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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동현 Oct 22. 2023

성장통

(도전 D+20,21) 254km/ 누적 거리: 3539km

(Day 20)

오랜만에 에어컨이 있는 곳에서 잠을 자니 상쾌했다. 차원이 다른 수면을 조금이라도 더 느끼기 위해 알람을 끄고 늦잠을 잤다.


보통 해가 뜨는 7시에 맞춰 라이딩을 시작하지만, 오늘은 기온이 33도인 대낮에 길을 나섰다.

가만히 있어도 땀이 흐르고 등이 타는 듯한 날씨. 결국 비장의 무기를 꺼내기로 했다. 유튜브를 켜고 노래를 틀었다.


내가 요새 빠져있는 배말랭이라는 유튜버가 부른 [성장통]이라는 노래로 결정했다.


3시간 동안 같은 노래를 들으면서 달렸다. 길 위에 사람이 없을 때는 열창을 하기도 했다. 효과가 꽤 좋았는지 힘들지 않게 50km를 탔다.


잠시 목을 축이러 식당에 들렀다. 길가에 있던 작은 식당이었는데, 손님은 제법 많았다.

그중 한 커플인 존, 테리와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그들은 내게 도전의 이유를 물었고, 나는 ”사람들의 편견을 깨고 용기를 주기 위해서”라고 답했다.


대화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3시가 넘었다. 더 더워지기 전에 길을 나서기로 했다. 계산을 하려는데, 존과 테리가 내 음료를 몰래 계산한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내가 감사를 표하자 그들은 멋진 도전을 응원한다면서 조심하라는 충고를 덧붙였다.


열창을 이어가다 보니 어느새 저녁 시간이 되었다.

식사를 해결할 만한 곳이 마땅치 않아 식료품점에 들렀다. 바나나와 블루베리로 저녁을 해결했다.


다시 길을 나서려는데 덴이 말을 건넸다. 나는 내 도전과 그동안 있던 일을 간략하게 설명했다.

덴은 나를 기특한 눈빛으로 바라보더니 본인도 예전에 친구들과 50마일씩 자전거를 타고 놀았다고 했다.


과거를 회상하는 그의 눈에는 왠지 모를 슬픔이 가득했다. 알고 보니 덴도 미국 자전거 횡단을 해보고 싶었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하지 못했다고 했다.


그는 만약 과거로 돌아간다면 조금이라도 젊고 건강할 때 도전을 했을 거라고 이야기했다.


덴의 부러움을 받는 동안, 오늘 하루 종일 들었던 성장통이라는 노래가 떠올랐다.


미국 자전거 횡단은 나에게 성장통 같은 존재였다.

수술했던 무릎이 아프고, 샤워를 못하는 일도 허다하다.


운이 좋으면 캠핑장에서 잠을 자지만, 쓰레기장이나 버려진 자판기 옆에서 선잠을 자기도 한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이 고통은 나를 성장시키고 있다.

그리고 마치 덴이 나를 부러워하는 것처럼, 누군가에게 이 성장통은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덴과 이야기를 나누고 큰 용기를 얻었다.

하루하루가 고통의 연속이지만, 더 열심히 도전해야겠다고 다짐했다.

미래의 유동현이 지금의 유동현을 기특하게 볼 수 있도록.


보통 도전을 하기 위해서는 3가지 요소가 필요하다고 한다. 돈, 시간, 그리고 체력.

하지만 이 조건들을 모두 갖추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결국 10, 20대에는 돈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30, 40대에는 시간을 핑계로 도전을 미룬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50대가 넘으면 어느새 몸이 예전 같지 않음을 느낀다.


비록 돈은 많지 않지만, 젊음이 있음에 참 감사했던 하루.

앞으로도 젊은 날들이 아깝지 않도록 더 열심히 도전하며 살아야겠다.




(Day 21)

오늘은 종합 선물 세트 같은 날이었다.

최악의 상황인 더위, 역풍, 고도 세 가지가 모두 겹쳤다.


37도가 넘는 기온이 5시간 넘게 이어졌고,

시작하자마자 경사도가 13%인 산들을 넘어야 했다.


조금 더 엄살을 부리자면 습도는 80%가 넘었고, 코스는 큰 홈이 팬 비포장도로였다.

(3종 세트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무제한 골라 담기.)


하지만 아침 일찍 라이딩을 시작한 덕분에 Missouri를 떠나 Illinois로 이동할 수 있었다.

이제껏 도로로 주를 이동했지만, 이번에는 육로가 아닌 Chain of Rocks Bridge라는 낡은 다리를 통해서 미시시피강을 건넜다.


뜨거운 태양 아래 라이딩을 하니 머리가 어지럽고 자꾸 눈이 감겼다. 그대로 가다간 사고가 날 것 같아 결국 멈춰 섰다.


근처 편의점에 들어갔다. 헬멧을 쓰고 있는 나에게 시선이 쏠렸다.

(이 날씨에 자전거 타는 사람을 본다면 나 같아도 신기했을 것 같긴 하다.)


편의점 안에 있던 사람들은 나에게 이런저런 질문을 던졌다.

그리고 본인이 도울 게 없는지 물었다.


곤잘레스 아저씨는 본인도 시카고로 향하고 있다며 나를 태워주고 싶어 했고,

미해병대와 공군으로 근무했던 조시는 본인 친구들에게 연락을 돌려서 나를 태워줄 사람이 있는지 알아봐 줬다.

결국 아무 도움을 받지는 못했지만, 신경 써준 것만으로도 정말 감사했다.


곤잘레스는 밥 잘 먹고 다니라면서 20달러를 쥐여주었고,

조시는 본인의 번호를 적어주며 위험한 상황이 생기면 언제든 연락하라고 했다.


든든한 친구들의 응원 덕분에 다시 힘을 내서 자전거에 올랐다.


한창 열심히 달리는데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다. 생각해 보니 마지막으로 밥을 먹은 지 거의 6시간이 지났다. 배가 고프면 이미 늦은 거랬는데, 오늘은 운영도 엉망이었다.


근처 마을까지 혼신의 힘을 다해 달렸다. 겨우 찾은 음식점에서 허겁지겁 메뉴를 시켰다.

벌써 시간은 오후 7시. 1시간 뒤면 해가 지는데 아직 숙소도 구하지 못해 마음이 착잡했다. 설상가상으로 주변에 캠핑장도 없었다.


급한 대로 식당 안에 있던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했다. 하지만 다들 정중하게 거절했다. 마지막 희망이었던 식당 주인에게도 거절당하자, 눈앞이 캄캄했다.


오늘은 뭘 해도 안 되는 날인가 보다.


어쩔 수 없이 24시간 편의점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밤을 새우거나 텐트를 칠 심산이었다.

편의점에 도착하니 바로 맞은편에 허름한 여관이 보였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여관 주인분께 텐트를 쳐도 되는지 여쭤봤다.


주인 랜디는 흔쾌히 허락했고, 덕분에 버려진 자판기 옆에서 쪽잠을 청할 수 있었다.


어느 것 하나 쉽지 않았던 오늘 하루.

온갖 고난을 꾸역꾸역 넘기고 나니 몸과 마음이 지쳤다.

그래도 뉴욕에서 태극기를 휘날릴 날을 떠올리며 좀 더 힘을 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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