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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동현 Oct 22. 2023

경찰차 탑승기

(도전 D+18,19) 289km/ 누적 거리: 3285km

(Day 18)

뜨거운 날씨에 라이딩을 하다 보면 유독 생각나는 음식이 있다.

바로 시원한 딸기우유다.


한국에 있을 때는 몸 관리를 위해 잘 먹지 않았지만, 하루에 8천 칼로리 넘게 소모하는 요즘은 거리낌 없이 마신다. 물론 하루 종일 자전거를 타는 나에게 유제품은 당연히 좋지 않다. 마실 때는 기분 좋아도, 뜨거운 태양 아래를 달리다 보면 어김없이 배탈이 난다.


이론상으로는 알고 있었지만, 라이딩 3일 차에 이를 직접 체득했다.

우연히 들른 슈퍼에 마침 딸기우유가 세일 중이었고, 목이 너무 말랐던 나는 망설임 없이 우유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뜨겁게 달궈진 바닥에 앉아 시원한 딸기우유 하프 갤런(약 2L)을 해치웠다.

곧바로 배탈이 찾아왔고 지옥 같은 하루를 보내야 했다.


2주 후, 같은 실수를 반복했다. 이번엔 초코우유 하프갤런을 먹고 섭씨 36도의 뜨거운 날씨에서 라이딩을 했다. 결국 예상했던 대로 복통이 밀려왔고, 화장실을 들락날락하는 바람에 한동안 주유소에서 시간을 보내야 했다. 해가 지고 있어서 불안했지만, 도저히 떠날 수가 없었다. 한참을 쉬고 나서야 다시 길을 나설 수 있었다.


역시 과한 것보다 부족한 게 낫다.

음식은 첫입이 가장 맛있고, 음료는 첫 목 넘김이 가장 부드러운 것처럼.


복통 때문에 무척 힘들었던 날.

그래도 나의 장점을 살려 굳이 좋았던 점을 찾자면 예상보다 빠르게 주행거리를 채웠다는 것이다.

잠시라도 집중을 놓거나 힘을 풀면 큰일이 난다는 걸 알기에 단 한 순간도 집중력을 놓을 수 없었다.

그래서 별다른 고통 없이 100km를 넘겼다.


몸 관리도 실력이다. 앞으로는 욕심내지 말아야겠다




(Day 19)

어제는 Buck 아저씨 덕분에 하루를 넘겼다.


텐트를 치고 자도 되겠냐는 나의 부탁을 흔쾌히 허락해 주었고,

안 될 거 뭐 있냐며 사용료도 받지 않으셨다.

캠핑장에 있던 아이들과 노느라 수면 시간이 줄어들기는 했지만, 덕분에 마음 편히 잠을 청했다.


다음 날 아침, 식빵을 먹고 있는 나에게 Buck이 다가왔다. 그리고 잘 먹고 다니라면서 점심값으로 20달러를 건넸다. 기분 좋은 하루의 시작 덕분인지 이후로도 행운이 이어졌다.


도로 위에서는 사람들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엄지를 치켜세웠고,

점심을 때우기 위해 들른 식료품점에서는 Kelly가 땀에 젖은 나를 안아주며 격려해 주었다.


미국에 온 뒤 하루도 평범했던 날이 없었지만, 오늘은 달랐다.

그간 고생한 나를 위한 선물 같은 날이었다. 날씨마저 완벽해 I-44를 따라 기분 좋게 달렸다.


바로 그때 뒷바퀴에서 철퍼덕 소리가 났다. 확인해 보니 철사들이 바퀴에 박혀 있었다.

갓길에 자갈과 유리 파편, 그리고 죽은 동물들이 많아서 걱정했는데 예상대로 사고가 났다.

(그럼 그렇지...  오늘도 나를 그냥 놔둘 리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내가 멈춰 선 곳은 산 중턱이었다.

급하게 주변 주유소를 검색해 봤지만 역시 없었다.


뜨겁게 달궈진 도로 위에서 히치하이킹을 시도했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고속도로 한가운데에 멈춰 서는 차는 없었다.


시간은 어느새 오후 6시. 곧 있으면 해가 질 시간이었다.

어쩔 수 없이 천천히 조금씩 나아가보기로 했다.

거대한 화물차들이 굉음을 내며 옆을 스쳐 갈 때마다 겁이 났지만, 집중하며 한 발짝씩  조심스레 걸음을 옮겼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저 멀리 갓길에 세워진 두 대의 차가 보였다.

떠나기 전에 그들을 잡아야 했다.

속도를 내어 가까이 가보니 고속도로 순찰차가 불시 검문을 하고 있었다.

이제까지 미국에 온 뒤로 고속도로에서 경찰차를 본 것은 처음이었다.

하필 자전거가 고장 난 날 경찰을 만나다니, 정말 운이 좋았다.


고맙게도 경찰 Hunt는 기꺼이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 경찰차에 자전거를 실을 공간이 없었지만 함께 해결책을 고민한 끝에 바퀴와 안장을 분리해 차에 자전거를 실을 수 있었다.


자전거를 싣고 이동하려는 그때, 눈앞에서 연쇄추돌 사고가 났다. 다행히 부상자는 없었지만 조금 전까지 고속도로를 위태롭게 걷던 내 모습이 생각나 가슴이 서늘했다.


사고를 수습하고 근처 마을인 롤라로 이동했다. Hunt는 친절하게 자전거 가게 보여준 뒤, 나를 근처 여관에 내려줬다. 그가 보여준 남다른 태도와 책임감은 참 인상적이었다.

근처 캠핑장이 없어서 처음으로 여관에서 잠을 청했다. 숙박비로 10만 원을 지출한 게 조금 쓰리긴 했지만, 오랜만에 문이 있는 곳에서 잠을 수 있어 행복했다.


오늘 하루도 마치 영화 같았다.

힘든 일이 있었지만, 좋은 태도를 가진 사람들 덕분에 극복할 수 있었다. 그리고 성장할 수 있었다.


내일도 내가 갖출 수 있는 가장 좋은 태도를 갖춰야겠다.

좋은 사람들을 끌어당길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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