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생아 중환자실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준비사항이 많았다. 신발을 갈아 신고, 얇은 방문 가운을 입는다. 마스크를 끼고, 손을 씻고, 비닐장갑을 낀다. 이 모든 과정이 면역력이 약한 아이의 감염을 최소화하기 위한 과정이다. 아이들을 만지기 전에, 장갑을 끼기 전에 물로 손을 닦는다.
누가 붙여 놓았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커다란 세면대 앞의 거울에는 작은 신문기사가 코팅되어서 매달려 있다. 해외토픽 같은 기사였는데, 24주 정도로 600g 정도로 태어난 아기가 태어나서 잘 살아간다는 기사이다. 물론 초등학생이 된 이 아이는 또래의 아이들보다 약간은 작지만 잘 살아가고 있다는 기사다. 이 신문기사는 보호자들에게 희망과 위로를 하려고 준비가 된 것이지만, 이 공간에서 일하는 나를 겸허하게 만들고, 좀 더 최선을 다 하리라 다짐하게 만든다.
인큐베이터의 습도와 온도가 맞추어진 공간에서 기저귀만을 찬 아이가 누워있다. 이때 부모는 무슨 생각을 할까? 부디 공부를 잘해서 좋은 대학을 가거나, 좋은 직장을 가져라 라는 생각 따위는 없다. 그저 살아만 있어 다오. 이것이다. 일단은 살아남아야 그다음에 뭔가를 할 수 있는 것이니까. 너무나 작은 아이를 바라보고 있자면 세상의 욕심 따위는 물거품처럼 없어져 버린다. 아주 가녀린 손가락을 만져보기 위해서는 인큐베이터의 작은 창문을 살짝 열고서 비닐장갑을 낀 채로 만져야 하는 것이 현실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