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일을 하면 행복할 거라는 막연한 환상
요즘은 ‘좋아하는 일을 하라’는 말을 참 자주 듣는다. 그래서인지, 하고 싶은 일을 찾는 게 인생의 목표가 된 사람도 많다. 하지만 좋아하는 일을 찾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 좋아하는 일을 하면 늘 즐겁고 재미있을 거라는 환상을 버리는 일이다.
원하는 일을 하게 되면, 처음엔 설레고 벅차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 일이 지겹고 버겁게 느껴질 때가 있다. 그때 사람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그 마음을 의심한다. “진짜 내가 좋아하는 게 아닌가 봐.” 나 역시 그런 의구심이 들었던 적이 있다.
서른 중반 간호사가 되어 천신만고 끝에 미군부대 병원에 합격했을 때, 이제 더는 바랄 게 없다고 생각했다. 한국에서 살면서 미국인 동료들과 함께 일하는 것도 신기한데, 한국 병원보다 자유로운 근무환경이라니! 그 자체가 꿈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1년, 3년, 5년이 지날수록 마음이 달라졌다. 그날이 그날 같고, 출근길엔 ‘왜 이렇게 지겹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나태해진 걸까? 이러다 현실에 안주해 버리는 건 아닐까?’ 막연한 불안이 올라왔다. 퇴근 후에는 취업 사이트를 둘러보고, 적성검사를 하며 ‘내가 진짜 좋아하는 게 뭘까?’를 다시 찾기 시작했다.
그러다 문득 깨달았다. 프로그래머 3년, 승무원 3년, 다이어트 관리사 1년, 나는 1~3년마다 일을 바꾸며 같은 패턴을 반복하고 있었다. 이 패턴을 지속한다는 건 ‘정말 일이 나랑 안 맞아서일까? 아니면 내가 일을 대하는 태도나 관점이 달라진 걸까?’
어쩌면 문제는 일 자체가 아니라, 일을 대하는 내 방식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이 익숙해지고 난 후, 어느 순간부터 나는 일을 ‘대충’ 하고 있었다.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은 건너뛰고, 조금 더 찾아보면 환자에게 도움이 될 일을 알면서도 그냥 지나쳤다. 일이 지겹다고 느낀 건, 사실 내가 할 일을 다하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시선을 바꾸고 나니, 매일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환자도, 상황도, 대화도 매번 달랐다. ‘오늘도 어제와 똑같이 반복되는 일’이 아니라 ‘오늘만 있는 일’이었다. 그제야 다시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아무리 좋아하고 원하던 일이라도, 그 일이 ‘직업’이 되는 순간 매일이 즐겁고 기쁘지는 않다. 하기 싫은 날도 있고, 지루한 날도 있다. 짜증 나고, 스트레스를 잔뜩 받는 날도 있다. 하지만 중요한 건 그럴 때마다, ‘왜 이 일을 하는가’를 떠올리는 일이다. 좋아하는 일을 계속하려면, 반복되는 지루함과 힘듦 속에서도 그 일의 의미를 잃지 않으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나는 여전히 같은 자리에서 일한다. 달라진 건 일의 내용이 아니라, 일과 환자를 바라보는 시선이다. “오늘은 어떤 환자를 만날까, 나는 그들에게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까.” 매일 아침 그렇게 스스로에게 묻는다.
어제보다 나은 방법을 하나라도 찾아보려는 마음, 그 작은 노력이 하루를 다르게 만들어준다. 크게 달라지진 않아도, 그 덕분에 나는 여전히 이 일을 계속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