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둔역, 쌍학리임도, 매월교, 양동역, 솔치, 문막, 히치하이킹, 스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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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둔 고갯길'을 가기 위해 '무궁화열차'를 타야 하는데 7시 35분 열차를 타야만 한다.
집에서 넉넉히 한 시간 잡고 6시에는 일어나야 하는데 생활 패턴이 낮밤에 이뤄지는 나로서는 쉽지 않은 시작이지만 모처럼의 어린이날 휴일을 보람 있게 쓰기 위해 새벽잠을 쓰기로 하고 서둘러 나간다.
잠에서 덜 깬 상태로 비몽사몽 움직여 '청량리'까지 달린다.
예전에 제주도 올레길 갈 땐 더 빨리 일어나 움직이곤 했는데 이젠 쉽지 않다.
기차여행은 신선하다.
지하철 여행자에게 기차는 또 새로운 여행이다.
속도의 차이다. 비록 무궁화 열차지만 속도 차이가 엄청 다르다.
ktx가 여행의 맛이 덜 나는 건 아마 너무 빨라서 일수도 있겠다.
'일신 역'에 내리는 사람 중 '경기옛길'을 걷는 사람이 있겠지 싶었는데 마을 집으로 가는 중년의 커플과 까르르 웃음 소라가 끝이 없던 대학생으로 보이는 꽃 같은 여학생들 뿐이다.
그들은 어디로 가는지 버스를 기다리는 듯 보인다.
'일신 역'으로부터 '구둔역'까진 이미 지나온 데다가 리본이 달려 있어 쉽게 찾아갈 수 있다. '라본'따라 가는데 바닥에 커다란 지렁이인지 뱀인지 꿈틀거리는 게 있어 자세히 보니 삼남길 초입에서 보았던 무자치 뱀 새끼다.
조심히 셔터만 누르고 지나오는데 도롯가라 가끔 차가 다니는데 걱정스럽다.
다시 걸어가니 뱀 새끼가 또 있다.
오늘 상서롭지 않은 날인 걸까?
아니면 아침에 뱀들이 거리두기 해제로 노 마스크에 일광욕하러 나온 걸 눈치 없이 내가 아는 척한 걸까?
여하튼 뱀을 본다는 건 기분이 좋은 일이다.
뱀이 좋다기보다 남들이 잘 보지 못하는 걸 보는 내가 조금 더 특별해지는 듯한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뱀들을 뒤로하고 '구둔역'에 도착한다.
역의 아름다운 모습은 기찻길 옆 은행나무 밑에서 보는 모습이다.
여기서 '건축학 개론' 영화를 찍었고 아이유의 '꽃갈피' 뮤직비디오도 찍었다.
이 공간에 그 사람도 있었다고 생각하니 또 다른 공간처럼 느껴진다.
스케치북을 펴서 살짝 졸린 컨디션으로 역 스케치를 한다.
해가 이제 제범 뜨거워져서 바람 한줄기가 목마른 가운데 물 한 모금처럼 반갑다.
스케치를 정리하고 다시 마을 쪽으로 내려간다.
아기자기하지만 모두들 일하러 가셨는지 집에는 인기척들이 없다.
마을을 둘러서 시냇가를 건너 산길을 걷다 보니 폐철로가 나온다.
아까 '구둔역'에서 연결되는 길인 듯 보인다.
하지만 길에 철로는 모두 걷어서 자갈들만 남아있다.
자갈길을 걸으며 마을을 내려다보다가 산길로 접어든다.
산길은 리본을 지나치거나 어두운 밤에 가면 길을 바로 잊어버릴 듯 길이 터프하다.
터프한 산길을 15분 정도 걷다가 보니 다시 나타나는 철길, 터널이 있는데 입구를 막아버려서 산을 돌아 돌아왔나 보다.
자갈길을 걷다 쌍학리로 접어든다.
마을 이름처럼 학이 쉬고 있다.
내 발자국 소리를 듣고 하늘로 유유히 날아간다.
동네 집들이 모두 전원주택처럼 좋아 보인다.
도로가 나타나는데 산 쪽으로 올라가는데 차는 그다지 없어서 인도처럼 걸어 오른다.
'평해길'을 반대로 걷는 듯한 청년 한분이 반대편에서 와 웃음 지으며 인사한다.
그냥 그거면 된다.
그러다 차도가 산길 입구에서 끊어져 보인다.
산을 타고 오른다. 산은 물이 많진 않아도 그림자가 있어 나름 시원하다.
산을 타고 오르다 '쌍학리 임도길'을 걷는다. '고래산 임도길'과 닮아있으면서 계절이 다르기에 길의 모습도 달라져있다.
