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사랑 안기 07화

사랑 안기(2)

by 김소희

밤새 친 파도에 밀려온 해조만큼 윤오는 시도했다. 손목은 모래사장 되어 평생 남을 자국이 생겼다. 홀린 듯 잠에서 깨 윤오를 찾아 집안을 돌아다녔을 때, 어둠에 겨우 익숙해진 눈이 윤오를 처음 발견했을 때, 파장이 가장 긴 빛을 뇌가 판단했을 때, 알 것만 같은 마음으로 되뇌었다. 왜 지금, 내가 있을 때야. 어떤 순서로 병원에 도착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입원하지 않겠다는 윤오를 두고 온 건 생생했다. 이런 상황이 두려워 지금까지 하지 못했던 말을 뱉었다. 이제 갈래. 이제 그만할래. 결국 최악은 도래했다.


윤오를 두고 온 건 철저히 나를 위한 선택이었지만 결과는 좋지 않았다. 밤새 윤오와 함께 봤던 해조를 생각했고, 망가진 얼굴로 데려가라는 윤오의 마지막을 떠올렸다. 윤오를 봤을 때 이제 더는 사랑하지 않게 된 마음을 원망했는데 거울을 보면서 똑같은 생각을 했다. 더는 사랑하지 않게 된 마음이 슬펐다. 천장을 봐도, 취향이 가득 줄지은 책꽂이를 봐도, 유난히 구름이 아름다운 하늘을 봐도, 좋아하던 음식을 봐도 윤오가 생각났다. 윤오의 마지막이 생각났다. 우리의 마지막이 아닌 상상 속 윤오의 마지막이 가득했다. 윤오도 이렇게 힘들었구나. 내 사랑이 이토록 고통스러웠구나. 사랑 안기는 살아남기의 고통에 비하면 아주 작은, 아주 희미한 고통이었음을 이제야 알게 됐다.


원하지 않는 꿈을 꿀 때가 있다. 그날의 꿈은 모든 것의 시작이었다. 초록 타일들이 벽에 가득한 방에 들어가니 초록이 군데군데 묻어있는 흰 욕조가 보였다. 네모난 유리들이 모여 창문을 이루고 햇빛은 한결 부서져 쏟아졌다. 창문을 두른 덩굴식물은 바닥 곳곳에 아무렇게나 누워있었다. 한 발짝씩 욕조로 향할 때마다 줄기와 잎이 발을 간지럽혔다. 평소라면 절대 들어가지 않았을 욕조에 누워 여러 개의 사각형으로 나뉜 창문을 봤다. 결이 나있는 다른 부분과는 달리 민무늬의 유리가 가운데에 위치해 있었다. 투명하게 보이는 바깥에 나무가 보이고 기둥인지 줄기인지 모를 구부러진 갈색이 뚜렷했다. 시선을 고정한 채 집중하니 주변은 사라지고 나무가 점점 커졌다. 굵은 기둥에서 이어진 꼬인 줄기가 그네를 지탱하고 있었다. 그 위에서 책을 읽고 있는 윤오의 뒷모습이 보였다. 한쪽 다리는 그네에 올리고 다른 쪽 다리는 늘어뜨려 그네가 움직일 때마다 발가락이 흙을 쓰다듬었다. 윤오야, 불러보면 윤오는 돌아보지 않는다. 윤오는 영원히 돌아보지 않을 것이다. 내가 병원에서 그랬던 것처럼. 윤오야, 다시 불러보면 윤오는 돌아보지 않고 그네만 멈출 뿐이다. 너 말이야-, 귓가에 굵직하게 속삭이는 목소리가 들려오자 그네에 탄 윤오가 돌아봤다. 그네에 탄 내가 돌아봤다. 화난 얼굴로 웃고 있는 내가 소리쳤다, 너 말이야. 냄새 없는 바람이 불어와 책이 닫히고 나무줄기가 그네를 타고 내려와 윤오인지 나인지 모를 그 사람의 목을 조르기 시작했다. 이제 갈래. 이제 그만 죽자. 도망치려 해도 시야는 나무에 고정되어 있고 줄기에 조여진 사람이 축 늘어졌다. 초록은 모래빛이 되고 줄기는 이끼 되어 우리의 마지막 여행지로 바뀐다. 윤오는 보이지 않았지만 함께 모래사장을 걷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저 멀리 파도에 밀려온 이끼가 호를 그리고 있는 게 보였다. 우리는 가까이 다가가 구경했다.

