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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곤소곤 Dec 24. 2024

(인생 2막) 결혼 후
나의 방앗간이 된 산부인과

나는 참새인가


결혼, 신혼여행, 산부인과 진료. 

26살 되던 해 10월, 친한 친구의 결혼식 피로연에서 만난 남자. 우리 둘은 콩깍지가 씌워졌고, 뜨거운 열애 끝에 번갯불에 콩 볶아 먹듯이 이듬해 가을에 결혼을 했다. 변덕이 죽 끓듯 하는 나와 달리 강처럼 차분한 남자와의 결합이었다. 

천안에 사는 나와 청주에 사는 남편. 너무 길지도 아주 짧지도 않은 차로 1시간 정도의 장거리 연애였다. 대부분 간호사는 연애 상대로는 좋단다. 벌이도 괜찮고, 전문직이니. 하지만 결혼상대로는 별로라는 얘기도 있다. 3교대하는 아내를 둔다는 것은 남편이 감내할 부분이 아주 많으니 말이다. 결혼 초에는 두 부부가 만날 시간이 적으니 아쉽고, 육아를 할 때는 아내의 빈자리를 고스란히 남편이 메워야 하는데 그것을 쉽게 감당할 남자가 몇이나 될까? 열두 번의 열두 번이 넘는 고민 끝에 나는 첫 직장을 뒤로하고, 이 남자와 함께 할 미래를 청주로 결정하게 되었다. 

     

결혼 후 신혼여행 중 하혈을 했다. 분명히 생리가 끝난 지 얼마 안 된 기간이었는데...

사람의 스트레스 중 결혼은 엄청나다는데 그래서 인 줄 알았다. 

사람이 살면서 느끼는 스트레스의 강도 순위를 들은 적이 있다. 1위는 배우자의 죽음, 2위 부모의 죽음, 3위 결혼, 4위 이혼... 뭐 대강 이랬던 것 같다. 스트레스가 심하니까 그런 줄 알았다. 

꿈같은 신혼여행의 장소에서 나는 짧은 영어와 바디랭귀지를 섞어가며 그 깜깜한 새벽에 호텔에 있는 남자 직원에게서 겨우 생리대를 구할 수 있었다. (우리나라의 제품이 품질이 아주 높은 것 같다. 이 나라의 것은 내가 중학생 때 쓰던 제품 정도의 품질 수준이었다.) 월경주기가 조금 불규칙하기는 했지만, 결혼을 하니 걱정이 되어서 산부인과를 방문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산부인과는 결혼을 안 한 여자가 방문을 하기에는 꺼려지는 부분이다. 물론 간호사인 나는 알고 있다. 병원이 어떤 시스템으로 이루어지는지를. 산부인과에서는 일반인이 듣기에 뭐 이런 것까지 물어보나 싶을 정도로 너무나 상세한 프라이버시를 침해하는 정보를 요구한다. 요즘은 개인정보법이 강화되어서 주민번호와 휴대전화 번호를 물어보는 것에 조심스러운 마당에 개인의 성생활에 대한 부분까지 묻는다는 것은 불편한 게 당연하다.  첫 월경은 언제 했는지, 처음 성관계는 몇 살 때였는지, 성 파트너의 수는 몇 명이며, 분만, 유산의 경험의 유무와 횟수를 묻는다. 현재 임신 가능성은? 마지막 월경시작일은? 피임약을 먹은 적이 있는지? 진료를 위해서 병원을 방문한 환자의 과거력을 알아서 진료에 활용하는 것을 알기는 하지만 살짝 당황이 되긴 했다. 전부 다 중요하긴 하다. 환자에게서 얻어낸 많은 정보 하에 의사는 정확한 진단이 이루어지게 되는 것이니까.


그렇게 결혼 후 나의 산부인과 방문은 이렇게 이루어지게 되었다. 나는 참새가 방앗간에 자주 들르듯이 산부인과를 찾는 날이 많아졌다. 이 날을 시작으로 산부인과를 나의 방앗간으로 생각할 만큼 자주 방문을 하게 될 줄은 이 날에는 짐작도 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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