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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의식과 의식으로 보는 [루틴]

루틴을 잘 다루는 사람은 음악을 지휘하는 지휘관 같다.

좋았던 여행지를 다녀오면 계속 떠오르지 않나요? 


이처럼 좋았던 루틴을 되새겨 생각해 보면 군대에서 천국 같은 경험을 했었다. 필자는 군대에서 조리병이었다. 늘 새벽에 기상했다. 새벽에 기상하여 피곤함을 감추긴 어려웠지만, 눈이 떠지면 해야 될 일을 찾았다. 머릿속에 오늘 식수가 몇 명인지, 반찬 구성은 어떤지, 국은 무엇인지 정리가 되어있었다. 그렇게 아침 조리를 수월하게 착오 없이 끝냈다.



하지만 사회에 나와서는 '루틴'이라는 규칙을 정하기 어려웠다. 수많은 변수가 존재하며, 변수 속에 늘 스스로를 집어넣는 에너지도 필요했다. 규칙처럼 정해진 루틴이 있으면 고민할 필요가 없다. 즉, 에너지를 아끼게 된다. 예로 한 음식점에 들어갔더니 메뉴가 제육볶음밖에 없다면 제육볶음만 고르면 된다. 하지만 돼지고기를 주제로 제육볶음부터, 삼겹살, 불고기, 오징어불고기, 뚝배기불고기 등등 선택지가 많아질수록 나의 생각의 범주도 넓어지며 에너지를 소모하게 된다.



이래서 사회의 법처럼 루틴이 필요한 이유는 '하지 말아야 할 것을 안 하게 해 주며', '해야 할 것을 더욱 명확하게 알기 때문이다.' 



어제도 했으면 오늘도 쉬운 게 아닌가? 싶지만 눈을 감고 있는 시간 동안 우리는 생각보다 많은 걸 까먹는다. 당장 어제 식사 메뉴가 무엇인지, 맛은 어땠는지, 어제의 감정은 어땠는지 회고해도 '뭐였지..?' 순간적으로 고민하게 된다.



기억력이 부족한 게 아니다. 우리는 매 순간 잠자면서 죽고, 매 순간 일어나면서 태어난다. 어쩌면 생명의 리듬에는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그래서 태어날 때마다 배우에게 역할을 쥐어주며 대본을 써주듯, 인생에 루틴이 필요다.




어떻게 감독이 배우에게 역할을 주듯, 루틴을 만들까? 



심리학자 칼융의 말을 짚고 넘어가 보자. '무의식을 의식하지 않으면 무의식이 당신을 지배할 것이며 당신은 그것을 운명이라고 부를 것이다.' 



'무의식' 한 번쯤은 들었을 개념이다. 두 눈이 떠있으니 의식이 살아있는 거 아니야?라고 자문하지만, 두 눈이 떠있다고, 숨을 쉰다고 의식이 살아있다고 보긴 어렵다. 그건 생명이 살아있는 상태이니까. 의식과 생명을 동등시하긴 어렵다. 의식의 개념은 보이지 않는다. 내면과 정신적 문제이니까.



우울증 환자 -

살아생전 어제 만났던 사람 중, 정신 질환인 우울증이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도 구분하기 어렵다. 만약 우울증을 앓고 있던 사람이 있었더라도 나처럼 평범하게 사회 활동을 하다가, 집에 돌아가 우울 증세를 보이니까. 



폭행 -

옛날 폭행이 쉬웠던 군대에서도 사람의 얼굴은 때리지 않았다. 몸을 때렸다. 그 이유는 벗은 몸은 보기 어려우니까. 



이처럼 정신과 내면세계는 우리가 보이지 않기에 믿기 어렵다. 하지만 이해하긴 쉽다. 그들의 하소연을 들어보라. 가정 형편으로 인해 우울증이 걸린 사람, 잦은 폭행으로 인해 몸에 상처가 난 사람. 그들의 고충은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고, 스쳐 지나간다면 우리는 알 수 없다.



심리학자 칼융은 무의식에 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무의식은 2가지다. 개인 무의식과 집단 무의식이다. 개인 무의식은 개인의 경험, 기억을 가지고 있다. 집단 무의식은 여러 가지의 원형을 가지고 있다.'



