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 차 간헐적 단식러로서 저녁 한 끼를 먹기 전까지 물과 블랙커피만 마신다. 매일 같은 구내식당에서 점심을 먹다가 어느 날은 나를 위해 외식을 하는 직장인들처럼, 나도 맥심 인스턴트 블랙커피를 마시다 커피 외식을 할 때가 있다.
최애 커피는 스타벅스 아메리카노이다. 자주 마시는 횟수에 비해 커피지식은 부족하지만 지극히 개인적인 입맛으로 밍밍함과 산미를 굉장히 싫어한다.
그런데 스벅 아메리카노는 산미가 전혀 느껴지지 않고 밍밍함을 보완하기 위해 뜨거운 물은 일반 아메리카노의 반에 샷을 추가해서 마신다. 처음 보는 사람들은 '사약'을 마신다고 기겁을 하지만 찐친들은 알아서 내 방식대로 주문을 해온다.
이렇게 오더 하면 우유를 넣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연한 라떼맛이 난다. 그럴 거면 '라떼를 시키지?'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유당이 들어가면 인슐린이 작동해 단식이 깨지기 때문에 단식 유지를 위해 투샷에 물 반을 고수하고 있다.
약속도 없고 시험준비도 없는 한가로운 토요일은 무조건 스타벅스에 가는 편이다. 오늘도 그런 날이라 근처 스벅을 찾았다. 당연히 '아메리카노를 주문해야지' 하다 갑자기 '오늘의 커피'라고 불리는 브루드 커피로 나름 도발적인 주문을 했다.
아메리카노 vs 브루드 커피, 보기엔 똑같이 그저 블랙커피인데 맛이 다르다.
스타벅스 공식 블로그
에스프레소를 추출해 뜨거운 물을 섞어주는 아메리카노는 높은 압력으로 물과 짧게 접촉해 추출되고 드립 방식인 브루드 커피는 중력을 이용해 추출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물과 길게 접촉한다. 그래서 오늘의 커피를 주문하면 직원들이 항상 '내리는데 5분 이상 소요되는데 괜찮으세요?' 하고 물어본다.
주관적인맛을 이야기하자면, 아메리카노는 진하고 무거운 맛인데 반해 브루드 커피는 상대적으로 깔끔하고 가벼운 느낌이다. 그래서 카페이 극도로 필요한 날은 무조건 아메리카노를 마셨는데, 알고 보니 브루드 커피가 카페인 함량이 약 100mg 높았다. 사람도 겉모습만 봐서는 속을 모르는 법이지만,커피도 맛만 봐서는 카페인 함량을 가늠할 수 없는거다.
또한 브루드 커피는 내려놓은 지 오래되면 맛과 향이 변하기 때문에 1시간이 지나면 폐기한다고 한다.어쩐지마실 때마다 미묘하게 다른 맛을 느낀적이 있었는데, 유독 맛이 없던 날도 있었다. 그날의 커피는 폐기 직전의 커피었을까?
여담이지만, 한참 면접준비를 할 때 아메리카노에 빗대어 1분 자기소개를 준비한 적이 있다. 아메리카노가 우유와 거품을 품으면 부드러워지고 설탕을 넣으면 달달하게 변하는 것처럼, 상황에 맞는 정확한 판단으로 빠르게 행동하는 아메리카노 같은 간호사가 되겠다고.
모처럼 특별하고 신선한 브루드 커피를 마시며 자문해 본다. '그대, 그때의 다짐은 잘 지켜지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