하지만 사람이 한 명도 보이지 않는 건 '고래산'이랑 똑같다.
연둣빛 노랑빛 에메랄드가 하늘에서 반짝이는 것처럼 녹음이 싱그럽다.
그 긴 '고래산'도 걸었는데 이런 임도길은 가벼운 산책이다 생각하며 걷는다.
중간중간 나무를 베어낸 곳이 보인다.
산 곳곳에 나무를 잘라내고 있어 신고를 해야 하나 싶다.
조금 내려가니 그 자리에 어린 나무가 심어져 있다.
그 밑으론 청소년 나무들이 자라고 있다.
입구에 가니 안내문에 숲의 품질을 높이기 위해 수종을 교체하고 있단다.
소나무로 그득한 숲이 언젠가 오길 바란다.
숲을 내려와 강 따라 걷는다.
'매월교' 너머 '매월천'을 따라 걷다 '양동 면사무소'에서 물을 채우고 마을에 접어드니 70년대 마을이 그대로 남아있는 듯 아름답고 고즈넉하다.
강은 오른쪽으로 나무데크를 깔아놓아 걷는데 편안하다.
오른쪽 편으론 비닐하우스가 많아 살펴보니 부추다. 부추를 심어놓고 나면 잘라서 팔고 나면 잘라서 파는 것처럼 보여 아버지가 하고 싶어 하셨다.
나름의 고충이 있을 터다.
소들이 자라는 축사도 보인다.
소들이 '움 메헤헤' 하고 울면 나도 '움 메헤헤' 하고 따라 울어준다.
그럼 소들도 답을 한다.
강아지들이 짖을 때도 저음으로 '알았어~' 해주면 짖는걸 빨리 맘 춘다.
자기들도 밥값을 해야 하는데 상대가 공격의 의도가 없다는 걸 보여주면 금방 멈추는데 한번 톤을 높여 '컹컹' 따라 했더니 내가 산너머 사라져도 계속 짖어대더라.
여하튼 그 강길을 따라가다 마을로 접어든다.
마을에 리본이 보이지 않아 어르신께 여쭤보니 "얼마 전 굴러 떨어져 다니던데...." 하시면서 바깥쪽 길로 안내해 주신다.
마을이 조용하다.
길을 걸어 역에 도달하니 아무 안내도 없어 잠시 헤매다가 안내책자를 보니 양동 2리 마을 버스정류장으로 가란다.
다시 되돌아가는 길이다.
역이 마을의 자랑이라 들렸다 가게 했나 보다.
모양이 전철역처럼 생긴걸 보니 원주까지 지하철 역이 생긴다는 말이 있던데 언젠가 진짜 생길 모양이다.
버스정류장에서 산골로 올라간다.
뜬금없는 모텔이 나타났다가 개구리들이 개굴개굴 짖어대는 통에 정신이 없는데 산길이 나타나서 시원하고 한가롭다.
이 한가로움이 '평해길'의 마지막이구나 생각하니 섭섭하기도 하다.
촉촉한 임도길을 걷다 나타나는 '솔치' 제일 아름다운 긴 길이 끝이 나는 순간이다.
산 너머는 붉은색으로 물들고 집에 갈 길을 빨리 찾아야겠다.
'여기까지 오지도 않는 버스가 적혀 있다니...'
안내판을 보니 간현까지 9킬로, 바짝 걸어도 2시간인데 현재시간은 7시 30분, 도무지 퍼즐이 맞춰지지 않는 상황이니 길에 가끔 지나는 차를 잡으려 해 본다.
코로나 상황이어서인지 차들은 그냥 지나가고 택시를 부를까 생각해도 여기 산 높이까지 올리 만무하고 멘붕에 빠져있는데 차가 한대 선다.
아저씨가 내려서 담배를 피우시면서 잠깐 쉬려고 내렸단다.
이차가 아니면 내가 이 상황에서 빠져나오지 못할 것 같아서 스케치북의 그림과 경기옛길 패스를 보여주며 혹시 밑에 간현관광지 근처까지만 갈 수 없을지 여쭤뵈었다.
옆에서 조용히 보고만 있던 사모님이
"결국 어디를 가고 싶으신 건데요?"
"서울을 가려는데 버스를 타려면 밑에 간현관광지까지 가야 해서요.."
"그럼 우리 동네 문막에서 버스를 타고 서울로 가면 되겠네"
하시더니 뒤쪽에 짐을 치워 자리를 내어주신다.
차를 타고 내려와 보니 '문막'이 '간현'보다 더 가까웠다.
다행히 바로 오는 서울 '상봉'으로 오는 시외버스를 타고 집으로 올 수 있었다.
아직 따뜻한 사람들이 많다.
서울 근교 '경기옛길'에...
2022,05,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