1) 집단 무의식: 태어나기 전부터 가지고 있는 것 (선천적)

2) 개인 무의식: 태어나서 후부터 가지게 되는 것 (후천적)



무의식과 의식의 개념을 알아버리고, 꾸준히 분석하고 관찰해 온 내 입장으로써 설명해 본다. 


자신의 상황을 대입해서 읽어봐도 좋고, 읽기 귀찮으면 넘겨도 좋다. 글의 주제는 루틴이기에, 의식과 무의식의 개념을 설명한 이유는 자신을 알아야 다음 계단으로 나아가기 편하기 때문이다. 어리석은 자는 형태를 믿지만, 지혜로운 자는 자신을 믿는다. (관련된 좋았던 책 추천도 있음)



1) 집단 무의식: 태어나기 전부터 가지고 있는 것


- 태어나기 전부터 가지고 있는 것을 발견하면 위대한 발견이다. 지난 몇 년간 수 백 권의 책을 읽고, 꾸준히 글을 써오며, 주기적인 명상과 심리 상담을 통해 서서히 알았다. 



나는 어려서부터 성향이 조용하고 나긋했다. 흔히 말하는 중2병 시절에도 조용했다. 성인이 된 지금도 마찬가지다. 정확한 이유는 모르나, 어쩌면 내재된 성향이라고 생각한다. 고요한 자가 가질 수 있는 능력으로는 사물을 보려는 통찰력이다. 스스로 분석하는 걸 즐거워하며, 예술적 성향을 지녔다.



그로 인해, 마케팅하며 분석하는 걸 즐긴다. 트렌드를 따르지 않고 자신의 길을 개척하려고 한다. 마주하는 인간을 감정적으로 대하지 않으려고 한다. 고로 이성적으로 판단하며 탐구하려 한다. 실제로 나를 만났던 사람들은 내게 여유롭다고 한다. 그리고 이성적이라고.



이런 성향은 후천적이진 않다고 본다. 선천적이기에 시간이 지날수록 크기가 커진다고 느껴지기 때문이다. 나는 자신의 선천적인 걸 발견하기 위해, 부모와 조부모의 성향을 끊임없이 탐구하고 질문했다. 내가 가진 사고와 타인이 가진 사고의 차이점이 무엇인지 탐구했고, 자신이 지나온 여정에 반복되는 패턴을 발견했다.



그러려면 기초적인 지식이 쌓여야 한다. 객관적인 지식 없이, 자신이 가지고 있는 지식만으로 무언가를 보려고 한다면 보이지 않는다. 마트에 갔을 때 요리사의 눈에는 식자재가 요리 재료로 보이지만, 비전문가 눈에는 밀키트나, 군것질만 보이는 현상은 이와 같다.




2) 개인 무의식: 태어나서 후부터 가지게 되는 것


- 나는 거짓말을 자주 했다. 그런 이유로 사랑했던 연인과도 자주 싸웠다. 술과 담배도 안 할 정도로 굳은 의지로 안 한다고 생각하면 안 할 의지를 단단히 가졌다고 생각한 자신이었다. 하지만 의지의 문제가 아니었다. 의지로 해결하고 싶었지만, 이기기 어려웠다. 



이런 자신을 이해하기 어려워, 머지않아 심리 상담을 받게 되었다. 심리 상담 선생님께 나의 부끄러운 고백을 했다. '저는 거짓말을 합니다. 그런데 왜 거짓말을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의지대로 컨트롤이 안 되더라고요.'



사회에선 연인에게 거짓말을 한다면 삿대질을 받았다. 심리 상담 선생님께서는 따듯하게 다독여주며 나의 누적된 과거 마음을 열기 시작하셨다. '원형 씨는 가족 관계가 어때요?' 가족 관계를 시작으로 당시 감정은 어땠는지를 시작해, 과거 사진을 보듯 순간순간을 함께 열어봤다.



