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조에 누군가 누워있었다. 축 늘어진 상태로. 윤오야- 작게 윤오를 불러보았다.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바닥에 펼쳐진 타일이 물들었다. 빨간색인지 초록색인지 분간이 안 가는 색으로 짙게 물들기 시작했다. 욕조로 가 누워있는 그를 깨웠다. 일어나. 이제 가야지. 신음 소리에 말이 섞여 있어 가만히 들었보았다. 이제 가자. 이제 그만 가자. 나는 대답했다. 이제 갈래. 이제 그만 갈래. 웅웅 거리는 목소리와 파도 소리가 겹쳐 들렸다. 창가에 누군가 서있었다. 축 처진 어깨로. 이번에는 이름을 부르지 않고 그대로 뒤로 가 안았다. 파도치는 창가에 서서 자연이 주는 소리만을 음미했다. 품은 차가웠다. 나의 온기를 주기 위해 그를 꽉 안았다. 숨이 막혀온다. 더 꽉 안았다. 놓지 않는 손에 의한 질식이 나를 잠식한다. 눈앞에 바로 보이는 타일조각으로 숨 막히게 하는 손을 끊었다. 손목을 그었다. 초록 피가 바닥에 후드득 떨어진다. 윤오가 내게서 떨어졌다. 손목에 흐르는 따뜻함이 이상하게 기분이 나빴다. 뒤를 돌아 윤오를 보았다. 내가 남긴 상처들로 얼굴이 일그러졌다. 알아볼 수 없는 형태로 무언가를 흘리고 있을 뿐이었다. 무거운 마음으로 다가가지 못한 채 윤오를 바라만 봤다. 거긴 어때? 아직 잘 살아있어? 이젠 좀 편안해? 거긴 살기 좋으냐고, 나만 두고 어찌 그리도 잘 살고 있어부냐, 쓰지 않았던 사투리로 말을 건다. 이젠 편안허냐…….
워째 가부렀냐, 갱아지 놔두고…… 워째 가부렀어, 나 여즉 살아있는디……. 새소리와 함께 조용히 울려 퍼지는 중얼거림이 잠을 깨웠다. 집안에서 나는 소리는 아니었고, 마당에서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듯했다. 몸을 뒤척여 시간을 확인했다. 7시가 채 되지 않은 아침이었다. 창문으로 가 귀를 대보니 목소리는 조금씩 커져 끊기고 울렁거리기 시작했다. 왜, 어째서 같은 의문형으로 시작돼 불쌍한 우리로 이어졌다. 윤오를 위로했던 새벽이 떠올랐다. 나의 사랑 안기는 윤오에게 힘이 되어줬을까. 할머니는 장례식장에서 내 슬픔을 충분히 안아줬다. 같은 후회를 하지 않기 위해 겉옷을 걸치고 마당으로 나갔다. 문을 열자 마당에 그릇을 놔두고 마루 밑 연석에 앉아있는 할머니의 뒷모습이 보였다. 현관문 닫히는 소리에 할머니는 눈을 비볐다.
“갱아지 깼냐?”
“언제 일어나셨어?”
“늙으맹 꼭두새벽에도 눈이 떠져……. 죽을 날이 오니께 그런 거겄지…….”
“할머니 아직 건강하잖아. 나랑 같이 오래오래 살아.”
“사람은 말이여 죽을 때까지 정해진 잠이 있디야. 긍께 젊을 때 너무 오래 자지 말그라잉, 알았제?”
“그게 몇 시간인데?”
“나야 모르제. 죽어봐야 알제. 어릴 때 느이 할아비랑 같이 살면서 꼭두새벽부터 밥을 하고, 느이 애비 키우고, 정환이랑 우리 이삔 갱아지 볼 때까정 쉬질 못했응께 여즉 살아있는겨. 잠이 너무 많이 남았어. 너무 많이.......”
“나는 얼마나 남았을 것 같아?” 물으면 안 될 말이었지만 할머니의 반응이 궁금했다.
“우리 갱아지는 한참 남았지, 안 그랴?” 한-참에 강조를 붙이며 그리운 눈빛을 보냈다.
“아빠도 부지런히 살아왔는데, 언제 잠을 다 썼대?”
“갸는 핵교 보내는 기 일이었어. 서롱리 살 때는 국민핵교가 너무 멀어서 새벽같이 일어나는 기 그리 힘들었는가 요 앞 시내로 이사 온께는 잠을 한도 끝도 없이 자드랑께. 넘어지면 코 닿을 거리였는디도 항시 종이 쳐야 교문을 들어섰어. 내가 잘못혔지. 무슨 일이 있어도 그 30분을 더 재워서는 안 됐는디. 내가 잘못혔어.......”
“그 30분 모아도 할머니보다 일찍 갔겠다. 그게 왜 할머니 잘못이야. 누가 정해줬는진 몰라도 아빠 명이 너무 짧았던 거지.”
“우리가 해준 게 없어서 애비가 고생헌 것도 내 잘못이지. 열심히 살아도 어느새 사라지는 돈들이 애비 입으로 들어가지도 못 허고 긍께 속이 상허기만 허고…….”
할머니의 탓이 아니었다. 아빠는 가난한 집에서 살아남기 위해 부단히 애를 써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사랑을 받고 자라 지금까지 나를 키워왔다. 아니, 죽기 직전까지. 어째서 할머니는 당신 탓을 하는 걸까. 할머니의 죄책감을 알면서도 부정하고 싶었다. 할머니는 최선을 다했어, 그 결과로 내가 여기 있어. 할머니께 조용히 위로를 건네며 등을 토닥였다. 할머니도 나를 토닥였다. 상실의 아픔으로 둘러싸인 주변에서 우리는 서로를 안았다. 사랑으로 가득 안았다. 아빠의 죽음은 절대 누구의 탓도 아니었다. 잠을 다 써버려 일찍 갔다는 할머니의 말은 내게 와닿지 않는다. 나와의 관계에서 불행했을 윤오는 결국 내 탓으로 시도한 걸까? 아니, 그전에 물어야 한다. 나 때문에 불행했을까? 윤오가 나를 만나지 않았으면 그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까? 할머니에게 안긴 채로 여러 질문을 떠올리며 윤오를 상상했다. 그날을 떠올렸다. 그의 고통은 내 잘못이어선 안 됐다. 윤오를 병원에 그대로 두고 온 것도 내가 지고 가야 하는 책임이어선 안 됐다. 나의 고통이 아니었으므로 알지 못하는 감정과 알 수 없었을 미래에 대해서, 이미 일어나 버린 현상에 대해서 논할 수는 없었다. 타일을 모으고 배치하며 느껴야 할 기분을 이제야 알 것만 같았다. 일이 끝나고 어떻게 해야 할 지도 이제는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할머니와 사랑으로 안으며 윤오를 떠올리는 것도, 아빠를 떠올리는 것도 필요한 일이었다. 이제 보내주어야 한다. 그만 보내주어야 한다.