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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쓰다쟁이 Sep 08. 2022

가을이 오는 소리

 아이가 학교에 가고   아내와 둘이 호젓하게 아침 식사를 했다. 창문을 열어놓으니 제법 선선한 바람이 집안까지 찾아든다. “가을이   같은데 아직 실감이  나네. 음악이 가슴으로 들리지 않아”.


가을을 가장 먼저 알아채는 건 가슴이다. 평상시 듣던 음악이 어느 날 더 깊숙이 내 안으로 파고드는 날, 비로소 나의 가을은 시작된다. 분명 밖의 공기는 장조에서 단조로 바뀌었건만, 아직 나는 가을을 맞이하지 못하고 있었다.

페이스북을 열었다가 페친 중 한 분이 턴테이블과 관련해 올린 글을 보았다. 오랜만에 LP 음악이 듣고 싶어 오디오로 향했다. 턴테이블 위에 쌓아둔 수북한 CD를 정리하고 듣고 싶은 음악을 고르기 위해 LP 수납장 앞을 기웃거렸다. 청소년기에 즐겨 듣던 Glenn Medeiros의 음반을 꺼내 들었다. 너무 오랜만에 들어서 그런지 유명한 몇 곡을 빼고는 낯선 노래처럼 들렸다. ‘고등학생 때 참 즐겨 좋아하던 음반인데 지금 들으니까 기억이 안 나네’. 혼잣말을 하고는 얼마 전 중고로 구입한 이네사 갈란테 CD를 꺼냈다. 최근 건축가 승효상 선생님의 『묵상』이란 책에서 이네사 갈란테에 대한 이야기를 읽고 알라딘 중고서점에서 음반 한 장을 구매했었다.

신혼 때 아내와 함께 이네사 갈란테의 공연을 본 적이 있다. 검색해보니 그때가 2003년 10월 1일, 아내가 첫 아이를 가진 지 얼마 안 된 때였다. 성악곡을 자주 듣지 않는 데다 생소한 성악가의 공연이라 별 기대 없이 2층 무대 앞쪽에 앉았다. 그녀가 무대에 올라 노래를 부르기 시작할 때 콘서트홀의 분위기는 그녀의 목소리처럼 차분해졌다. 애절하지만 차갑지 않게, 묵직하게 밀려오는 그녀의 목소리를 더 잘 듣기 위해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공연이 끝나고도 이네사 갈란테의 노래를 종종 찾아들었지만, 넘쳐나는 많은 음악 속에서 새로운 음악에 탐닉하며 잊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오늘 그녀를 다시 만났다.


이네사 갈란테를 세상에 알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카치니의 <아베 마리아>를 들었다. 한 번 듣고 다시 들었다. 저녁 만남을 위해 운전하는 차 안에서도 듣고 또 들었다. 집에 돌아와서도 들었다. 그리고 지금 글을 쓰고 있으면서도 듣고 있다. ‘아 어떻게 이러지? 어떻게 저런 애절한 감성이 나오지?’ 노래가 절정으로 향해 갈 때 그녀의 고음이 주는 감동을 뭐라 설명해야 좋을지 모르겠다.


승효상 선생님은 이렇게 소개했다. “오직 ‘아베 마리아’라는 단어만 반복하는 노래. 그런데도 그 속에 온갖 그리움, 간절함, 애통함, 그리고 자비와 평화가 다 있어 듣는 이로 하여금 모든 것을 내려놓게 한다. 최고다.” 감정으로 메시지를 전달하는 그녀의 노래는 최상급을 사용해서 칭찬할만하다는 이야기인 게다.


글을 쓰고 있는 중에도 명치 위쪽이 아리다.

왔구나

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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