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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동현 Oct 22. 2023

사라진 가방

(도전 D+11) 241km/ 누적 거리: 2128km

어제 엄청난 거리를 소화해서인지 다리가 다른 날보다 유독 아팠다. 결국 알람을 끄고 늦잠을 잤고, 10시가 되어서야 길을 나섰다.


시작하고 20분 정도 달렸을 때, 뒷바퀴에서 연달아 철퍼덕 소리가 났다. 나도 모르게 ”제발. “이라는 소리가 입 밖으로 나왔다.


하지만 기적은 없었다. 뒷바퀴 바람은 힘없이 빠져있었다. 결국 수백 마리의 메뚜기들이 가득한 도로에 멈춰 섰다. 한참을 고민하다가 다음 주유소까지 달려보기로 했다.


펑크 난 타이어로 25km 정도를 달리니 주유소가 보였다. 시원한 음료수를 마시며 히치하이킹을 할 생각을 하니 행복했다.


하지만 주유소가 가까워져 올수록 싸한 기분이 들었다. 도착하니 기대했던 음료수도, 나를 마을로 데려다줄 트럭도 없었다. 깨진 유리창은 분위기에 황량함을 더했다.


좌절하던 중에 오토바이 한 대가 주유소 앞에 섰다. 캐나다에서 LA까지 오토바이로 투어를 하고 있던 Henry. Abandoned Gas Station(버려진 주유소)를 구경하러 왔단다. 알고 보니 내가 찾은 주유소는 폐주유소였던 것.


정말 고맙게도 그는 내가 정비를 마칠 때까지 옆을 지켜주었다. 영상을 찾아보며 내가 맞게 하고 있는지 알려주기도 하고, 혹시 모를 경우에 대비해 근처 바이크샵에 전화도 해주었다.


다행히 튜브 교체에 성공했다. 자전거 수리는 처음이라 걱정했지만, 조립을 한 번 해본 경험이 있어서인지 나름 괜찮게 해냈다. Henry와 인사를 나누고 자전거 검사를 받기 위해 20km 정도 떨어진 자전거샵으로 향했다.


한참을 달리다 보니 Amarilo라는 제법 큰 도시에 도착했다. 배가 고파서 마켓 앞에 자전거를 세웠다. 자전거에서 내리는데 느낌이 이상했다. 평소보다 자전거가 가벼웠다.


자세히 보니 뒷바퀴 위에 올리는 가장 큰 가방이 없었다. 어디서 어떻게 사라졌는지도 알 수 없었다. 잠시동안 뒤로 돌아가봤지만 역시 찾을 수 없었다. 한동안 가방이 있던 자리를 멍하니 바라봤다.


가까스로 정신을 차리고 사라진 가방 속 물건들을 기억해 내기 시작했다. 코인티슈, 여분 튜브, 펑크 수리키트, 샌들, K2옷 들. (아직까지도 확실하지는 않지만) 제법 많은 것들을 잃어버렸다.


문득 머릿속에 아까 누군가 소리를 질렀던 게 기억이 났다. 날씨가 너무 더워서 돌아볼 여유도 없이 그냥 갔었는데, 아마 내 가방이 떨어진 사실을 알려주려고 했던 것이 아니었을까.


고개를 숙이고 앞으로만 달려온 내가 야속했다. 하지만 이미 늦은 일. 무게가 가벼워져서 오히려 좋다며 쓰린 마음을 달랬다. 여권이나 현금, 카메라를 잃어버리지 않은 것도 불행 중 다행이었다.


그렇게 몸과 마음도 지친 상태에서 자전거 샵에 도착했다. 가게 사장님 BC는 지쳐있는 나를 친절하게 맞아주셨고, 다른 직원분들도 내 도전을 흥미롭게 들어주었다.


타이어를 정비받는 동안 오늘 가방을 잃어버린 이야기도 했다. 다들 안타까운 표정으로 이야기를 들어줬다. BC는 오늘 잘 곳이 없으면 본인의 집에서 재워주겠다고도 했다. 다행히 아내분도 흔쾌히 승낙하셨다.


그의 퇴근을 기다리는데 직원 David가 와서 돈을 건넸다. 내가 하는 도전이 엄청나다면서 혹시 상점 내에 필요한 게 있다면 본인이 더 사주겠다고도 하셨다.


순간 눈물이 나왔다. 나의 도전을 한마음으로 응원해 주고, 안타까운 일이 함께 슬퍼해주는 이들이 정말 고마웠다.


BC의 집에 가니 그의 아내 Amy와 아들 Will이 나를 따뜻하게 반겨주었다. 식사도 대접해 주셨고, “make yourself at home”이라는 따뜻한 말과 함께 기도도 해주셨다.


참 절망적인 일들이 가득한 하루였다. 시작과 동시에 타이어에 펑크가 났고, 가방을 잃어버렸다. 너무 힘이 들고 짜증이 나서 모든 걸 내려놓고 집에 가고 싶었다.


하지만 오늘도 역시 사람들의 온기는 힘들었던 기억들을 녹여주기에 충분했다.


너무 고된 하루였지만, 나를 응원해 준 고마운 사람들을 생각해서라도 절대 포기하지 않겠다고 다시 한번 마음을 다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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