바닷가에 이끼가 있을 수 있나?

우리도 여기에 있으면 안 돼.

윤오인지 나인지 모를 목소리가 대화했다. 윤오는 여전히 내게 보이지 않은 채로 자기 손목에 이끼를 올려놓기 시작했다. 한 개씩 올려놓을 때마다 손목에서 피가 흘렀다. 보이지 않지만 알 수 있었다. 윤오가 피칠갑이 되기 전에 발견해야 했다. 깜깜한 방에서 나와 윤오를 찾았다. 크지도 않은 집을 헤매면서, 있었는지도 몰랐던 방들을 뒤지면서 윤오를 찾았다. 작게 새어 나오는 빛을 따라 문 앞으로 갔다. 화장실이었나. 두근대는 심장과 함께 문을 열자 욕조가 있는 초록 타일 방이 나왔다. 정확히는 내가 욕조에 누워있었다. 다리 위로 이끼가 천천히 덮이고 목까지 올라와 나를 눌렀다. 밖에서 나를 찾는 목소리가 들렸다. 나 여기 있어, 말하고 싶었지만 입까지 이끼가 가득 차 소리 낼 수 없었다. 이제….

거친 숨과 함께 눈을 떴다. 꿈에서부터 쉬기 힘들었던 숨을 몰아쉬었다. 방 안의 산소가 부족하다는 생각에 침대 옆 창문을 열면서까지 삶을 향해 발버둥 쳤다. 간절함은 폐까지 닿지 못하고 기관지만 긁다 다시 빠져나왔다. 손끝이 저려와 두 손을 꼭 쥐었다 폈다를 반복했다. 불안함은 온몸에 퍼져 힘을 주어야 하지만 미치지 못하거나 지나치게 긴장하기 시작했다. 입술이 저리면서 제멋대로 움직였다. 창틀을 붙잡고 눈물을 토해냈다. 호흡하기 위해 시작된 울음은 죽음의 두려움까지 뻗쳤고 창문을 열기 위해 꿇었던 무릎을 지나쳐 발끝으로도 울었다. 가슴을 쳐대며 울다 지쳐 가만히 엎드려 기다렸다. 의도한 기다림은 아니었지만 그것밖에 할 수 없었다. 점점 몸에 힘이 풀리고 피가 도는 느낌이 들었다. 들숨과 날숨을 의식하다 언젠가부터 자연스럽게 숨이 쉬어졌다. 살아남은 기분이었다. 고되고 고됐다. 간신히 몸을 일으켜 열린 창문을 보고 앉았다. 푸르스름한 새벽이 주는 외로움은 이상하게 안전했다. 마치 나만 격정적이었다는 증거처럼 세상은 고요했다. 간간이 들리는 새소리와 차 소리, 이상하게 부시럭대는 소리를 좇았다. 거리를 지켜보다 아직 새벽인데 남은 하루 동안 어떻게 살아갈지가 걱정되었다. 다시 찾아오면 어떡하지. 사람들 앞에서 이러면 어떡하지. 우는 얼굴을 들키면 어떡하지. 사그라들던 불씨가 튀어올라 내면 곳곳이 움찔거렸다. 오늘만큼은 밖에 있고 싶지 않다는 생각과 함께 소화해야 하는 일정이 떠올랐다. 무기력해진 몸을 움직여야 하는데, 그러고 싶지 않았다. 다시 창밖을 보면서 나를 다독였다. 괜찮아, 윤오와 함께하면서부터 지금까지 수백 번 내뱉은 말이었다. 윤오에게 보냈던 위로는 도착지가 사라지자 나에게 돌아왔다. 수신이 목적이고 괴로움이 수단인가 싶을 정도로 괜찮다는 말은 내게서 떠나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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