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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에 걷다 멈춘 '평해길'을 다시 걷는다.
세 코스를 남기고 돌지 못한 그 길은 거리도 먼데다 무궁화 열차를 이용해야 갈 수 있는 길이라 마음을 단단히 먹고 걷기 위해 겨우내 '삼남길'을 먼저 끝내고 다시 연결해서 걷는다.
아니라 다를까 아침 9시 55분에 있는 무궁화를 타기 위해 서둘러 간다.
빨리 움직여 역에 도착해 표를 끊으려는데 9시 55분 열차는 '신불역'에 서지 않는단다.
뒤에서 어르신이 '양평'에 내려 버스 타고 가면 갈 수 있다고 해서 급한 마음에 표를 끊는다.
'양평'까진 30여 분 만에 도착해서 연결해서 타는 버스를 타려는데 마침 '양평 장날'이다.
이렇게 장날 맞추기 쉽지 않은데 신나는 장날 구경하고 한 바퀴 돈다.
장날에는 없는 것 빼고 다 있다. 상추 모종을 6개에 천 원에 득템하고 '버스 정거장'에 가니 버스가 하루에 3대밖에 없다
마침 그 딱 한대가 오고 있어 이것들을 위한 돌아감이었나 싶다.
버스를 타고 석불역에서 제일 가까운 '지평 사거리'에 내린다.
그때는 밤이어서 몰랐는데 막걸리는 샀던 하나로 마트의 뒤편이 문화재로 복원된 '지평 막걸리 양조장'이 있었다.
오늘은 길을 물어본 막걸리 도매상에서 안 마셔본 지평 밀막걸리를 산다.
아저씨가 말씀해주신 방향으로 걷다 전에 걷다 지름길로 갔던 곳부터 다시 연결해 걷는다.
밭을지나 산길을 걷는다.
전에 지름길은 '저수지'를 지나갔는데 이 길은 '산'을 둘러 가나보다.
산길을 걷다 내려가니 멀리 '석불역'이 보인다.
이 길을 그 밤에 갔으려면 길을 헤매고 말았겠단 생각이 들어 그때 그 지름길의 판단이 옳았었다는 생각을 한다.
'석불역'에 도착해 스탬프를 찍고 역사를 다시 둘러보기 위해 갔지만 역은 기차가 오기 15분 전에 오픈된단다. 기찻길 따라 길을 걷는다.
길이 막다른 곳에서 오른쪽으로 올라가니 밭에 트랙터 바퀴 자국에 물이 고여 그 흔적마다 작은 연못이 되어있다.
한참을 올라가다 길이 잘못되어있음을 느끼고 다시 천 따라 올라간다.
밭길을 하염없이 가다 뜬금없는 테니스장이 나타난다.
체육시설이니 좋긴 하다만 밭 사이에 너무 뜬금없다.
길을 더 올라가다 왼쪽으로 틀어 마을로 들어선다.
마을에서 산으로 올라가다 보니 마을이 시원하게 한눈에 보인다.
절을 지나 고개를 넘어가니 나타나는 임도길, 고래산 임도길의 시작이다.
'석불역'에서 18킬로로 적혀있고 책에는 11킬로가량 적혀있는 그 임도길을 그렇게 걷기 시작한다.
왠지 오늘 하루 사람 만나기 어려워 보이는 길이다.
정취도 있고 간간히 작은 계곡에서 물도 흐르며 버들강아지와 매화와 산수유 그리고 진달래까지 길이 지루 할 때쯤이면 눈이 즐거워지게 해 준다.
살짝 비 오는 날 걸으면 더 좋을 길이다.
구불구불 길은 끝도 없고 세 군데 정도 고래산의 정상으로 올라가는 길이 보였지만 임도길의 끝을 알 수 없어 자재하고 길에 집중한다.
해가 쏟아지고 나무가 우거짐이 마치 작은 고래 같은 숲 풍경에 스케치북을 편다.
해가 쏟아지는 곳과 그림자 진 곳의 차이가 산에서는 크다.
임도길의 구석에 4월임에도 녹지 않은 눈이 그 증거다.
길이 너무 멀어서인지 단축을 한 건지 임도길이 끝난다는 안내판 근처에는 탈출구를 찾을 수 없어 리본이 달린 데로 계속 임도길을 걸어간다.
계곡의 수량도 더 많아지고, 적막한 느낌도 끝이 없어 전쟁이 나도 이 길에선 그 전쟁을 못 느낄 수 있겠단 생각을 한다.
길이 점점 아주 느껴질 듯 말 듯 하산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고 발이 아플 때쯤 마을이 보이기 시작한다.
마을로 내려와 고래산 안내판을 찍은 다음 리본이 달린 데로 천변을 따라 걷는데 왼쪽을 보니 왜인지 내가 왔던 길을 되돌아가는 기분이다.
산에서 봤던 기와집이며 지형지물들이 내가 되돌아가고 있다고 느끼게 한다.
천변에는 '홍매'와 '매화'가 이제 싹을 틔우고 있다.
오른쪽으로 꺾으니 촬영에 많이 쓰인 영화 '건축학개론'의 수지와 이재훈이 나왔던 '구둔역'이 보인다.
실내로 들어갈 순 없지만 그리고 아직 나무들이 헐벗어 운치가 나지 않지만 은행나무가 아름답게 노란색으로 물들던 그곳이다.
영화는 이렇게 공간을 의미 있게 해 준다.
그곳으로부터 '일신 역'까지 지도를 보니 15분 정도 걸린다.
기차 도착 예상시간은 7시니 10여분 남아서 남은 힘을 다해 열심히 뛴다.
땀을 닦으며 역에 서계신 분께 여쭤보니 기차는 7시 10분 도착, 마지막 열차란다.
다행히 시간 맞춰 도착해 주었다.
걸은 거리를 보니 전부 다해서 30킬로가 조금 안된다.
나중에 생각해 보니 11킬로 코스와 18킬로 코스가 있지 않나 싶기도 하다.
걸은 거라로 보니 나는 18킬로에 플러스알파... 충분히 걸었다.
오늘 하루 걸으면서 복잡한 생각으로부터 머리를 비우고 갈 만큼 걷기 좋은 공간이지만 맘을 단단히 먹고 걸어야 하는 코스다.
바로 도착한 열차 차창으론 어둠이 조금씩 가라앉는다.
2022,04,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