그때 알게 된 사실이 하나 있다. 가정 분위기로 인해, 나 자신은 거짓말을 하는 습관을 생성했다. 거짓말은 상대를 속이는 행위지만, 내겐 끌어안은 책임이었다. 가정 형편으로 인해 집안 분위기는 안 좋았고, 아버지는 부가정적이셨다. 어머니는 기댈 곳이 없었고 언제나 내게 믿을 건 나밖에 없다고 말하셨다. 내가 울면 덩달아 우시는 분이었다. 나는 눈물을 흘릴 수 없었고, 언제나 기둥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이 단단했다. 고로 슬퍼도 슬프지 않은 척을 했고, 덩달아 거짓말은 자연스럽게 늘었다.



이처럼 꺼내보지 않았던 과거 경험으로 인해, '왜 거짓말을 하는가?'의 진실을 알아냈다. 마치 범인을 찾은 기분이었다. 무의식을 이해하려면 자신의 하루 24시간을 관찰해야 된다. 추천 책으로는 <왓칭>이다. 관찰자 의식에 관한 개념이 나온다. 이 책을 읽고 느낀 한 줄 요약은 다음과 같다. '자신을 자신으로만 보면 안 된다. 자신을 영화관의 주인공처럼 본다면 관찰하게 된다.'




: 루틴을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마법

루틴을 주제로 의식과 무의식을 설명했다.

의식과 무의식의 개념을 알아두면 편하다. 여기서 무의식은 쓸모없으니 뿌리째 뽑아야겠다는 생각은 현명하지 못하다. 인간은 어쩔 수 없이 의식과 무의식이 존재한다. 우리가 여기서 할 수 있는 건, 뽑는 게 아니라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일이다.


무의식을 루틴에다가 깔아 둔다면 어떨까? 

참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난다. 도입부에 작성했지만, 내가 조리병 때 1년간 당연하다듯 새벽에 기상하며 성장에 기여했다. 그때의 삶을 자부하는 이유는 자기 전 12시까지는 늘 독서했고, 더 맛있는 음식을 만들기 위해 요리책까지 구매하여 읽었다. 당시 나의 삶은 흥미로운 음악을 연주하는 것 같았다. 덕분에 결과적으로도 표창을 5개를 받았고, 버려지는 잔식을 줄여내기도 했다.



의식과 무의식을 자유롭게 쓰는 건 기적 같다. 

재료를 다루는 요리사 같기도 하고, 음악을 다루는 지휘관 같기도 하다. 당시 조리병 때 규칙이 하나 있었다. 전 날 밤에 다음 날 메뉴를 외우는 규칙이었다. 그 덕분에 나의 사고는 늘 다음 날을 향해있었다. 자기 직전에도 마찬가지다. 여기서 얻은 지혜로는 일어나자마자 하려는 목적의 중요성이다. 메뉴 하나만 기억하고 자면 새벽에 일어나도 몸이 저절로 움직였다.


-> 자기 전, 일어나자마자 할 목적 하나를 세운다. 



그리고 목적으로부터 루틴을 만든다. 

여기서부터는 나열을 한다. 하고 싶은 루틴들을 싹 정리해서 나열해 보는 것이다. 예로 나는 아침 루틴으로 꿈 정리, 운동, 독서, 글쓰기, 명상, 경제 공부를 나열했다. 하지만 이건 언제까지나 의식적인 목록이다. 무의식적으로 하는 목록도 적어본다. '유튜브, 릴스, 늦잠' 나열했다면 배치를 해야 된다. 배치를 할 땐 4가지 기준을 세웠다.


급함 / 중요함

급함 / 안 중요함

안 급함 / 중요함

안 급함 / 안 중요함



이 항목에 나열했던 목록을 넣어본다. 그렇다면 머릿속에 정리 정돈이 시작된다. 새로운 발견도 하게 된다. 안 급하고, 안 중요한 일의 목록이 많아진다는 발견이다. 이때 깨닫는다. '왜 그랬지?'



그렇게 배치의 기준을 정립했다면, 자신의 환경과 컨디션에 따라 루틴을 정한다. 누군가는 이른 아침이 활기차고, 누군가는 오후가 활기찰 수 있다. 그리고 생활 패턴도 다 다르다. 일어나자마자 일을 하려는 사람도 있다. 무엇이든 자신의 맞는 핏이 중요하다.



