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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 안 가면 안 돼요?

by 희원다움

며칠째 머리가 무겁다. 아프리카로 여행을 준비 중인 한 고령 환자와 관련된 일이 마무리되지 않는다. 단순한 예방접종 한 건이 이렇게 복잡해질 줄은 몰랐다.


여행지에서 요구하는 백신은 황열이었고 환자의 나이는 일흔이 넘었다. 하지만 이 백신은 생백신이기도 하고, 60세 이상에서는 신경계 부작용의 위험이 커진다. 미국 질병관리본부인 CDC 가이드라인에도 ‘60세 이상은 의사와 상의할 것’이라고 명시돼 있다. 나로서는 규정에 따라 접근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환자에게 미리 전화를 걸어 상황을 설명했다. “고령 환자는 심각한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환자분이 의사와 상의를 먼저 하세요. 의사의 판단에 따라 접종을 진행하겠습니다. 다음 날, 그는 병원으로 직접 찾아왔다. “부작용이 생기면 내가 책임지겠다.” 그 말이 얼마나 단호했던지,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거기 안 가면 안 될까?’

그 말은 환자에게가 아니라, 나 자신에게 '정말 그 위험을 감수해야만 할까?' 하는 물음이었다. 하지만 간호사로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위험성을 충분히 설명하고 나머지를 의사와 환자의 결정에 맡기는 일뿐이었다.


그날 나는 여러 진료실을 오가며 의사들에게 조언을 구했다. 도와야 한다는 마음과, 혹시라도 잘못될까 하는 조심스러움이 동시에 밀려왔다. 결국 한 의사가 환자에게 동의서를 받고 주라는 판단을 내려 겨우 일단락되었다.


그런데 다음 날, 그 환자가 다시 나타났다. “여행사에서 65세 이상은 의사 노트가 있으면 백신을 안 맞아도 된다네요. 의사 노트를 써주세요.” 말문이 턱 막혔다. 환자가 줄줄이 예약되어 있음에도 이 문제로 하루 종일 시간과 마음을 쏟은 걸 생각하면 솔직히 힘이 빠졌다.


“의사와 직접 예약을 잡으셔야 합니다." 설명했지만, 그는 병원 다른 부서에 연락을 돌렸고, 결국 그 부서에서 다시 나에게 연락을 했다. 머리가 지끈거리더니 편두통이 시작됐다.

그렇게 또 다른 의사를 찾는 일이 시작됐다. 운 좋게 처음 부탁하러 갔던 의사가 내 이야기를 듣더니 “No problem. " 이라며 흔쾌히 수락했다. 그 한마디에 답답하고 억눌렸던 감정이 스르르 사라졌다.


대부분 의사들은 이런 상황에 선뜻 나서지 않는다. 소견서에는 자신의 서명이 남고, 혹시라도 문제가 생길지 모르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자신의 환자도 아닌 경우라면 ‘굳이?’ 하는 마음이 드는 게 자연스럽다. 하지만 그는 의사로서 책임을 피하지 않았다. 그의 결정에는 직업인으로서의 책임감이 담겨 있었다.


병원에서 내리는 결정 하나하나에는 언제나 무게가 따른다. 그래서 원칙이 필요하고, 그 원칙이 우리를 지켜준다. 하지만 모든 상황이 매뉴얼대로 흘러가지는 않는다. 매일 예상치 못한 일들이 생기고, 그때마다 나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한다. 완벽한 선택은 불가능하기에, 자신이 생각하는 가치와 기준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이 일은 한 의사의 책임있는 결정으로 마무리됐다. 그는 원칙을 지키면서도 환자를 돕는 길을 선택했다. 나 역시 누군가를 돌보고 돕는 일을 하고 있지만, 나의 기준을 잃지 않는 사람이고 싶다. 원칙을 지키되 경직되지 않고,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환자를 중심에 두며, 원칙과 현실 사이에서 균형을 잃지 않으려 한다. 그 균형이 나를 지켜주고, 누군가에게 신뢰로 전해지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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