장까지 가지 못하고 근처 주유소로 피신했다.

닥치는 대로 음료수를 집었다. 7병을 연달아 마신 뒤에야 정신을 차렸다.


물에 빠진 생쥐 꼴인 내가 신기했는지 사람들이 말을 걸고 사진을 찍었다. 나의 도전이 많은 사람에게 용기를 줄 거라면서 따뜻한 말을 건네주기도 했다.


그중 트럭운전사 샤오가는 나에게 음료수를 대접해 주고 싶다고 했다.

뒤늦게 내가 이미 음료수를 산 걸 보곤 20달러를 건넸다.


가게를 지키던 동은 나에게 필요한 게 있으면 언제든 말만 하라고 했고, 데브라 아주머니는 친절 해줘서 고맙다면서 먹을 것을 사주셨다.


오늘은 유독 춥고 배고팠던 날이었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의 온기가 더욱 따뜻하게 느껴졌다.

나도 지옥 같은 하루를 보낸 이의 마음을 따뜻하게 만져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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