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사랑 안기 08화

사랑 안기(3)

by 김소희

진정된 호흡을 유지하기 위해 산책을 나갔다. 늘 보던 풍경임에도 오늘만큼은 인상이 달랐다. 지저귀는 새소리도 시끄러웠다. 내 옆을 지나가는 사람들이 지나치게 신경 쓰였다. 푸르른 나무가 무섭게 뾰족했다. 점점 밝아오는 하늘을 보지 차마 보지 못한 채 걷고 걸었다. 낯선 동네로 갈 때까지 걷고 걸었다. 익숙한 길 끝에 이어진 외딴곳으로 가자 폐건물이 하나 나왔다. 임대라고 현수막이 걸리기도 전에 공사가 끝나버린 폐건물. 아무도 오지 않을 것 같은 곳에 건물을 지을 생각을 한 사람부터가 이상해 보였다. 폐건물은 아직 회색빛이었고, 안에는 공사의 흔적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그중 초록색 타일들도 있었다. 타일이라면 아직 멀었을 과정이었을 텐데 이상하게 회색빛 배경 속에서 초록빛이 우두커니 지키고 있었다. 그쪽으로 자연스레 눈길이 갔다. 꿈에서 본 욕조가 있는 곳의 타일 같았다. 똑같진 않아도 상기시키기에 충분한 초록이었다. 마치 윤오가 피하려고 했던 도시 녹지처럼 칙칙함을 겨우 밝혀주는 타일은 역시나 매캐했다. 공사가 중단된 지도 꽤 됐는지 타일 위에 먼지가 가득 쌓여 있었다. 주위를 둘러보았다. 아무도 없었다. 출근 시간이 다가오는데도 이 길 위에는 사람 한 명 없었다. 어디까지 온 건지도 인지하지 못한 채 타일들을 가져가야겠다는 생각만이 가득했다. 도시 녹지 같은 타일을 깨끗하게 닦아서 이끼가 가득한 방의 타일로 만들어야 했다. 이유를 찾기도 전에 그래야만 한다는 확신이 들었다.


타일을 겹치니 무게가 나갔다. 5장 정도만 들어도 팔이 아팠다. 이걸 집에 가져가야 하는데, 도통 좋은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다. 다시 집으로 되돌아가며 길을 되뇌었다. 잊어버리지 않게 꼭꼭 머리에 눌러 담았다. 차를 이끌고 다시 폐건물로 돌아왔다. 챙겨 온 종이 가방에 타일을 조금씩 나눠 담았다. 3개 이상 담으면 종이 가방이 찢어질 것만 같았다. 몇 번의 왕복 끝에 공사장에 있는 타일들을 모았다. 차에 잘 담고 집으로 다시 갔다. 윤오와 함께 있는 기분이었다. 함께 있을 때보다 더 설레는 마음이었다. 타일을 왜 가져가는지 아직도 이유를 모른 채 집으로 타일을 데려갔다. 미처 함께 돌아오지 못한 윤오가 떠올랐다.


그날부터 나는 타일을 모으기 시작했다. 꿈에서 본 그 방을 재현하기 위해? 윤오를 버려두고 온 죄책감을 지우기 위해? 불명확한 이유를 들면서 그저 모았다. 차곡차곡.

여느 때처럼 산책을 하다 집 근처 골목 1층 건물 옆에 초록색 타일들이 모여있는 게 눈에 띄었다. 몇 달 동안 집 밖을 돌아다녔지만 초록색 타일은 잘 쓰지 않는 색이기에 다른 타일을 가져가는 날이 많았다. 타일마저도 찾지 못한 날이 대부분이었다. 겨우 찾은 초록색 타일이 반가웠다. 건물은 내부 철거 중이었다. 밖에 나와있는 타일을 궁금해하자 공사 중이던 아저씨는 귀찮아하면서도 전에 쓰던 거라 버릴 예정이라고 대답해 줬다.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가져가도 되는지 물어봤다. 안 된다는 거절에는 이상하게 여기는 시선도 함께였다. 괜히 문제 만들기 싫다는 게 이유였지만 타일을 꼭 가져가야 했던 나는 타일 공예하는 사람이라 거짓말을 했다. 다뤄봤던 폐타일들과는 색과 모양이 다르니 이것들을 활용해 멋진 작품을 만들고 싶다고 설명했다. 아직 의심을 거두지 않은 아저씨가 타일 공예고 뭐고 증명할 사진을 보여달라 했다. 아무렇지 않은 척 인터넷에 검색해 나오는 타일 공예사진을 보여줬다. 사진을 보곤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봐도 모르겠다며 그냥 가져가라는 허락이 떨어졌다. 안도하는 마음으로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팔 위에 타일을 하나씩 쌓았다. 그 모습을 본 아저씨들이 다친다고 소리치며 포대 자루를 몇 개 던져줬다. 자루를 받고 한 번, 타일을 모두 담고 한 번, 무거운 자루들을 아저씨들이 혀를 차며 들어줄 때 한 번, 결국 수레를 빌려줄 때 한 번, 다시 수레를 갖다 놓을 때 한 번씩 감사하다는 인사를 했다. 꼭 해야 하는 일이었으므로 감사 인사는 몇 번을 해도 부족했다.


처음에는 거실 맨바닥에 타일을 배치했다. 꿈에서 봤던 그 방의 타일처럼 예쁜 초록빛을 그려갔다. 상가가 모여있는 시가지에 가 공사하고 있지는 않나 기웃거렸다. 핸드폰 사진함에는 아마추어가 만들었을법한 타일 공예품 사진들을 모아놨다. 누군가 나의 정체를 물어보면 곧 전시회를 열 신인 작가라고 소개했다. 사진을 저장하면서 찾아야 하는 타일들이 구체화되었고 도시의 모든 공사장을 돌아다닐 때쯤에는 거실 바닥을 덮을 만큼 일이 진행되어 있었다. 모두 떨어져 있는 이것들을 바닥에 그대로 붙일 수도 없고, 고민하다 할머니 집 마당에서 제대로 작업을 이어가기로 결정했다. 다시 포대에 담기 전 TV 선반 위에 올라가 사진을 찍었다. 타일이 바닥을 덮으면서 보지 않게 된 TV에 먼지가 쌓여있었다. 배치도 기억할 겸 찍은 사진은 진짜 아마추어 작품 사진이 되었다. 아래쪽 줄부터 순서대로 타일을 쌓아가며 담았다. 위로 쌓아진 타일을 담은 포대는 상자에 담겼고 그렇게 여러 포대를 다 담고서는 할머니 집으로 출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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