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동현 Oct 22. 2023

사회적 나이

(도전 D+14,15) 300km/ 누적 거리: 2655km

(Day 14)

오늘은 미래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게 되었다.


내 나이 27살.

함께 뛰어 놀던 친구들은 석사 학위를 취득하거나 번듯한 직장에 자리를 잡았다.


하지만 아직 학사 과정이 1년 반이나 남은 나는 마지막 휴학을 즐기기 위해 미국에서 자전거 횡단을 하고 있다. 별나다는 이야기는 많이 들었지만, 이제까지의 행적들을 떠올려 보니 정말 남들과 다른 삶을 살아온게 실감이 났다.


처음 방황을 시작한 건 20살 무렵.


대학에 오면 행복한 인생이 시작될 줄 알았는데, 명문대에 진학한 동기들은 모두 대기업에 가는 게 목표라고 했다.


솔직히 실망스러웠다. 4년이라는 시간과 4천만 원이라는 등록금을 들여서 대기업에 갈 준비를 한다니. 나에겐 더 멋진 이유가 필요했다.


하지만 끝내 답을 찾지 못했다.

결국 대학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해 방황을 시작했다.

그리고 방황은 0점대의 학점과 학사 경고로 돌아왔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서 수술 경력을 숨기고 자진입대를 했다.

해병대에서 운동과 독서를 통해 스스로를 준비시켰다.

언젠간 찾아올 기회를 잡기 위함이었다.


전역이 다가왔을 즈음, 극지 마라톤을 알게 되었다.

사막과 남극을 달려 세계 기록을 세우면서 그제야 어떤 삶을 살아야 할지 갈피를 잡았다.


누군가는 잠시 멈추면 인생이 뒤처진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물론 사회적 나이를 따라가는 것의 장점도 있겠지만, 나는 그것보다 내가 어떤 걸 좋아하고 어떤 인생을 살고 싶은지 고민하여 그에 맞는 인생을 사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생각이다.


내 인생을 다른 사람이 정해놓은 틀에 껴맞추기 전에, 나를 가슴 뛰게 하는 일이 무엇인지 깊이 있게 고민해 봐야 한다.


누군가가 늦었다고 이야기할 때,

누군가는 더 멀리 나가기 위한 준비를 했다고 이야기한다.


나는 비록 친구들에 비해 사회적 나이는 어리지만, 지금 내가 하고 있는 경험이 큰 자산이 될 거라고 확신한다. 지금도 누군가도 사회적 나이에 본인을 끼워 맞추기 위해 부단히 애쓰고 있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불안해하지 말라는 말을 하고 싶다.

각자 삶의 속도가 다르니까. 그리고 정답은 없으니까.


비교의 속뜻은 비참 혹은 교만이라고 한다. 남들과 나를 비교하기 전에 한 번쯤이라도 멈춰서서 스스로 질문해봤으면 좋겠다.


과연 나는 내가 원하는 삶을 살고 있는지,

만약 아니라면 지금부터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


(Day 15)

놀랍게도 미국에서 영웅 대접을 받는 중이다.


고속도로를 지나가면 사람들이 경적을 울리면서 응원해 주기도 하고, 편의점에서는 사진 요청을 받기도 한다. 심지어는 손에 돈을 쥐여주시는 분도 있었다.


오늘은 라이딩 중에 한 로컬마켓에 들렀다. 아름다운 강을 따라가다가 우연히 발견한 곳이었는데 유독 느낌이 좋았다.


자전거를 끌고 들어가자, 사람들이 신기하게 쳐다봤다. 모두 어디로 가냐면서 나에게 관심을 가졌다.

뉴욕으로 간다는 말에 사람들은 놀라며 각자 팔고 있던 것들을 내주었다. 신선한 과일이 가득 담긴 컵을 받기도 하고, 시원한 콤부차도 마셨다.


애슐리는 미국 횡단을 TV로만 봤지 실제로 하는 사람은 처음 봤다고 했다.

열 살배기 아이들 윌과 조는 나에게 연신 대단하다고 말해주면서 질문을 쏟아냈다. 아이들에게 작은 용기가 되어준 것 같아 뿌듯했다.


기분 좋게 마켓을 나와 한참을 달렸다. 오클라호마주는 자전거와 3피트 거리를 유지해야 하는 주법이 있어서 라이딩이 편했다. 중간중간 죽어있는 아르마딜로와 거북이들이 마음을 아프게 했지만, 날씨가 그리 덥지 않아서 컨디션은 좋았다.


목적지에 다다랐을 때 가장 좋아하는 음식점인 치폴레에 들렀다. 주문을 하고 계산을 하려는데 직원 윌리엄은 돈을 사양했다.

이유를 묻자, 그는 “너는 지금 엄청난 여행을 하고 있잖아.”라고 답했다.


오늘은 유독 많은 응원을 받은 날이다.

내가 좋아서 시작한 일이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을 주고 있는 게 참으로 감사하다.


윌리엄의 말처럼 나는 그냥 자전거를 타고 있는 게 아니었다.

도전을 망설이는 많은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는 일을 하고 있었다.




이전 16화 인생은 플랜 B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