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 D+22,23) 382km/ 누적 거리: 3921km
(Day 22)
뜨겁게 달궈진 공기는 좀처럼 식지 않았다. 밤에도 기온이 너무 높아서 땀이 쏟아졌다.
하지만 너무 피곤했는지 어느새 잠이 들었다.
깊이 잘 수는 없었다.
밖이 너무 밝았고, 중간에 인기척이 들리면 일어나서 경계를 해야 했다.
심지어 꼭두새벽에는 태풍과 비바람에 텐트가 흔들리기도 했다.
새벽 6시가 되자마자 도망치듯 짐을 꾸렸다.
길을 나서려고 할 때 화단에 있는 메리골드가 눈에 들어왔다.
메리골드의 꽃말은 ‘반드시 오고야 말 행복’
한동안 꽃을 감상한 뒤, 다시 자전거에 올랐다. 예상치 못한 선물을 받은 기분이었다.
오늘은 쉬지 않고 열심히 달렸다. 미시간에 사는 고모가 8월 5일에 휴가를 떠난다며 그전에 얼굴을 보자고 했다. 보급도 거의 하지 않은 채로 120km를 달렸다. 어제 더위에게 혼이 난 터라 오늘은 더워지기 전에 거리를 채우자는 전략이었다.
일리노이주에 있는 스프링필드에 다다랐을 때 식사를 하기 위해서 잠시 멈췄다. 때마침 더위도 기승이었다. 길을 가다가 랍스터집이 보였다. 예산상 당연히 지나치는 게 맞지만, 새우 무힌리필이 20달러라는 현수막을 도저히 지나칠 수 없었다.
시간이 오래 걸리기는 했지만, 오랜만에 건강한 음식을 배불리 먹을 수 있었다.
거의 10 접시를 먹어 치운 후에야 자리에서 일어났다.
너무 많이 먹어서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이곳에 20년 정도 근무한 브라이언은 200 접시를 먹은 사람도 있다면서 미안해하지 말라고 했다. 한 접시에 5마리니까 대략 1000마리를 먹은 셈이다.
기분 좋게 배를 채운 덕분에 목표했던 캠핑장에 수월하게 도착했다.
캠핑장에 들어갈 때였다. 갑자기 상의 탈의를 한 거구 남성 두 명이 나를 막아섰다.
에릭과 토드는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더 이상 캠퍼들을 받지 않는다고 했다.
“미안해. 우리는 RV 전용이라 캠퍼들을 받지 않아. 우리 화장실이랑 샤워실도 없는걸.”
드넓은 옥수수밭 한가운데에 갈 곳 없이 갇혀버린 상황. 또다시 머릿속이 하얘졌다.
고민에 잠겨있는 그때 그들이 입을 다시 입을 열었다.
“하지만.. 자전거로 미국을 횡단하는 멋진 친구라면 이야기가 다르지. 일단 들어와~”
정말 고맙게도 나를 받아준 그들 덕분에 오늘도 잠자리를 해결할 수 있었다.
서둘러 텐트를 치고 호스로 간단하게 샤워를 했다. 비록 낡은 호스였지만 나에게는 최고급 샤워 시설 못지않았다.
에릭과 토드에게 저녁 식사를 대접받기도 했다. 샤워를 마치고 나오자 그들은 달콤한 홍차와 소고기가 가득 든 타코를 건넸다. 이제껏 먹었던 타코 중에서 가장 맛있는 타코였다.
잘 준비를 하고 텐트에 들어가려는데, 옥수수밭을 날아다니는 수십 마리의 반딧불이들이 보였다.
처음 보는 반딧불이를 한동안 구경했다.
예상치 못한 선물이 가득했던 날.
오늘은 행복하게 잠에 들 수 있었다.
행복이라는 건 어쩌면 이미 와 있는지도 모른다.
(Day 23)
오늘도 해가 뜨는 시간에 맞춰 일어났다. 밖으로 나가보니 옥수수밭에 물안개가 자욱했다.
한 치 앞도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습도를 확인해 보니 95%.
널어놓은 옷들도 축축하게 젖어있었다. 하지만 마를 때까지 기다릴 여유가 없었다.
더 기다렸다간 도로에 차들이 많아지기 때문이었다.
축축하게 젖은 옷에 몸을 밀어 넣었다. 차가운 마찰감이 느껴져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다.
다른 사람들이 깰까 봐 조심히 캠핑장을 벗어났다.
캠핑장을 벗어난 후에도 옥수수밭은 한참 동안 이어졌다.
풍경이 지겹고 중간중간 비포장도로가 나와서 주행이 편하지는 않았지만, 차가 없어서 꽤 수월하게 거리를 채웠다.
옥수수밭을 벗어나서는 아침 뷔페도 즐겼다. 이제 옆 테이블이 하는 대화가 들리는 걸 보니 이곳이 제법 익숙해진 모양이다.
오늘은 드디어 Illinois를 벗어나는 날이다.
신이 나서 달리는데 길가에 66번 국도가 표시된 지도가 보였다.
그동안 지도를 보면 나태해지거나, 거만해질 것 같아서 일부러 지도를 보지 않았는데 느낌이 이상했다. 내가 지나왔던 8개의 주를 보니 만감이 교차했다.
우연히 마주한 지도 속에서 나는 미대륙 중간에 서 있었다. 믿어지지 않아서 한동안 지도를 멍하니 바라봤다.
이제껏 한 걸음씩 나아오면서 수도 없이 많은 의심이 생겼었다. 탈수증에 걸려 주저앉기도 했고, 섭씨 43도가 넘는 사막에서는 죽을 뻔한 적도 했다.
굶주린 배를 잡고 샤워도 못 한 채 잠을 청할 때면 포기하고 싶었다. 하루하루가 도전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일단 나아가다 보니 어느새 도전의 절반 이상이 끝나있었다.
지도 앞에서 하루를 소중히 여기겠다고 다짐했다. 작은 하루가 쌓여서 어느새 도전의 절반이 끝난 것처럼, 앞으로 살아갈 작은 날들이 내 모습을 만들 테니까.
해가 질 때쯤 한 캠핑장에 들어갔다.
오늘도 운 좋게 한 부부가 본인의 자리 일부를 내주었다.
내 도전기를 들은 남편 네드는 본인도 나중에 꼭 한번 자전거 횡단을 해보겠다고 했다.
나름 진심이었는지 아내 스테파니에게 트럭으로 따라와 달라고 부탁하기도 했다.
네드에게 용기를 주기 위해 오늘 있던 일을 말해주었다. 캘리포니아를 떠나고 하루도 평범한 날이 없었지만, 어느새 이곳까지 왔다고 했다.
뭐든지 시작이 가장 어렵다고도 이야기했다. 엄청나 보이는 도전도 일단 시작하고 나니 생각보다 잘 풀렸다고 이야기하면서 그에게 용기를 줬다.
기분이 좋아서 맥주를 두 캔이나 마시면서 한동안 수다를 떨었다.
내일이면 드디어 중간 휴식지인 미시간에 도착하는 날.
미시간에 도착하면 좀 긴 휴식을 취해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