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 D+11) 241km/ 누적 거리: 2128km
어제 엄청난 거리를 달려서인지, 오늘은 다리가 다른 날보다 유독 아팠다.
결국 알람을 끄고 늦잠을 잤고, 10시가 되어서야 길을 나섰다.
출발한 지 20분쯤 지났을 때, 뒷바퀴에서 연달아 철퍼덕 소리가 들려왔다. 무의식적으로 ”제발...“이라는 소리가 입에서 새어 나왔다.
하지만 기적은 없었다. 뒷바퀴의 바람은 허무하게 빠져있었다. 결국 수백 마리 메뚜기가 우글거리는 도로에 자전거를 멈출 수밖에 없었다. 한참 고민하다가 가까운 주유소까지 어떻게든 달려보기로 했다.
펑크 난 타이어로 25km를 달려 주유소에 도착했지만, 반가워할 새도 없이 황량한 분위기에 싸한 기분이 들었다. 기대했던 시원한 음료수도, 마을까지 데려다줄 트럭도 없었다. 깨진 유리창은 버려진 공간에 황량함을 더했다.
그때, 오토바이 한 대가 주유소 앞에 멈췄다. 밴쿠버에서 로스앤젤레스까지 오토바이 투어 중이라는 Henry였다. 그는 Abandoned Gas Station(버려진 주유소)을 구경하러 왔다고 했다. 알고 보니 내가 찾은 주유소는 폐주유소였다.
정말 고맙게도 그는 내가 정비를 마칠 때까지 옆을 지켜주었다. 그는 유튜브로 영상을 찾아보며 내가 맞게 하고 있는지 알려주기도 하고, 혹시 모를 경우에 대비해 근처 자전거 가게에 전화도 해주었다.
다행히 튜브 교체에 성공했다. 그동안 자전거 수리에 성공한 적이 없어서 걱정했지만, 이번에는 나름 괜찮게 해냈다. Henry와 인사를 나누고 자전거 검사를 받기 위해 20km 정도 떨어진 자전거 가게로 향했다.
한참을 달려 도착한 아마릴로는 제법 큰 도시였다. 배가 고파서 마트 앞에 자전거를 세웠다. 자전거에서 내리는데 느낌이 이상했다. 자전거가 평소보다 가벼웠다.
자세히 보니 뒷바퀴 위에 올리는 가장 큰 가방이 없었다. 어디서 어떻게 사라졌는지도 알 수 없었다. 잠시동안 왔던 길을 돌아가 봤지만, 가방은 찾을 수 없었다. 한동안 가방이 있던 자리를 멍하니 바라봤다.
겨우 정신을 차리고 사라진 가방 안에 있던 물건들을 떠올려보았다. 코인티슈, 여분 튜브, 펑크 수리 키트, 샌들, K2 옷. (아직까지도 확실하지는 않지만) 제법 많은 것들을 잃어버렸다.
문득 누군가 소리를 질렀던 기억이 스쳐 갔다. 당시 날씨가 너무 더워서 돌아볼 여유도 없이 그냥 가던 길을 갔다. 그는 아마 내 가방이 떨어진 사실을 알려주려고 했을 것이다.
고개를 숙이고 앞으로만 달려온 내가 야속했다. 하지만 이미 늦은 일. 무게가 가벼워져서 오히려 좋다며 쓰린 마음을 달랬다. 여권이나 현금, 카메라를 잃어버리지 않은 것도 불행 중 다행이었다.
그렇게 몸과 마음도 지친 상태에서 자전거 가게에 도착했다. 가게 사장님 B.C는 지쳐있는 나를 친절하게 맞아주셨고, 다른 직원분들도 내 도전에 관심을 가지며 나를 환대해 주었다.
타이어를 정비받는 동안 오늘 가방을 잃어버린 이야기도 했더니, 다들 안타까운 표정이었다. B.C는 오늘 잘 곳이 없으면 본인의 집에서 재워 주겠다고도 했다.
그의 퇴근을 기다리던 중, 직원 David가 와서 돈을 건넸다. 내가 하는 도전이 정말 멋지다며 혹시 상점 내에 필요한 게 있다면 본인이 뭐든 더 사주겠다고 했다. 순간 눈물이 핑 돌았다. 내 도전을 한마음으로 응원해 주고, 안타까운 일이 함께 슬퍼해 주는 이들이 정말 고마웠다.
B.C의 집에 가니 그의 아내 Amy와 아들 Will이 나를 따뜻하게 반겨주었다.
집에서 함께 식사도 하며 “Make yourself at home”이라는 따뜻한 말과 함께 기도도 해주셨다.
절망적인 일이 연달아 터진 하루였다. 시작과 동시에 타이어에 펑크가 났고, 가방을 잃어버렸다.
너무 힘이 들고 짜증이 나서 모든 걸 내려놓고 집에 가고 싶었다.
하지만 오늘도 역시 사람들의 온기는 힘들었던 기억을 덮어줄 만큼 따뜻했다.
비록 고된 하루였지만, 나를 진심으로 응원해 준 이들을 떠올리며 절대 포기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