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 D+14,15) 300km/ 누적 거리: 2655km
(Day 14)
오늘은 미래에 대해 많은 생각이 오갔다.
내 나이 스물일곱.
함께 뛰어놀던 친구들은 석사 학위를 마치거나 번듯한 직장에 자리를 잡았다.
하지만 아직 학사 과정이 1년 반이나 남은 나는 마지막 휴학을 즐기기 위해 미국에서 자전거 횡단을 하고 있다. 별나다는 이야기는 많이 들었지만, 이제까지의 행적들을 떠올려 보니 정말 남들과 다른 삶을 살아온 게 실감이 났다.
처음 방황을 시작한 건 20살 무렵.
대학에 오면 행복한 인생이 시작될 줄 알았는데, 명문대에 진학한 동기들은 모두 대기업에 가는 게 목표라고 했다. 솔직히 실망스러웠다. 4년이라는 시간과 큰 비용을 들여 대기업에 갈 준비를 한다는 게 이해되지 않았다. 나에겐 더 멋진 이유가 필요했다.
하지만 끝내 답을 찾지 못했다.
결국 대학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해 방황을 시작했다.
그리고 방황은 0점대 학점과 학사 경고로 돌아왔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서 수술 경력을 숨기고 자진 입대를 했다.
해병대에서 운동과 독서를 통해 스스로를 준비시켰다.
언젠간 찾아올 기회를 잡기 위함이었다.
전역을 앞둔 무렵, 극지 마라톤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사막과 남극을 달려 극지 마라톤을 완주하며 세계 기록을 세웠다.
이때 비로소 내가 살고 싶은 삶의 방향을 찾을 수 있었다.
사람들은 잠시 멈추면 인생이 뒤처진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사회적 나이를 따라가는 것의 장점도 있겠지만,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과 살고 싶은 인생의 방향을 고민하여 그에 맞는 삶을 사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내 인생을 다른 사람이 정해놓은 틀에 꿰맞추기 전에, 나를 가슴 뛰게 하는 일이 무엇인지 깊이 있게 고민해 봐야 한다.
누군가가 '늦었다'고 이야기할 때,
다른 누군가는 '더 멀리 나아가기 위한 준비를 했다'고 이야기한다.
나는 비록 친구들보 사회적 나이는 어리지만, 지금 내가 하고 있는 경험이 큰 자산이 될 거라고 확신한다.
지금도 누군가는 사회적 나이에 본인을 끼워 맞추기 위해 부단히 애쓰고 있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불안해하지 말라는 말을 하고 싶다.
각자 삶의 속도가 다르니까.
그리고 삶에 정답은 없으니까.
비교의 속뜻은 비참 혹은 교만이라고 한다.
남들과 나를 비교하기 전에 한 번쯤은 멈춰서서 스스로에게 물었으면 좋겠다.
과연 나는 내가 원하는 삶을 살고 있는지,
만약 아니라면 지금부터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
(Day 15)
놀랍게도 미국에서 영웅 대접을 받는 중이다.
고속도로를 달릴 때마다 사람들이 경적을 울려 응원해 주고, 편의점에서는 사진을 찍자고 요청을 받기도 한다. 심지어는 손에 돈을 쥐여주시는 분도 있었다.
오늘은 라이딩 중에 한 로컬 시장에 들렀다.
아름다운 강을 따라가다가 우연히 발견한 곳이었는데, 유독 느낌이 좋았다.
자전거를 끌고 들어가자, 역시 사람들이 신기하게 쳐다봤다.
모두 나에게 어디로 가냐고 물으며 관심을 가졌다.
뉴욕으로 간다는 말에 사람들은 놀라며 각자 팔고 있던 것들을 내주었다.
신선한 과일을 컵에 가득 받기도 하고, 시원한 콤부차도 마셨다.
Ashley는 미국 횡단을 TV로만 봤지 실제로 도전하는 사람은 처음 본다고 했다.
열 살배기 아이 Will과 Joe는 연신 "대단하다"며 나에게 질문을 쏟아냈다.
아이들에게 작은 용기가 되어줄 수 있어 뿌듯했다.
기분 좋게 시장을 떠나 한참을 달렸다. 오클라호마는 자전거와 3피트의 거리를 유지해야 하는 주법이 있어서 라이딩이 한결 편했다. 중간중간 도로에 죽어있는 아르마딜로와 거북이들을 볼 때마다 마음이 무거웠지만, 날씨는 그리 덥지 않아서 컨디션은 좋았다.
목적지에 다다랐을 때 가장 좋아하는 음식점인 치폴레에 들렀다.
주문하고 계산을 하려는데 직원 William은 돈을 사양했다.
이유를 묻자, 그는 “너는 지금 엄청난 여행을 하고 있잖아”라며 웃었다.
오늘은 유독 많은 응원을 받은 날이었다.
내가 좋아서 시작한 일이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을 주고 있는 게 참으로 감사하다.
William의 말처럼 나는 그냥 자전거를 타고 있는 게 아니었다.
도전을 망설이는 많은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는 일을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