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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청춘의 지도: 미국 자전거 횡단기 1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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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정을 잊어버리셨나요?

by 유동현 Oct 22. 2023

인생은 플랜 B

(도전 D+12,13) 227km/ 누적 거리: 2355km

B.C의 배웅을 받으며 상쾌하게 하루를 시작했다.

다리 근육이 여전히 뻐근했지만, 타이어를 새로 교체한 덕분인지 자전거가 한결 가벼워진 기분이었다.

5시간 정도 쉼 없이 페달을 밟았다. 점차 배가 고파오던 중 근처에서 괜찮아 보이는 미국 식당을 발견했다. 어제 B.C가 텍사스 축산업의 규모가 미국 1위라고 가르쳐준 것이 생각났다. 때마침 편의점 음식에 신물이 난 터라 망설임 없이 식당으로 향했다. 오늘만큼은 가격을 보지 않고 주문하기로 했다.

식당은 맛집답게 식당은 사람들로 붐볐다. 친절한 아주머니 덕에 메뉴 선택도 수월했다.

애피타이저로 나온 샐러드를 5초 만에 해치운 뒤, 어제 David가 건넨 돈다발을 꺼내 보았다. 한 움큼 집어준 돈은 대략 10만 원 정도였다. 그의 마음이 너무 따뜻하고 고마워서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식당 한가운데에서 샐러드를 먹으며 울음을 터뜨리는 내가 우스꽝스러웠겠지만, 새어 나오는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 어떤 삶을 살아오셨길래 모르는 사람에게 이런 큰돈을 선뜻 건넬 수 있는 걸까?

이윽고 소고기가 나왔고, 허겁지겁 먹기 시작했다. 솔직히 맛이 엄청 특별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입맛이 싱거운 나에겐 짠맛이 너무 강했다. 물론 그동안 먹어왔던 정크푸드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추가 주문한 치킨샌드위치까지 해치운 뒤에야 식사를 마쳤다. 아주머니께 감사하다며 만 원 정도를 팁으로 건넸다. 별로 큰돈도 아닌데 괜히 뿌듯했다. 역시 팁 문화는 받는 사람보다 주는 사람을 기분 좋게 한다.

오랜만에 밥 다운 밥을 먹어서인지 힘이 넘쳤다. 기온은 40도가 넘었지만, 점차 속도를 올렸다.

하지만 110km 정도 달렸을 때, 다시 뒷바퀴에서 바람 빠지는 소리가 났다.

뜨겁게 달궈진 도로 위에서 열심히 펌프질을 했다. 하지만 역시 소용없었다.

결국 근처에 있는 비상 쉼터로 대피해야 했다.

쉼터에 있던 사람들은 차를 타고 오다가 나를 봤다며 신기해했다.

다들 나를 보며 "brave", "bold", 혹은 "crazy"라는 말로 응원을 보내줬다.

근처 자전거 가게를 알아보던 중, 백발의 Bobby가 말을 걸었다. 71세 Bobby는 젊음을 응원한다며 20달러를 내밀었고, 원한다면 대피소에서 하루 묵어도 좋다고 허락했다. 알고 보니 그는 이 대피소의 총관리자였다.

때마침 다리도 아파서 오늘 하루 신세를 지겠다고 했다. 텐트가 있어서 밖에서 잘 수 있다고 하자 바비는 웃으면서 방울뱀 주의 표지판을 가져와 보여주었다. 2주 전, 누군가가 물려 쓰러진 일이 있었다는 이야기에 결국 얌전히 실내에 텐트를 쳤다. 대피소 직원인 Rorry가 챙겨준 참치와 마요네즈를 먹고, 피곤했던 하루를 마무리했다.

일기를 쓰며 사진을 정리하다, 유독 한 사진이 눈에 띄었다.

그 사진 속에는 “Life is all about how you handle Plan B(인생이란 예상치 못한 상황을 어떻게 다루냐에 달려있다.)”라는 문구가 쓰여있었다.

자전거는 아직 완벽히 고치지 못했지만, 내일 생각하기로 했다.

어차피 인생은 계획대로 되지 않을 테니까. 그때그때 해결해 나가면 될 것이다.

그리고 이튿날 아침, 걱정을 내려놓으니 정말 일이 잘 해결되었다.

눈을 뜨니 Bobby가 펑크 수리액을 건네주었고, 덕분에 자전거를 임시로 수리할 수 있었다.

그날로 텍사스를 벗어나 다섯 번째 주인 오클라호마에 무사히 도착했다.

Plan B들의 연속이었지만, 사람들의 따뜻한 응원이 나를 다시 앞으로 나아가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