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사랑 안기 06화

사랑 안기 (1)

by 김소희

거친 바람 속에도, 젖은 지붕 밑에도, 홀로 내팽개쳐져 있지 않다는 게. 지친 하루살이와, 고된 사랑 안기가….

살아남기거든.

하루살이나 살아남기나. 왜 똑같은 말을 두 번 하는 거야.

지치고 고되긴 하니까.

사랑을 안는 게 더 고된 거 아닐까.

의미를 모른 척하는 대화가 이어졌다. 기념일을 맞아 인적 드문 바닷가 앞의 펜션을 잡아 쉬고 있던 우리였다. 윤오는 지쳐있었다. 살아남는 것에.


윤오는 숲에 가는 걸 좋아했다. 도시 녹지는 초록이긴 해도 여전히 매캐하다고. 숲에 가면 제일 먼저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그동안 닿지 못했던 깊은 곳까지 맑은 산소가 전달되도록 치렀던 윤오의 의식이었다. 봄, 가을에는 돗자리를 가지고 가 누워서 하늘을 봤고, 여름에는 비를 맞고 놀거나 계곡에 가 물놀이를 했다. 겨울에는 차를 끌고 갈 수 있는 숲에서 무선 전기담요를 덮고 영화를 봤다. 한 번은 차 위에 올라가 누우려 시도하다 차체가 움푹 꺼진 적도 있었다. 모든 상황에서 책 읽는 시간은 꼭 있었다. 돗자리 위에서, 간이 의자 위에서, 차에 앉아서, 물을 바라보면서. 작은 호수에서 튜브와 돗자리로 조잡한 배를 만들어 올라타기도 했다. 튜브가 작았는지 윤오는 타지 못하고 호수에 빠져버렸다. 수심이 깊지 않아 내 손을 잡고 올라올 수 있었지만 그러다 나도 함께 빠지곤 둘 다 둥실 떠올랐다. 약속이라도 한 듯 우리는 나갈 생각 대신 그대로 손을 잡고 햇빛을 받았다. 몸에 이끼와 낙엽들을 달고서 떠다니는 모습을 서로 볼 수는 없었지만 느껴졌다. 내 팔과 다리에 이질적인 게 걸려 있으므로, 내 손을 잡고 떠다니는 이 아이도 똑같이 달고 있겠구나. 전부 윤오를 만나기 전에 해본 적 없는 것들이었다. 숲 속에서 여유를 만끽하는 것, 비를 맞으며 춤을 추는 것, 차 안에서 오붓한 시간을 보내는 것, 차 위에 올라가는 것, 배를 만들어 타는 것, 자연에서 책을 읽는 것. 가끔 아빠를 따라 숲을 갔지만 그 시간엔 곤충이나 동물을 관찰했지 가만히 누워서 나를 느낀 적은 없었다. 윤오는 몰두하는 사람이었다. 도시에서 벗어나고 계절에서 벗어나고 시간에서 벗어났다. 제약을 거스르는 건 스스로를 탐구하기 위함이었다. 궁금한 게 많아서 시작된 탐구는 결국 정의를 내리는 데에 의의가 있었다. 윤오는 찾는 것을 넘어 집착한 나머지 헤매기 시작했다. 어느 날부터 윤오는 누워서 하늘을 보다 눈물을 흘렸다. 수영을 하다가 잠수를 지나치게 오래 했다. 영화를 볼 때 슬픈 장면이 아닌데도 엉엉 울었다. 빗속에서 춤을 추다 자신을 퍽퍽 쳐댔다. 행위는 모두 격렬하게 이어졌다. 역시나 윤오를 만나고 처음 겪는 일이었다. 감정에 압도되면 조금씩 검은 물이 새어 나와 주변을 물들였다. 나 또한 윤오의 주변이었기에 칠해져 갔다. 즐겨 찾던 숲 속의 맑은 공기도, 시원한 계곡물이나 호수도, 진한 향기가 나던 비도 검정을 지워줄 순 없었고 윤오는 타들어갔다. 나는 온몸이 물들기 전에 주변이 되는 걸 포기했다. 윤오를 사랑하는 일을. 우리는 더 이상 자연을 찾지 않았다. 싱그러움이라곤 하나도 없는 집에서 누워 영화를 보다, 울다, 안아주다, 잠들었다. 나를 만나면서 악화되고 약을 타기 시작했다는 이유로 죄책감이 들었다. 윤오는 몇 번이고 내게 말해줬다, 네 탓이 아니야. 원래부터 그런 기질을 갖고 있었다는 것은 충분히 이해했다. 우리의 만남 이전에도 이따금 괴로워했다는 것도 알게 됐다. 그러나 나 때문인 것만 같았다. 내가 시작이었던 게 아닐까. 상황이 증명하잖아. 나무가 되어줄 거란 다짐이 깊은 뿌리를 내려 윤오의 수분을 다 빼앗아버린 듯했다. 메말라가는 윤오는 내게 기대어 계속해서 눈물을 쏟아냈다. 내 앞에서는 그래도 됐으므로 윤오의 슬픔은 나와 있을 때면 증폭됐다. 발끝에 맺힌 물방울마저도 사랑할 줄 알았던 마음은 생각보다 쉽게 졌다. 윤오는 나를 사랑했기에 편하게 아팠고, 나는 윤오와 있을 때 고됐기에 사랑하지 못했다. 죄책감으로 곁에 남아있었지만 혼자 맞는 편안함은 지독하게 달콤했다. 마지막을 고하면 윤오가 더 망가질까 무서웠다. 견딜 수 없는 일이 벌어질 것만 같았다. 그래서 윤오의 끝자락을 잡고 버티고 있었다. 누가 주인지 모를 종속 관계는 꽤 오래 지속됐고, 앞으로도 그럴 예정이었다. 윤오는 사랑하는 날 위해 기념일에 놀러 가자고 제안했다. 계속되어야만 한다면 뭐라도 해보는 게 나았다.


아침이 밝기도 전에 눈이 떠졌다. 작은 펜션이지만 바다가 보이는 큰 창문이 있었고 윤오가 그 앞에 서있었다. 약을 먹어도 새벽까지 잠을 자지 못할 때면 무언가를 응시하곤 했다. 행복할 줄 알았던 기념일에 우리 둘은 편히 잘 수 없었다. 바깥을 바라보는 윤오를 조용히 지켜봤다. 눈물을 흘리고 있을까 두려웠다. 새벽에 슬퍼하는 윤오를 위로하는 건 사랑이었다. 떨고 있는 윤오를 안아주는 건 점점 의무가 되었다. 눈물을 안아줄 여유는 더 이상 내게 남아있지 않았다. 다가가도 되는지를 확인할 정도로 빛이 충분히 들 때까지 기다렸다. 숨소리를 고르게 내고 윤오가 돌아볼 때 언제든 눈을 감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끝까지 내쪽을 바라보지 않았고 조금씩 밝아지는 방 안에서 공허한 눈빛을 바깥으로, 저 바깥으로 보내고 있었다. 조심스럽게 윤오에게 다가갔다. 이상하도록 침착한 등을 안고 시선을 따라갔다. 사람이 오지 않아 부표 같은 해양 쓰레기들이 줄지어 있는 해변에 검붉은 해조들이 여러 개의 호를 그리고 있었다. 알 것만 같은 마음을 몰라준 채 말했다. 이제 가자. 이제 그만 가자.

keyword
팔로워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