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다섯 Oct 28. 2020

요가하는 삶

생각을 비우려면 운동을 하자


어릴 적부터 운동을 좋아했다. 초, 중학교 때는 육상부였고, 시대회에서 높이뛰기와 단거리에서 순위권에 입상하기도 했다. 예술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육상과는 거리가 멀어졌지만, 고등학교 체육시간에도 태릉인이냐는 소리를 심심찮게 들었다. 대학교에 가서도 운동에는 자신 있었다. 몸으로 하는 건 뭐든지 빨리 익힐 수 있었다. 자전거나 스케이트, 스키나 보드 같은 것도 금방 적응했다. 정확히 스물일곱 살 때까지 그랬던 것 같다.

내 몸은 결혼 후 급격하게 운동능력을 잃어갔다. 움직임이 줄어들고, 게을러지고, 식습관이 바뀌니 자연스럽게 몸의 기능도 떨어졌다. 다시 한국에 돌아왔을 때는 살이 10kg 넘게 쪘고, 조금만 걸어도 숨이 차고 피로감을 느끼게 되었다. 입으로는 운동해야지, 운동해야지 하면서 막상 운동을 하려고 하면 힘드니까 포기해버리곤 했다. 


나는 건강과 함께 의지도 잃었다. 원래 의지가 그렇게 강한 사람은 아니었지만, 몸이 따라주지 않으니 마음은 더 쉽게 지쳤다. 우울이 나를 좀 먹기 시작했고, 한국에 돌아와서 한동안은 그 우울이 더 심했던 것 같다. 우울증인가, 병원에 가봐야 하나 싶다가도, 즐거울 땐 또 나름대로 즐거워하는 나를 보면 굳이 병원에 갈 필요가 있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마음의 회복을 나 몰라라 하다 보니, 몸은 썩어가고 있었다. 여기저기 안 아픈 곳이 없을 지경이었다. 없던 두통이 생기고, 소화불량과 위장염, 역류성 식도염 같은 것들이 찾아왔다. 이유모를 기침이 지속되기도 했고, 고열에 시달리기도 했다. 손발의 혈액순환이 순조롭지 않았고, 항상 발이 차가워 조금만 기온이 낮아져도 춥다 생각됐다. 밤낮이 바뀐 날들을 살았고, 자괴감에 우는 날도 많아졌다. 그런데 어쩌다가 요가를 하게 되었을까.


그 날은 정말 이상한 날이었다.

이렇게 지내면 정말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겁이 났다. 매일같이 죽을까 생각하는 내가 죽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에 겁을 냈다. 아이러니하지 않나. 죽고 싶다고 생각하면서도 살고 싶어 하다니. 사춘기도 아니고.

몸의 고통이 곧 정신의 고통이라는 걸 받아들이고 나니까, '힐링'이 필요하다고 여겨졌다. 그리고 그날은 날씨가 좋았다. 오랜만에 밖에 나가니 하늘은 푸르렀고, 햇빛은 따사로웠다. 그래서 무작정 집에서 가장 가까운 요가원에 찾아갔다. 요가해보고 싶어서요! 하고 상담 예약도 없이 찾아갔다. 15명 정도 들어가면 매트 깔 자리가 없을 만큼 작은 요가원이었다. 그렇지만 집에서 가장 가까우니까 선택했다. 오히려 큰 요가원 보다 낫지 않을까 싶었다. 그래도 왕년에(?) 운동 좀 했으니까 웬만한 동작은 따라 할 수 있지 않을 거라 생각하며 위풍당당 등록했다. 바로 당장 시작하기에는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니까 시작일은 그다음 주부터로 정하고, 일주일 동안 이미지 트레이닝(?)을 했다.

내 몸이 예전 같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운동신경만큼은 타고나는 거 아니냐는 자만한 생각을 가지고 첫 수업을 들었다. 그리고 충격, 대 충격. 나는 팔도 제대로 위로 뻗어내지 못하는 운동신경 미소지자 같았다. 런지 자세도 제대로 되지 않았고, 허리도 제대로 펴지 못했다. 가만히 앉아있는 게 이렇게 어려운 일이었나. 가만히 서 있는 게 이렇게 힘든 일이었나. 첫 수업을 듣는 한 시간 동안 생각했다. 와, 이게 진짜 내 몸이라고? 이렇게 아무것도 제대로 따라 하지 못하고 부들부들 떨어대는 이 몸이?! 충격에 좌절감이 더해졌다. 다운 독 자세를 할 때도 손은 미끄러지고, 햄스트링이 늘어나지 않으니 발 뒤꿈치도 바닥에 닿지 않았다. 또 팔을 들고 있었을 뿐인데 어깨가 빠질 듯이 아파왔다. 수업이 끝나고 다리에 힘이 풀려 터덜터덜 집으로 향했다. 사지가 오그라드는 듯한 느낌이었다. 너무 목이 말라서 물을 마시는데, 팔을 들어 올리지 못하겠어서 허리를 숙이고 마셨다. 뭐 이것저것 생각할 틈도 없이 온몸이 아팠다. 안 아픈 구석이 없다고 여겨질 만큼.


고통에 끙끙 앓으며 자고 일어났더니, 더 아팠다. 머리를 감으려고 허리를 숙이고 팔을 들었는데, 정말 악 소리가 났다. 아이고아이고 곡소리를 해가며 겨우 머리를 감고, 드라이기로 머리를 말리려는데, 세상에 드라이기가 이렇게 무거웠나. 납으로 만들었나. 도저히 드라이기를 들고 머리를 말릴 수 없었다. 머리를 말리긴 말려야 하는데. 어떻게 말려야 하나 고민하다가 결국 바닥에 드러누워서 머리를 말렸다. 드라이기를 틀어놓고 그냥 머리카락이 휘날리게 갖다 대놓고 있었다. 그렇게 고통스러웠지만, 근육통은 운동으로 풀어줘야 한다는 말에 전적으로 동의하는 편이라 비명을 질러대는 몸을 이끌고 다음날도 요가원을 찾았다. 여전히 고통스러웠고, 손이 바닥에 닿기는커녕 배에 힘주는 것도 어려웠다. 하지만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을 수 있어서 좋았다. 오로지 내 몸에만 집중하는 시간. 한편으로는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려고 이런 고생을 하나,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하는 생각도 했지만, 어쨌거나 왜 사냐, 어떻게 살아야 하냐, 같은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냥 힘들다, 괴롭다, 버텨야 한다, 아프다, 같은 아주 당장의 생각들만 들뿐이었다. 그리고 그게 요가의 '강점'이었다.


생각을 완전히 멈출 수는 없었지만, 적어도 요가를 하는 와중에 생각의 양과 방향이 단순화되었다. 그렇게 꽉꽉 들어찼던 생각을 아주 조금이나마 비워낼 수 있었다. 몸의 건강이 곧 정신의 건강이라는 게 이런 거구나. 운동을 해서 몸이 튼튼해지면 정신이 건강해질 수밖에 없다. 정신을 갉아먹는 생각 따위는 할 겨를이 없으니까. 그렇게 일주일에 3번, 하루 한 시간. 나는 생각을 비워내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