나의 경우도 황금 같은 루틴을 발굴하기 위해, 아직까지 고군분투하고 있다. 오늘을 기점으로 배치를 다시 하게 되었다. 일어나자마자 할 목적으로는 글쓰기로 설정했다. 그걸 하기 위한 루틴들을 구축했다.



첫 번째 일과 -

일어나서는 급하지만 안 중요한 일을 시작한다. 바로 책을 가볍게 읽고 하루를 어떻게 살지 써보며 영혼을 깨우고, 운동을 하며 육체를 깨우러 간다. 다녀와서는 정신을 깨우기 위해 명상을 한다. 그리고 샤워를 하고, 아침을 먹는다.



두 번째 일과 -

그렇게 사무실에 출근해, 경제 공부를 시작한다. 그리고 중요하고 급한 일을 시작하며, 안 중요한데 급한 일까지 순식간에 처리한다. 



세 번째 일과 -

여기서는 안 중요하고, 안 급한 일을 한다. 취미가 될 수도 있고, 고갈된 에너지를 충전하기도 한다. 음악을 들으며 탄천을 걷기도 하고, 공원을 걷기도 한다. 잠깐은 의식의 전원을 끄고 무의식적으로 살기도 한다. 항상 자기 전에는 다음 날 목표를 또 정하고, 하루의 성찰을 하며 가계부를 작성하며 소비까지 회고한다.




계속해서 언급하지만, 내 인생에 조리병 때는 날아다니는 기분이었다. 

집단에 들어가 있는 군대와 달리, 자유로운 사회에서는 자신이 정해야 할 것이 존재하기에 더욱 복잡하다. 그러므로 군대의 경험은 내게 축복이었다. 영혼은 자유롭기에 갇히기 싫은 자유를 향해 탈출하려 한다. 그래서 지속적인 유지하는 것에 지긋지긋함을 느끼기도 한다. 하지만 무엇인가를 처음 배울 때 자유는 지혜롭지 못하다.


예술은 자유에서 탄생했지만, 예술의 탄생은 지혜에서 탄생했다. 누군가는 누군가에게 영감을 받고, 계승하거나 반박하며 새로운 창작물을 만든다. 각자의 다른 견해가 어쩌면 원점으로 돌아가 하나이기도 하다.


그리고 최근에 볼링을 배우면서 느꼈다. 초보자일수록 나보다 조금 더 잘하는 사람을 따라 하려고 애쓰면 그나마 좋은 결과가 나온다. 자꾸만 얕은 지식을 믿고 행하는 게 문제다. 초보자인 사실을 인지하고, 누군가의 가르침을 그대로만 따라 해보는 게 지혜롭다. 



무지의 창작은 쓰레기를 만들지만, 지혜의 창작은 예술을 만든다.
루틴도 마찬가지다.




p.s -

글이 워낙 길었겠지만, 이 글을 읽으신 분께서 끊어지지 않는 루틴을 잘 만드시길 바랍니다. 



단단한 루틴은 단단히 박힌 못과 같습니다. 일반인이 못을 한 번에 박기엔 운이 따릅니다. 더군다나 못이 여러 개라면 운이라는 사실을 깨닫기도 하죠. 전문가는 다릅니다. 한 번에 박고, 여러 개여도 문제가 없습니다.



이처럼 단단한 못을 박기 위해 겪어야 하는 시행착오는 얼핏 단순해 보입니다. 


하지만 단순해 보이는 것의 이면에는 자신이 잘 모르거나, 상대방이 잘하거나가 존재합니다. 우리는 단순해 보이는 것을 발견하고, 배우는 삶 속에 살고 있습니다. 배려도 마찬가지니까요. 그렇게 단순하고 쉬운 일을 누구나 하진 않습니다. 고로 배려하는 사람은 더욱 멋있어 보이죠.



누구나 그런 존재가 될 이유는 없습니다. 하지만 누구나 그런 존재를 지향합니다. 마음처럼 한 번에 되진 않아 속상하기도 하지만, 그런 시행착오를 겪는 모습이 가장 아름다운 순간입니다. 



생각하는 원형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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